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광장] 만원권, 주을까 말까

김범준 성균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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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걷다 바닥에 떨어진 만원권 지폐를 봤다. 사람들은 대부분 가던 길을 멈추고 이 돈이 진짜인지 확인할 것이다. 하지만 그냥 무시하고 가는 게 더 낫다는 사람들이 있다.

경제학에 ‘무위험 차익거래’(arbitrage)라는 게 있다. 말이 어려워서 그렇지 바닥에 떨어진 만원권을 줍는 경우로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땅 짚고 헤엄치기보다 더 쉬운 무위험 차익거래로 만원을 벌려면 문제가 하나 있다. 바로 먼저 본 사람이 임자라는 것. 길에 놓인 만원권을 무시하고 가던 길을 가라는 주장의 근거는 이렇다.

만약 그 지폐가 진짜라면 누군가 먼저 본 사람이 이미 집어갔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를테면 내 눈에 띈 그 지폐가 지금까지 남아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진짜일 가능성이 희박하니 힘들게 허리를 숙여 가짜임을 확인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 주장의 근거를 다시 적으면 “무위험 차익거래의 가능성은 발생하자마자 소멸한다”는 말이 된다. 고전경제학의 기본 가정인 ‘효율적 시장 가설’과도 관련된다. 이는 시장의 엄청난 효율성으로 말미암아 무위험 차익거래가 불가능하다는 이론이다.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자마자 누군가는 이 기회를 이용해 수익을 얻을 테고 한발 늦은 사람들은 수익을 낼 수 없다는 뜻이다.

누구나 아는 소문이나 신문기사에 의존해 주식을 사는 일반투자자들이 손실을 보는 이유를 설명할 수도 있다. 평범한 개인투자자가 한 기업의 밝은 미래에 대한 소문을 들었다면 그 소문은 현재 그 회사 주가에 벌써 반영됐을 것이다. 누구나 아는 소문에 혹해서 주식을 산다면 이미 높아진 가격에 주식을 산 것이어서 이후에 손실을 볼 가능성이 높다.

바닥에 놓인 만원권을 모른 척하라는 주장에 고개를 끄덕이기는 쉽지 않다. 사실 이 얘기는 고전경제학이 맹신했던 ‘보이지 않는 손’의 무한한 효율성을 비꼬는 농담에 가깝다. 규제 없는 시장의 엄청난 효율성을 인정한다 해도 다른 문제가 남는다.

물리학의 개념으로 접근하자. 아무리 안보여도 자본주의의 ‘보이지 않는 손’의 관성질량이 정확히 ‘0’일리 없다. 손이 움직이는 속도는 유한하다. 효율성의 작동은 유한한 시간이 걸리니 내가 만원권을 본 첫번째 사람일 수도 있다.

사람들은 대부분 길 위에 놓인 만원권 지폐를 주우려 허리를 굽히는 정도의 수고를 꺼리지 않는다. 잠깐 허리를 굽혔다 펴는 데 걸리는 시간과 에너지의 손실에 비하면 만원을 횡재하는 수익의 기댓값이 당연히 크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이 쳐다보는 시선으로 인한 체면상실 비용은 각자 알아서 계산하자.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8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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