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도 명인] 우리 술, 뚝심과 철학으로 빚다

[창간8주년] 숨은 8도 명인을 찾아서 / 무형문화재 송명섭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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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지방자치제도가 20년을 맞았다. 수도권 중심의 대한민국은 지난 20년 동안 전국 각 지역으로 정치·경제·사회·문화 등의 패러다임이 조금씩 이양됐다. <머니위크>는 창간 8주년을 맞아 전국 8도에서 본보기가 될 만한 지역의 숨은 인재를 찾아 ‘8명의 명인(名人)’으로 선정했다. 아울러 이들의 삶과 애환을 담은 ‘미담’을 통해 각박해진 우리 사회에 따듯한 위안을 전해주고자 한다.

기자가 몇년 전부터 종종 찾는 술이 있다. ‘송명섭 막걸리’라는 생소한 이름의 이 술은 요즘 시중에서 일반적으로 먹는 막걸리와는 맛이 사뭇 다르다. 유행하는 알밤·누룽지 막걸리처럼 독특한 향이 나는 것도 아니고 일본인이 좋아한다는 달짝지근한 막걸리의 맛과도 거리가 멀다.

처음 맛봤을 때는 밍밍하고 씁쓸하고 텁텁하기까지 한 맛에 거부감이 들었다. ‘이건 무슨 맛으로 먹나’라는 의문이 들었지만 소개해준 지인의 마음을 생각해 맛있는 척 마셨다. 그 후 몇달간 그 맛을 잊고 지내다가 어느날 문득 그 꾸밈없는 맛이 그리워졌다.

다시 그 가게를 찾아 이 막걸리를 어디서 살 수 있냐고 물어보니 “정읍에 사는 송명섭 명인에게 직접 주문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렇게 솔직한 막걸리를 만드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그를 직접 찾아가 만나봤다.



/사진=최윤신 기자


◆‘전통’에 대한 고집

“다른 건 기자양반이 쓰고 싶은 대로 쓰더라도 이건 꼭 바로 잡아주시게. 행간에 알려진 막걸리라는 말의 유래, 즉 막(마구잡이로) 걸러서 막걸리라는 건 틀린 이야기야. 아무리 서민들이 먹던 술이라지만 누가 그 귀한 술을 마구잡이로 먹고 싶었겠어. 막걸리는 ‘지금 막 걸러낸 술’ 이라는 뜻이지.”

기자와 대화를 나누며 송명섭 명인이 강조한 말이다. 옛 장터 주막에서는 쌀과 누룩으로 술을 담근 뒤 침전물을 가라앉히고 용수(술 거르는 용기)를 박아 그 안에 고인 맑은 술을 내놨는데, 장터에서 좋은 자리를 맡기 위해 장날이 오기 전 미리 도착한 사람들에게 ‘지금 막 거른 술’이라며 한잔씩 내주던 게 막걸리의 유래라는 설명이다.

전통주에 대해 무지한 기자가 작은 것 하나만 물어봐도 그는 술의 역사부터 에피소드, 담그는 방법까지 강의를 했다. 그리고 그 끝은 언제나 술은 ‘귀한 것’이고 ‘쉬이 여기지 말아야 할 소중한 문화’라는 명제로 귀결됐다.

송명섭 막걸리는 이런 그의 철학으로 만들어진 술이다. 전통방식 그대로 쌀과 누룩, 물만으로 빚어낸다. 여느 막걸리와 달리 아스파탐 등 감미료가 일체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먹는 순간 단맛이 입안을 채우는 일이 없다. 살짝 밍밍한 듯 씁쓸하고 시큼한 술이 입을 지나 목구멍으로 넘어가고 나면 은은한 단맛이 슬쩍 올라오는 정도다. 흔히 유통되는 막걸리의 단맛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처음에는 거부감이 들 수 있다.

