혼불의 최명희, 그가 살아왔다

송세진의 On the Road / 혼불문학관·최명희문학관

 
 
기사공유

‘순결한 모국어를 복원하고자 했다.’ 최명희 작가의 말이다. 1930년대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혼불’은 현대사를 앞두고 10권의 미완에 그친다. 그녀는 결혼도 하지 않았고, 다른 작품도 거의 쓰지 않았다. 최명희가 곧 ‘혼불’이 됐고, 그녀의 혼불은 너무나 일찍 빠져나갔다.


혼불문학관
◆혼심을 다해 혼불을 태우다

낮은 언덕, 계단 몇개를 오르면 한옥 두동이 있다. 혼불 문학관은 그 자체가 소설의 일부처럼 자연스럽게 어울려 있다. 전시실에 그늘을 만들어 주려는 듯 기울어진 소나무와 그 아래는 길쭉하고 평평한 바위 하나가 낮은 의자처럼 놓여있다. ‘작가바위’라고 써있는데, 실제로 최명희 작가가 유년시절 숙제와 독서를 하던 바위라고 한다. 아직 소설 속으로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건물과 나무와 바위는 이미 소설 속 청암부인의 안채로 들어와 있는 것 같다. 전시실에는 작가의 집필에 관한 자료들과 소설 ‘혼불’ 관련 자료, 그리고 소설 속 주요 장면들을 디오라마로 엮어 놓았다.

혼불은 사람의 이야기다. 조선 말기에서 일제시대까지 몰락해가는 종가의 며느리 3대와 그를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작가가 ‘순결한 모국어를 복원하고자 했다’고 말한 것처럼 전라도 방언이 중심이 된 순수한 우리말들을 마음껏 토해냈다. 소설 초반에 등장하는 효원과 강모의 혼인 장면은 보고 그린 듯 상세하다. 대단한 고증이다. 이러한 첫권, 첫장을 시작으로 틈 날 때마다 명절, 놀이, 복식과 음식, 장례, 백제사, 조선사 등 풍속과 역사에 대한 철저한 묘사가 집요하게 이어진다.

전시실 곳곳에는 아날로그의 진지함이 느껴진다. 작가의 육필원고와 만년필, 빨강, 파랑, 검정의 잉크병은 글쓰기의 속도를 늦추고, 한번 더 숙고할 기회를 주었을 것이다. 작업실을 재현한 공간에는 ‘성보암’이라는 팻말이 달려있다. 사람들은 그녀가 집필에 매달렸던 청담동 성보아파트를 ‘성보암’이라 불렀고 작가 최명희는 그곳에서 도를 닦는 주지스님과 같았다. 실제로 마지막 탈고 4개월 동안은 마치 성불하려는 스님처럼 자리에 눕지도 않았다고 한다. 창작의 고통이 어떠했을지, 명치끝이 답답해진다.

혼불의 이야기는 1930년부터 1943년까지 이어진다. 이후 현대사를 이어가기 위해 작가는 ‘완간’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다. 그렇지만 1998년, 쓸 것들을 적어놓은 소재록만 남긴 채 51세의 젊은 나이로 영면했다. 그녀가 쓰고자 했던 글감만 130여가지. 이것을 빼곡히 적어 놓은 수첩도 이곳에 전시돼 있다.


혼불문학관
청호저수지
◆그곳에 소설 ‘혼불’이 있다

전시실 옆으로는 작은 저수지가 있다. 이것은 소설 속 청암부인이 만든 ‘청호저수지’이다. 빛을 반사하는 맑은 수면과 주변을 돌아 선 솟대가 소설 속 이야기를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해가 질 때쯤은 더 좋겠다. 푸르게 물드는 하늘빛을 받아 저수지의 물결이 더욱 아련하게 보일 것이다.

서도역은 이 ‘혼불문학마을’의 중심에 있다. 소설 속에서도 ‘매안의 역’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떠나는 사람, 오는 사람, 도망가는 사람, 그리고 그 역을 당당히 이용할 수 없는 사람까지…. 지금은 폐역이 된 서도역은 1932년 전라선의 역사였다가 2002년에 신역사가 생기면서 자리만 남았다. 옛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목조 대합실, 녹슨 철도와 역사 주변의 옛 건물들이 자연스럽게 이곳을 문학마을로 만든다. 이 밖에도 당골네집, 늦바위고개, 종갓집, 호성암, 새암바위, 달맞이동산 등 소설과 관련한 주요 장소들이 동네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최명희문학관
서도역
◆최명희처럼 쓰고 싶다면…

전주에는 또 하나의 문학관이 있다. 최명희문학관은 소설보다는 작가를 조명하고 있다. 그렇지만 17년을 혼불에 매달렸고, 길지 않은 생을 마감했으니 혼불이 그녀이고 그녀가 혼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남원과 함께 소설의 주요 무대가 된 곳이 여기 전주이고, 전주는 그녀의 고향이다.

독락재는 전시실이다. 이곳에는 작가의 원고와 지인들과 주고받은 편지, 엽서, 작가 인터뷰, 강연, 동영상 등이 밀도 있게 전시돼 있다. 누렇게 색이 변한 광목 천 위에는 만년필, 가위, 철끈, 나무자, 작은 칼이 놓여져 있는데, 원고를 쓸 때 늘 함께 하던 것이라고 한다. 이 작고 소박한 것들을 손에 쥐고 그렇게 대단한 작품을 남겼다니! 지금은 이들마저도 엄청난 아우라를 내뿜고 있는 듯하다. 해설을 읽어 보면 작가는 고유어를 찾아서 중국 연변과 심양을 두루 찾아 다녔다고 하는데, 우리말을 찾아서 중국에 다녀왔다는 것이 아이러니다. 한글이 그만큼 빠른 속도로 모습을 잃어 가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말을 잘 표현한 작가인 만큼 전시실 내에는 최명희 서체를 따라 써 보는 간단한 체험 프로그램도 있다.

