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칼럼] 뜨거운 장외시장 ‘은밀한 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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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1년 검찰이 BBK 사건의 장본인 김경준씨를 긴급체포하기 위해 그의 회사인 옵셔널벤처스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 발견한 영화 DVD가 있다. <보일러룸>(Boiler Room)이라는 영화다. 보일러룸은 ‘주가조작’을 뜻하는 은어다. 또 ‘무허가 증권브로커의 영업장소’를 가리키기도 한다. 

이 영화는 허가받지 않은 증권브로커들이 유령회사의 주식을 불법으로 고객에게 판매하는 것을 다뤘다. ‘불법 장외주식 거래’ 이야기라고 보면 된다. 실제 이 영화에 등장하는 유령회사명(Med Patent Technologies)은 김경준씨가 설립한 유령회사명과 일치했으며 유령회사의 대표는 이 영화의 주인공 이름을 따온 사실이 알려져 한때 화제가 됐다.

최근 글로벌투자자들의 비상장주식에 대한 관심이 높다. 미국 초고액자산가의 P2P 학습네트워크인 타이거21(Tiger21)에 따르면 회원 포트폴리오의 20%를 프라이빗에쿼티(PE)나 벤처캐피털(VC)에 투자한다. 국내 투자자가 볼 때 매우 생소한 자산군인데도 글로벌투자자들은 관심을 넘어 포트폴리오의 상당 부분을 투자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정도 비중이면 국내 개인투자자가 주가연계증권(ELS)에 투자하는 것과 맞먹는 수준이다.

◇ 세계적인 IPO 열풍

선진시장의 자산가들이 포트폴리오에 PE나 VC의 비중을 늘린 데는 환경적인 요인이 상당 부분 차지한다. 지난해 글로벌 VC업계는 그 어느 해보다 뜨거웠다. 글로벌컨설팅업체인 언스트앤영(EY)의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VC업계 투자규모는 총 867억달러에 달한다. 투자액 규모로 치면 거의 15년 만에 최대치를 경신했다. 그야말로 지난 2000년대 이후 벤처캐피털업계가 호황을 누린다는 의미다.

특히 VC의 투자를 받아 증시에 상장한 기업이 전세계 모든 시장에서 증가했다. 유럽의 경우 VC로부터 투자받은 뒤 상장한 기업이 지난 2013년 대비 600% 가까이 급증했는데 신생기업이 상장을 통해 기업가치를 극대화하고 투자자에게 큰 수익을 안겨주는 과정이 반복됐다고 볼 수 있다.

 
/일러스트레이터 임종철

한국도 ‘기업 상장 러시 열풍’에서 예외는 아니다. 대한상의가 최근 벤처기업 302개사와 벤처캐피털 50개사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기업 규모확대와 투자금 선순환을 위해 기업상장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62.9%를 차지했다. 유럽이나 미국의 경우 상장보다는 인수합병(M&A)을 통해 투자금을 회수한다는 의견이 많은데 한국 기업가의 경우 반대인 셈이다. 신진증시와 비교하면 상반된 결과로 해석이 가능하다.

이런 국내 기업가의 의견을 반영해서인지 몰라도 한국거래소의 올해 사업목표는 코스피·코스닥·코넥스시장의 신규 상장업체 수를 170개로 늘린다는 것이다. 불과 3년 전 29개였던 것과 비교하면 5배가 넘는 수치다. 이 같은 제도적 지원과 기업가의 상장 열망을 반영한다면 한국도 올 하반기에는 공모시장이 더 뜨거워질 것임을 유추할 수 있다.

전세계적으로도 상장이전 기업에 대한 투자와 상장업체 수가 강력한 성장을 보이고 국내에서도 몇년간에 걸쳐 민간과 정부가 투자한 실력 있는 비상장 기업의 상장이 이어지다 보니 최근 비상장기업의 주식이 거래되는 장외시장이 큰 관심을 끈다. 더군다나 초저금리와 공모주 열풍이 이런 열기를 부채질하는 셈이다.

지난해 공모시장의 대어라 불리는 삼성SDS와 제일모직을 통해 상당수의 개인투자자가 큰 수익을 냈다. 삼성SDS의 경우 비상장주식으로 투자한 개인투자자가 투자원금의 몇배에 달하는 기록적인 수익률을 달성하기도 했다. 여기서 수익을 본 개인투자자들은 비상장주식투자에 대한 매력을 느꼈고 자연스레 상장이전의 장외주식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 상장기업보다 더 비싼 비상장기업

국내 증시에서 황제주에 등극한 아모레퍼시픽은 액면분할을 하기 이전 주가가 장중 400만원을 돌파하기도 했다. 그런데 코스닥 상장을 앞둔 모바일게임업체인 ‘더블유게임즈’도 장외시장에서 주당 400만원을 넘어섰다. 이뿐 아니라 종합모바일서비스업체인 ‘옐로우모바일’도 주당 350만원이 넘는 가격에 거래되고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이 대주주인 현대엔지니어링은 이미 시가총액이 8조원을 넘었다. 생소한 장외시장이지만 큰 관심을 받는 비상장기업들이 어지간한 상장기업보다 더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이다.

따라서 특정 업종의 주식은 ‘부르는 게 값’이라고 할 정도로 웃돈을 줘도 사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수요자 위주의 시장에서 공급자 위주의 시장으로 바뀐 것을 확연하게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다 보니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앞서 언급한 영화 <보일러룸>처럼 자격을 갖추지 않거나 장외시장에서의 비상식적인 매매를 통해 가격을 올려 자금을 모집하거나 주식을 거래한다는 소문이 돌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재무상태와 비즈니스모델에 대한 이해보다는 ‘묻지마 투자’식으로 단편적인 모습만 보고 선뜻 투자를 결정하는 투자자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장외주식 투자는 상장 이전의 미래가 촉망받는 기업의 가치를 보고 투자해야 한다. 일반 상장시장에서의 주식거래와 달리 유동성, 가격의 투명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며 위조주권 사기가 일어날 여지도 있다. 단순히 고수익을 낼 수 있다는 이야기만 듣고 투자하기보다는 흙 속의 진주와 같은 기업을 발굴, 그 기업의 가치와 시간에 투자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초저금리시장과 유동성, 글로벌트렌드, 정부의 정책 의지 등으로 인해 비상장기업에 대한 투자는 적어도 당분간은 각광받을 것으로 예상한다. 주식시장이 상승했다고 모든 투자자가 수익을 내지 않듯이 장외시장의 흐름이 좋다고 해서 모든 장외주식 투자자가 돈을 버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막연한 기대보다는 투자의 본질인 기업의 미래가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85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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