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빈곤 탈출] 거리로 내모는 대한민국

 
 
기사공유
머니S는 창간 10주년을 맞아 연중기획시리즈 <노후빈곤 길을 찾다>를 마련했다. 476호에서는 두번째로 ‘생존권 흔드는 노인정책’을 다룬다. 노인정책의 실태를 점검하고 노후빈곤이 일어나는 원인을 짚어봤다. 배고픈 노인, 집 없는 노인, 아픈 노인의 문제는 어디에서 시작됐는지, 정부와 시민사회가 문제 해결을 위해 어떻게 접근하고 있는지를 들여다봤다. 또 노인정책이 부족한 현실에도 어려운 이들을 향해 손길을 내미는 민간활동의 현황과 필요성도 알아봤다.<편집자주>


#1. 도와주세요. 저는 할머니와 단둘이 사는 학생입니다. LH 영구임대 아파트에 살다가 얼마 전 입주자격이 해지됐다는 편지를 받았어요. 오래전 연락이 끊긴 할머니 자식들의 명의로 아파트가 있다고요. 지금 기초생활수급을 받아 생활하는데 당장 길거리에 나앉을 형편이에요.

#2. 벌써 30년 됐지. 재개발한다고 집이 철거되고 이곳으로 정착한 지가. 투기꾼들은 개발 보상받는다고 위장전입도 한다던데 그건 너무 다른 세상 얘기야. 나한텐 살 수 있는 집이 여기뿐인데…. 정부가 힘없는 사람들을 내몰았으면 생계문제는 해결해줘야지.

바람막이 하나 없는 길바닥에 몸을 누이는 노숙인부터 찬바람이 집안 구석구석 들이치는 판잣집 거주민까지 ‘집 없는 노인’은 우리 사회의 최극빈층이다. 의식주는 인간적인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기본권이며 그중 주거안정은 정부의 개입이 가장 필요한 분야다. 개인의 힘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데다 토지개발이나 도시재개발 등 정부의 정책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서다.

문제는 정부의 주거정책이 길거리나 쪽방촌을 전전하는 노인뿐만 아니라 청년, 신혼부부, 중산층까지 아울러야 하는 만큼 여러모로 한계가 많다는 것. 많은 계층의 사람들이 정부지원 대출과 공공임대주택의 혜택을 필요로 하지만 이런 정책에서마저 소외된 가난한 노인의 주거문제는 사회의 가장 어두운 면을 차지한다.

서울 영등포 쪽방촌. /사진=뉴스1 DB

◆문제 ① 공공임대 부족한데 자격제도 유명무실

지난해 주택산업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 인구 656만9082명 가운데 79%가 독거노인이나 노인부부 가구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자가거주율은 70%로 높은 편이나 주거의 질은 양극화현상이 뚜렷하다. 1인당 평균 주거면적이 자가 46㎡, 임대 35㎡로 격차가 컸다. 젊은층의 1인당 평균 주거면적은 자가 24.7㎡, 임대 23.7㎡로 거의 차이가 없다.

정부가 노인 주거난을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공공임대를 늘리는 것이다. 65세 이상 저소득층 노인이나 부양가족에게 지원하는 영구임대는 한달 임대료가 평균 5만원 수준이다. 그러나 영구임대 공급량은 2015년 기준 19만5699호로 정부가 저소득노인으로 분류하는 294만2949명의 6.6%에 불과하다.

정부의 노인빈곤율 기준은 기초연금 등 복지에 의한 빈곤완화 효과를 반영한 44.8%다. 각종 사회보장제도로 보호를 받아도 빈곤에 허덕이는 노인인 셈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산정하는 방식으로 빈곤완화 효과를 제외하면 노인빈곤율은 61.7%에 달한다.

이렇게 부족한 영구임대마저 가난한 노인에게만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기초생활수급자, 국가유공자, 한부모가정, 북한이탈주민, 장애인, 저소득층 역시 영구임대 지원대상자다. 2011년 국토교통부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영구임대에 거주하는 노인비율은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여기에 정부는 청년임대나 민간임대(뉴스테이) 등 다양한 주거복지제도로 세금을 지원하기 때문에 노인빈곤층은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더 큰 문제는 제도적인 허점을 이용해 엉뚱한 사람들이 공공임대의 혜택을 누리는 것이다. 일부 공공임대는 저소득층이 아니어도 입주가 가능하도록 운영된다. 논란이 커지자 정부는 관련 규정을 바꾸는 절차를 밟고 있다. 한편에서는 정작 공공임대가 절실한 저소득노인이 서류상 무주택 세대원의 요건을 갖추지 못해 입주자격을 빼앗기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관계자는 “억울하게 입주자격을 잃은 분들이 민원을 제기하면 실제 조사를 통해 피해가 가지 않도록 지원한다”고 설명했다.

LH는 2002년부터 독거노인과 같은 주거빈곤층을 방문해 주택보수·청소·물품지원 등을 제공하는 ‘관리홈닥터’도 운영한다. 오맹석 주택관리공단 주거복지실 대리는 “공공임대에 거주하는 80세 이상 독거노인이나 장애인을 방문해 심부름과 혈압체크도 해드린다”며 “전국 300개 단지를 관리하는데 거의 100% 후원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예산과 인력에 어려움이 있다”고 소개했다.

강남 구룡마을 판자촌. /사진=김노향 기자

◆문제 ② 정부 재개발에 등 떠밀리는 노인들

서울 최고 부촌으로 꼽히는 강남 개포동에는 마지막 남은 판자촌 구룡마을이 개발을 앞두고 있다. 약 1200세대가 열악한 환경을 견디며 사는데 대부분이 60대 이상 노인이고 거동이 불편한 80대 이상 노인도 상당수다.