따라서 초기에는 항의전화도 많이 받았단다. “유명해서 주문했더니 맛이 없다”는 등의 불평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런 항의에 개의치 않고 자신의 철학대로 술을 빚었다. 화학감미료를 넣는 등 단맛에 익숙한 현대인의 입맛에 맞추려고 노력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좋은 원료를 사용해 정성스레 빚어내는’ 정공법만 있을 뿐이다.

그의 주조장에선 직접 농사지은 쌀로 술을 빚는다. 정부미나 수입쌀로 빚으면 비용이 훨씬 절감되지만 이런 융통성을 발휘할 위인이 못된다. 그의 지인들이 그를 ‘곰 같은 사람’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공유하지 않으면 문화가 아니다

그의 이름을 내건 송명섭 막걸리로 많이 알려졌지만 사실 그가 보유한 ‘전통술 빚기 무형문화재’라는 타이틀은 탁주가 아닌 우리나라 전통주인 ‘죽력고’를 통해얻었다.

죽력고는 일제시대 양조면허제와 박정희 정부 시절의 양곡관리법 등으로 전통주 대신 값싼 희석식 소주가 보편화되며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질 뻔한 술이다. 이 술은 최남선이 <조선상식문답>에서 평양 감홍로, 전주 이강고와 함께 3대 명주로 꼽기도 했다.

양조장집에서 태어나 어머니의 심부름을 하며 자연스레 몸으로 죽력고 제조를 익힌 송씨는 죽력고를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었으나 ‘죽력’(대나무에 열을 가해 추출한 진액)이 약이라는 법 해석으로 인해 생산면허를 얻기까지 관과 끊임없는 줄다리기를 해야 했다. 1999년이 돼서야 일반판매가 시작되고 2003년 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

어렵게 지정됐지만 그는 무형문화재의 역할에 대해 불만이 많다. 무형문화재는 기술자가 아니고 전달자가 돼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그는 "문화란 기본적으로 여러 사람이 같은 행위를 하는 것"이라며 "기본적으로 공유가 전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예컨대 최씨 집안에서 만든 연엽주가 유명하다 치자. 과연 그 집에서 문을 꼭꼭 잠궈 놓고 술을 담궜을까? 문화란 그런 것이 아니야. 그 집 딸이 시집가서 시댁에서 빚어먹으며 전하고 종노릇 하던 끝순이가 다른 집에 팔려가서 빚어먹으며 공유하는 것이지. 죽력고도 우리 집안에서만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것이 아니야. 공유하지 못하면 무형문화재가 아니라 기술자에 그칠 뿐이지.”

그는 우리나라의 무형문화재 전수시스템은 공유가 아니라 세습에 그치게 한다며 한탄했다. 송씨는 “국가에서 전수자에게 보조금을 한달에 20만원씩 주는데 그러면서 다른 직업을 갖지 못하게 한다”며 “누가 전수받으려 하겠나, 결국 내 식구밖에 못하는 상황”이라고
막걸리의 주 재료인 누룩은 마당에서 직접 만든다. /사진=최윤신 기자
한숨 쉬었다. 현재 죽력고의 전수자는 단 3명에 그친다. 바로 그의 아들과 딸, 그리고 아내다.

기자가 처음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 그는 자신이 주말에 사격하는 모습을 세간에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주조장에서의 모습을 보고 싶다는 기자의 요청으로 취재는 주조장에서 진행됐지만 그의 이런 요청에는
막걸리를 만드는 송명섭씨. /사진=최윤신 기자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무형문화재도 자신의 인생을 충분히 즐기며 살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는 “무형문화재라고 하면 모두 고리타분하고 고생만 하며 살아가는 이미지를 떠올린다”며 “그래서야 누가 이런 문화를 계승하겠냐”고 말했다. 이어 “전통문화를 계승하면서도 자신의 인생을 행복하게 꾸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덧붙였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0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정읍(전북)=최윤신 chldbstls@mt.co.kr

머니S 산업 2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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