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칼럼] '한국형 니트족'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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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 A씨는 대학 졸업 3년째인 외아들이 취업을 못해 속이 검게 탔다. 그동안 알바만 몇번 했을 뿐이다. 아들이 지내는 모습을 보면 취업을 못하는게 아니라 안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남편과 사별 후 혼자 돈을 벌기 위해 음식점에서 밤 늦게까지 일하고 집에 들어오면 아들이 하루 종일 무엇을 했는지 알 수가 없다. 남일처럼 생각한 니트족 문제가 내 가정에서 생길 줄이야….

◆청년 무직자 163만명 시대

'니트족'은 공부나 자기계발을 하지 않으면서 일할 의지조차 없는 15~29세의 청년 무직자를 뜻하는 신조어로 1999년 영국에서 유래됐다. 일본 후생노동성이 발간한 2004년 노동경제백서는 '비노동력인구(취업자 및 실업자 이외의 사람들) 중 15~34세로 학교를 졸업하고 미혼자이며 가사 및 통학을 하지 않는 자’로 ‘청년무업자’를 정의했다. 아르바이트나 시간제로 돈 벌며 살아가는 프리터족과는 구별된다. 구직활동을 하지 않으므로 공식적인 실업자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에서 15~29세 청년 니트족 비율은 평균 15%에 달하며 한국은 18.5%(163만명)로 더 높다. 대학원 진학과 유학을 준비하는 청년, 취업 시험공부를 하면서 비정규교육기관에 속한 공시족(공무원시험 준비생), 고시족(고시 준비생) 등도 비구직자로서 니트족에 속한다. 사교육이 전방위적으로 발달한 한국은 청년과 대졸자 취업에 도움되는 각종 사설학원의 광범위한 비형식교육 참여인구를 반영할 경우 니트족 비율이 줄어 OECD 평균 수준으로 추정된다.

‘OECD 한국경제보고서’에 따르면 청년집단에서 니트족 비율이 높은 국가는 터키,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멕시코, 칠레, 슬로바키아 순이며 8위가 한국이다. 금융위기 타격이 심각했던 남부유럽 국가들의 니트족 비율이 높다.

제3차 교육을 받은 청년집단에서 니트족 비율이 가장 높은 국가는 그리스, 이탈리아, 터키에 이어 한국이 4위를 차지한다. 한국 대졸자의 니트족 비율이 특히 더 높은 이유는 대졸자가 많으면서 청년 고용율이 OECD 평균보다 크게 낮기 때문이다.


/사진=이미지투데이

한국에선 고등학교 졸업자 중 대학진학을 선택한 비율이 1990년 33%에서 2008년 83%, 2014년 71% 등으로 크게 높아졌다. 대학 전공을 살려 취업하기가 그만큼 힘들어졌다는 방증이다. 특히 산업과 기술의 변화속도가 빨라짐에 따라 학교에서 습득한 능력과 기업이 요구하는 능력의 불일치가 심화됐다.

미스매치 비율은 일자리를 구한 청년에게서도 높게 나타나 15~29세 근로자의 37%가 전공 및 능력과 일자리와의 불일치를 경험하고 있다. 한국 청년층의 미스매치 비율은 OECD 국가 중 두번째로 높다. 대학 졸업자들이 자신의 업무능력에 맞는 일자리를 찾는데 실패하면서 고용이 줄고 청년 구직포기자 비율이 더욱 증가했다. 한국은 고학력 구직포기자 비율(24.8%)이 15~29세 연령집단 전체 구직포기자 비율(18.0%)보다 높은 몇 안되는 나라 중 하나다. 니트족이 될 가능성 여부를 미리 파악해 이를 예방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과 한국교육고용패널에서 니트족과 취업자에 대해 조사한 바에 따르면 고교 재학시절 니트족의 자존감이 취업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정적인 편이었다. 부모로서는 공부보다 자존감을 가질 수 있도록 신경쓰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앞서 얘기한 A씨의 자녀를 필자가 직접 상담할 때 느낀 바로는 고교시절 책상에 앉아 공부할 때 엄마가 뒤에서 지켜보던 기억을 지우지 못했다. 공부를 못해도 자존감이 있으면 성년이 될 때 자기만의 인생을 개척할 수 있다.

니트족은 학창시절부터 계획실천능력도 낮게 나타나 미래의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는 데 뒤떨어져 시간만 보내는 특성을 보인다. 비록 성적 향상속도가 더디더라도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함을 알 수 있다.

대학에 입학할 때는 비슷한 성적범위의 학생들이 들어오는데도 이후 학업능력이 크게 벌어지는 이유는 대학은 다른 사람이 챙겨주지 않고 스스로 공부해야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부모 대부분은 자녀가 강의를 제대로 듣는지조차 모른다. 스스로를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학업 성취도가 달라진다. 청소년 시절부터 자기가 생활을 관리하도록 유도하는 게 좋다. 물론 나이 들면서 바뀐 환경에 변화하는 청년이 많지만 그렇지 않은 청년을 자식으로 둔 가정이 늘어나니까 문제다.

니트족은 고교시절 자신의 건강상태에 대한 인식과 적성 인지 비중이 모두 낮게 나타났다. 대학 진학 시 적성에 맞는 학과,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분야의 학과를 선택하기보다 성적에 맞춰 가는 풍토가 적성 인지의 중요성을 간과하게 만든다.