세미나실인 ‘비시동락지실’ 입구에는 쌓여있는 혼불의 필사 원고를 볼 수 있다. 작은 한옥처럼 만들어 놓은 보관함에는 ‘필사의 힘’이라고 쓰여 있다. 소설 ‘모비딕’의 저자 하먼 멜밀도 세익스피어의 오셀로를 250번이나 베껴 쓰며 연습했다고 하니, 명필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눈 딱 감고 필사에 도전해 보는 건 어떨까. 이처럼 혼불은 글쓰기 교본이 되기에 충분하다. 이 밖에도 세미나실에선 자신에게 편지를 쓰거나 자신만의 책을 만드는 등 글쓰기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참여해 볼 만한 유용한 프로그램들이 있다.

최명희문학관은 규모가 그리 크지 않다. 이유는 최명희 길, 생가터, 혼불문학공원이 전주 한옥마을 안에 조금씩의 거리를 두고 흩어져 있기 때문이다. 한편 한벽당, 향교, 전주천, 오목대, 이목대 등은 소설 속에서 중요하게 등장하기도 한다. 전주 전체가 또 하나의 문학마을을 이루고 있는 셈이다.

책을 읽지 않았더라도 이 두 문학관은 흥미롭다. 아니, 문학관과 문학마을을 보고 책에 대한 호기심이 생긴다고 하는 게 옳은 표현이겠다. 지금까지 남원하면 광한루와 춘향이, 전주하면 한옥마을만 떠올렸다면 한번쯤은 최명희와 소설 ‘혼불’을 테마로 그곳을 걸어보자. 소설과 하나가 된 마을길이 또 다른 여행희 즐거움을 선물할 것이다.

● 여행 정보

▷ 남원 혼불문학관 가는 법
경부고속도로 - 천안논산고속도로 - 호남고속도로 - 익산포항고속도로 - 순천완주고속도로 - 오수IC교차로에서 ‘구례, 남원’ 방면으로 우측방향 - 춘향로 - 월평교차로에서 ‘서도, 사매, 혼불문학관’ 방면으로 우측방향 - 월평교차로에서 ‘서도, 혼불문학관’ 방면으로 우회전 - 대사로 - 혼불로 - 노봉길 - 노봉안길

▷ 대중교통
남원고속버스터미널 - 도통동사거리 정류장에서 220번 승차 - 중앙한의원앞 정류장에서 하차 - 용성초등학교 정류장까지 이동 - 522번 승차 - 노봉.혼불문학 정류장에서 하차

▷ 주요 스팟 내비게이션 정보
혼불문학관: 검색어 ‘혼불문학관’ / 전라북도 남원시 사매면 서도리 522
최명희문학관: 검색어 ‘최명희문학관’ /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풍남동 3가 67-5

< 주요 정보 >
혼불문학관
http://www.honbul.go.kr / 063-620-6788
관람시간: 오전 9시~오후 6시(매주 월요일 휴관)

최명희문학관
http://www.jjhee.com / 063-284-0570
관람시간: 오전 9시~오후 6시 (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날, 추석 당일 휴관)

< 관련 여행지 >
혼불문학공원: 최명희 작가 묘역 / 전라북도 전주시 덕진구 덕진동 1가
최명희길, 생가터: 전주한옥마을 최명희문학관 후문

< 음식 >
전주모정꽈배기: 전주한옥마을의 대표 길거리 음식이다. 빵처럼 부드러운 것이 아니라 고소하고 바삭하게 튀겨낸 꽈배기로 길을 걸으며 과자로 먹기 좋다.
꽈배기 2000원(1봉)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교동 60-3 / 063-282-1300
별미콩나물국밥: 전주 남부시장의 콩나물국밥과 같은 맛을 남원에서 맛볼 수 있다.
콩나물국밥 6000원 / 모주 1000원(1잔)
전라북도 남원시 향교동 1058-5 / 063-632-2991

< 숙소 >
삼도헌: 전주한옥마을 내에 있는 한옥으로 정문쪽의 승광재는 조선 마지막 황손이 살고 있는 집으로도 유명하다.
예약문의: 063-282-3337
객실가격: 8만~36만원
http://samdohanok.com /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풍남동 3가 42-4
남원 켄싱턴리조트 : 다양한 객실과 함께 연회장과 세미나실을 갖추고 있어 단체 워크숍을 진행하기에 좋고, 계절별로 여러가지 형태의 패키지가 있어 가족단위 여행자들이 묵어가기에도 좋다.
예약문의: 063-636-7007
http://kensingtonnamwon.com / 전라북도 남원시 어현동 37-122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3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 0%
  • 0%
  • 코스피 : 2139.23상승 16.7818:03 11/14
  • 코스닥 : 663.31상승 1.4618:03 11/14
  • 원달러 : 1169.70상승 1.918:03 11/14
  • 두바이유 : 62.37상승 0.3118:03 11/14
  • 금 : 61.48하락 0.6818:03 11/14
  • image
  • image
  • image
  • image
  • image

커버스토리

정기구독신청 독자의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