이곳은 1970~80년대 정부의 개발사업에 떠밀려 터전을 잃은 철거민들이 모이며 무허가 판자촌을 이뤘다. 이후 2000년대 들어 헌법재판소의 판결로 전입이 가능해지자 개발이익을 노리는 투기꾼들이 유입되기 시작했다. 서울시는 최근 구룡마을의 재개발을 확정하고 주민들에게 낮은 임대료로 임대주택 입주자격을 준다고 밝혔다. 그러나 여전히 대다수 주민에게는 임대료의 부담이 크고 주거불안의 위험마저 도사리고 있다.

영등포쪽방상담소 조사에 따르면 2003~2015년 두차례에 걸쳐 영등포 쪽방촌이 철거되는 동안 추적이 가능했던 철거민 71명 가운데 25명(35.2%)이 사망했다. 쫓겨난 이들은 임대아파트의 입주자격을 얻거나 주거이전비로 약 420만원을 보상받아 뿔뿔이 흩어졌지만 실제 임대아파트로 간 사람은 5명뿐이었다. 대부분은 보상금을 탕진해 노숙인이 되거나 병원에 입원한 것으로 확인됐다. 삶의 터전을 잃은 노인들에게 보상금은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서울시는 1995년부터 65세 이상 기초생활수급자에게 임대주택을 지원하고 있다. 연립주택, 다세대주택, 다가구주택을 매입해 저소득노인에게 빌려주고 1만~10만원의 월세를 지원한다. 2~5명의 노인이 공동생활하면서 직접 가사노동을 해야 한다. 쪽방에 비해 주거환경이 나은 편이지만 현재 공공임대 31개, 민간임대 16개가 운영되며 110명이 혜택을 받는 수준에 불과하다.

김형진 서울시 어르신복지과 사무관은 “입주자격만 갖추면 사실상 사망할 때까지 거주할 수 있지만 지자체가 주택을 싼값에 매입하기 힘든 데다 공동생활로 갈등이 생기는 어려움 등이 있다”고 설명했다. 성동구·성북구·동대문구·강남구·강서구 등 일부지역은 아예 지원되지 않는 점도 한계다.

독거노인. /사진=뉴스1 DB
거리 노숙인이 가장 많이 몰리는 서울역의 쪽방상담소. /사진=김노향 기자

◆문제 ③ 주거빈곤의 끝은 거리노숙… 전국 1100명

주거빈곤층의 최후는 노숙이다.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는 나락의 끝이다. 물론 모든 노숙인이 정책적 혜택을 받지 못해 길거리로 내몰리는 것은 아니다. 공동생활을 견디지 못해 지원을 거부하기도 하고 근로의지가 없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보건복지부의 보고서는 “노숙인 가운데 노인과 여성, 장애인의 증가 경향이 뚜렷하다”고 분석했다.

보건복지부의 가장 최근 통계인 2014년 조사에 따르면 전국 노숙인은 1만2347명, 이 중 34.4%가 서울에 산다. 대구 10.1%, 경기 9.6%, 부산 7.2% 등 대도시가 뒤를 잇는다. 시설 입소를 제외한 거리 노숙인은 1138명에 달하지만 노인의 비율은 정확한 통계가 잡히지 않는다.

미국과 일본 등 일찍이 고령화가 진행된 선진국에서는 50년 가까이 노인주거정책이 발달했다. 노인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일본은 다양한 방식의 노인주택을 공급한다. 건설·공급주체가 다양해 공급량을 늘릴 수 있고 노인의 소득이나 자산에 따라 맞춤형 공급이 가능하다. 미국은 비영리단체가 노인전용 임대주택을 짓는 경우 연방정부에서 최장 40년 동안 저금리로 대출을 지원한다. 영국의 경우 노인이 소유한 주택이 낡거나 노후화되면 낮은 금액으로 공사해준다.

반면 우리나라의 노인주거정책은 이제 걸음마 단계다.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처음으로 공공실버주택을 도입, 1234호 건립을 추진 중이며 2018~2019년 입주가 가능할 전망이다. 독거노인 등이 주거뿐 아니라 의료복지서비스도 이용할 수 있는데 임대료 수준이 영구임대와 비슷할 것으로 예상된다.

권대중 명지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노인주거문제는 제도적인 배경도 있지만 사회적 인식의 변화가 더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자기가 사는 지역에 노인주택이나 임대아파트를 짓는다고 하면 무조건 반대하고 설령 들어서더라도 이웃을 벌레 보듯 하는 행태는 정말 심각한 사회문제”라며 “영구임대나 실버타운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일반아파트와 임대아파트를 한 단지 안에 짓거나 상가건물의 위층을 노인에게 임대하는 정책 등을 고려해봐야 한다”고 제안했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7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김노향 merry@mt.co.kr  |  facebook

안녕하세요. 머니S 산업2팀 김노향 기자입니다. 부동산·건설과 관련해 많은 제보를 부탁드립니다.

이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
  • 0%
  • 0%


  • 코스피 : 2355.30상승 12.3720:51 05/27
  • 코스닥 : 646.01상승 2.9920:51 05/27
  • 원달러 : 1120.70상승 4.220:51 05/27
  • 두바이유 : 50.42하락 2.3620:51 05/27
  • 금 : 1268.10상승 11.720:51 05/27
  • image
  • image
  • image
  • image
  • image

커버스토리

정기구독신청 독자의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