심지어 공대 적성이면서도 의대 들어갈 성적이 된다면 으레 의대에 들어가고 인문학 적성이면서도 그 분야 입학생 성적보다 훨씬 우수한 성적이라면 경영대에 들어간다. 같은 단과대 안에서도 성적만 된다면 가급적 커트라인이 높은 학과에 지원한다. 그렇지 않으면 손해라고 생각한다.

그런 분위기에서는 적성에 대한 관심이 낮을 수밖에 없다. 성격 또한 니트족이 외향성, 친화성, 성실성, 개방성, 정서적, 안정성 등에서 모두 취업자보다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성격의 이런 측면은 취업을 시도할 때 불리하게 작용하므로 취업이 잘 안 되는 것이 당연하며 따라서 니트족이 될 가능성도 높아진다.

◆평생직장보다 '평생직업' 중요

길게 내다보면 학창시절 성적보다 그 시절에 형성된 성격이 사회생활에서 더욱 중요하다. ‘평생직장’보다 ‘평생직업’ 시대인 만큼 자신의 적성에 맞는 분야에서 능력을 잘 발휘하고 친화력과 성실성을 바탕으로 노력한다면 남보다 다소 늦더라도 결국은 유능한 인재가 될 수 있다.

청년들이 니트족이 되는 데에는 주거형태, 가구소득, 학벌, 사는 지역, 부모의 직업 등도 관련된다. 부모와의 동거 비율은 니트족이 취업자에 비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돈을 벌지 못하는 모습이 보기 싫더라도 부모로서는 함께 사는 한 최소한 먹고 지낼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자식을 집에서 내보내 혼자 알아서 먹고 살아가게끔 하는 것이 니트족에 벗어나게 하는 길이 될 수 있다. 일본 도쿄에서 운영된 ‘청년자립숙’이 니트족을 부모 곁에서 떠나게 해 몇개월 합숙 형태로 생활훈련 및 취업체험을 시킨 것을 참고로 삼을 만하다.

가구소득이나 부모소득이 높을수록 자녀의 비근로소득이 높아져 자녀의 경제활동 참여가 낮을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여러 조사연구 결과는 반대로 취업자보다 니트족의 가구소득이 낮았다.

일본에서도 니트족의 상당수는 저소득층에 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체적으로 경제가 매우 어렵던 시절에는 '헝그리 정신'이 강한 경우가 많았지만 경제수준이 상당히 올라간 후에는 가정형편이 어려울 때 무기력증에 빠지는 경우가 많아진 것 같다.



◆'가방끈'이 만든 한국식 비극

학벌이 대졸 이상인 청년 중 니트족 비율은 한국(24.4%)이 OECD 평균(13%)보다 높은 반면 중졸 이하에서는 한국(5.1%)이 OECD 평균(15.2%)보다 낮다. 다른 선진국은 학력이 높을수록 취업 비중이 높고 학력이 낮을수록 일하는 비율이 낮아지는 것과 달리 한국은 전혀 다른 특성을 보인다. 한국에서는 대부분 고학력 취득에 집중하다보니 수요공급상 저학력 일자리가 많다는 방증이 된다.

니트족은 취업자에 비해 여가시간은 길게 가지면서 독서량, 컴퓨터 사용시간, 운동시간 등은 오히려 적어 양질의 정보를 취득하고 심신을 단련하는 것도 귀찮아하는 것으로 보인다. 또 임금수준, 근무지역, 정규직 등에 대한 눈높이는 취업자에 비해 높지 않지만 ‘중소기업에는 취업하고 싶지 않다’고 답한 비율 역시 니트족(13.8%)이 취업자(12.7%)보다 높았다. ‘육체적으로 힘든 일은 하고 싶지 않다’는 응답자도 니트족(44.5%)이 취업자(39.9%)보다 많은 것으로 나타나 니트족이 까다로운 경향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중소기업에서 사람 구하기 힘들다는 말이 나오는 것을 보면 이해할 수 있다. 새로운 시대에 필요한 지적 능력과 기술 쌓는데 주력하지 않으면서 육체적으로 힘든 일은 하고 싶지 않다면 모순이다. 니트족은 취업자에 비해 자격증 취득 비율, 취업이나 창업, 능력개발 관련 교육훈련 참여 비율, 교양 취미교육 참여 비율 등도 낮게 나타났다.

이런 측면을 감안할 때 구직활동을 하는 청년 실업자 문제에서는 일자리 늘리는 것이 중요하지만 구직활동을 하지 않는 니트족에게는 정신력 회복이 더욱 중요하다. 영국의 E2E(Entry to Employment) 프로그램은 니트족에게 자신감을 회복시키고, 취업의욕을 고취시키고, 핵심기초능력을 배양하는데 초점을 맞춘다. 이 교육을 마친 후에 직무관련 추가 교육훈련 기회가 제공된다.

한때 니트족이었더라도 자신의 노력이나 주변의 도움으로 벗어나는 사람도 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니트 상태로 굳어지는 경우가 늘고 있다. 니트족 중 30%는 1년 후에도 그대로 니트에 머물며 은둔형 외톨이처럼 더욱 심각한 상태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

사정이 있어 니트로 지내더라도 그 기간이 너무 길어지지 말아야 한다. 나이가 많아지면 원하는 수준의 직장에 신입사원으로 들어가기 더욱 힘들어지므로 일정 나이에 도달하면 차선책, 차차선책의 일자리로라도 일단 사회생활을 시작해 인생을 단계적으로 업그레이드하겠다는 생각도 필요하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92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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