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탄핵 경제-상] '경제민주화 시계' 다시 돌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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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정 사상 최초로 탄핵돼 조기에 막을 내린 박근혜정부는 경제부흥을 전면에 내세우며 야심차게 임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대표 경제 슬로건이었던 창조경제·경제민주화·민생경제 모두 뚜렷한 결과물을 얻지 못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거시경제지표는 역대 최저 수준을 기록했고 가계부채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폭증했다. 정치뿐 아니라 경제도 미완으로 끝난 박근혜시대의 슬픈 자화상이다.

◆신기루에 그친 장밋빛 전망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과거의 과오를 반성하지 않으면 똑같은 실수가 반복돼 미래로 나아가기 어렵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박근혜정부가 출범 1년 만에 내놓은 474경제비전(잠재성장률 4%, 고용률 70%, 국민소득 4만달러)의 실패는 예견된 결과다.

전임 이명박정부는 경제성장률 7%, 국민소득 4만달러, 세계 7대 강국의 의미를 담은 747비전을 제시했다가 모두 실패했다. 이를 위한 비즈니스프렌들리정책은 소수 대기업의 배만 불렸다는 비판을 받았고 정부가 호언장담했던 낙수효과는 없었다.

그럼에도 박근혜정부는 전임 이명박정부의 경제정책과 비전을 답습했다. 경제정책은 일관성 있게 추진되는 것도 필요하지만 헛된 구호임이 드러났을 때는 바꿔야 하는데 잘못갔던 길을 다시 가겠다고 고집을 부린 셈이다.

결국 박근혜정부의 474비전은 신기루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잠재성장률은 2%대로 초중반으로 떨어졌고 고용률은 60%대 중반에서 제자리걸음했으며 국민소득은 3만달러 문턱도 넘지 못했다.

반면 부의 불평등은 커졌다. 박근혜정부 4년간 집값 상승액은 총 781조원으로 국내총생산(GDP) 증가액(223조원)보다 3.5배나 높았다. 이 기간 자가보유율은 지속적으로 하락해 58%를 기록했다. 집값 상승의 이익이 복수의 집을 가진 유주택자에게 쏠렸다는 뜻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해 11월29일 대국민담화에서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대해 국민들에게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사진=뉴스1 DB

박근혜정부가 ‘빚을 내서라도 집을 사라’는 부동산을 통한 경기부양정책을 지속적으로 펼친 결과 가계부채는 지난해 기준 1344조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말부터 미국발 금리인상이 시작돼 조만간 한국도 금리를 올리면 하우스푸어의 증가가 불가피하다.

근로소득 격차도 커졌다. 지난 4년간 소득 1분위(하위 20%) 월평균 근로소득은 1.8% 감소한 반면 5분위(상위 20%) 근로소득은 12.1% 증가했다. 소수의 부자는 더욱 부자가 됐고 대다수 서민은 제자리걸음을 하거나 뒷걸음질 친 셈이다.

박근혜정부의 핵심 국정과제인 창조경제는 모호하다는 지적에 해명만 하다 특별한 성과 없이 좌초되는 분위기다. 민간인 국정농단의 핵심인물인 비선실세 최순실씨와 측근들이 창조경제를 내세워 부당하게 이익을 취한 사실이 드러나 창조경제라는 단어는 금기어로 전락했다.

이미 전국 지방자치단체들이 관련된 예산 투입을 줄였고 전국 18개 창조경제혁신센터 지원을 맡은 대기업들도 비슷한 입장이다. 이승철 전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이 최근 최순실·안종범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대기업들이 정부의 압박에 의해 창조경제혁신센터 설립에 동참했다”고 증언해 대기업이 지갑을 닫을 명분도 생겼다.

박근혜정부의 또 다른 핵심 공약이었던 경제민주화는 출범 1년여 만에 동력이 급격히 떨어졌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전체 20개 경제민주화 입법과제 중 대기업집단 지배주주의 사익편취행위 근절, 신규 순환출자 금지, 하도급법 개정 등 13개가 집권 1~2년차에 이행됐지만 나머지 정책은 미완의 상태로 남았다.

◆경제정책 옥석가리기 필요 

이런 상황에서도 현 경제팀은 박근혜정부의 경제정책 실패를 인정하지 않는 모습이다.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3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경제)지표가 목표에 못 미치는 게 많아서 잘한 게 아니다고 한다면 그렇다”면서도 “정책 목표는 상황에 따라 달성할 수 없는 것도 있기 때문에 정책 기본방향 설정이나 추진이 다 잘못됐다는 데는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나아가 유 부총리는 “지표 달성 실패는 외부요인이 큰 게 사실이지만 성장률은 선방했고 국제적으로도 호평을 받고 있다”며 “4대 구조개혁은 구체적 성과가 있었고 경제혁신 3개년 계획도 방향성은 옳았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일각에선 박근혜정부 경제정책의 잘못된 부분은 버려야 하지만 잘된 점은 계승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야권의 유력한 대선후보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창조경제와 관련 “박근혜정부의 벤처 창업지원은 잘한 일”이라며 “정권이 바뀌더라도 발전시켜야 한다”고 언급했다.

지난 12일 오후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서울 강남구 삼성동 자택으로 돌아온 박근혜 전 대통령. /사진=뉴시스 DB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조기 대선이라는 정치적 이슈와 무관하게 경제정책은 일관성 있게 추진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현 경제팀이 정치와 별개로 거시적 위험을 관리하고 금융시장 안정책을 추진할 수 있도록 정치권이 도와야 한다”고 조언했다.

다만 큰 틀에서 방향성은 유지하더라도 세부 실행계획은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최근 문 전 대표 측의 경제책사로 영입된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은 “경제민주화는 경제여건과 시대 상황의 변화에 따라 진화해야 한다”며 “(기존) 순환출자 금지보다 의결권을 제한하는 게 부작용을 줄이면서 같은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재계 한 관계자는 “박근혜정부의 경제정책 방향 자체는 맞다고 보지만 추진하는 방식에서 후진적인 면이 많았다”며 “새 정부에서 경제정책 전반을 원점에서 재검토해 새 판을 짜는 것은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기 때문에 큰 틀에서 기존 정책의 궤도를 유지하면서 세부계획을 수정하는 쪽으로 추진돼야 한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8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허주열 sense83@mt.co.kr

<머니S> 산업1팀에서 재계와 제약 등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취재원, 독자와 신의를 지키는 기자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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