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노인들] '짐짝'이 된 부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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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수명이 길어졌지만 장수가 반갑지만은 않은 시대다. 경제적 풍요로움을 누리면서도 배우자를 잃거나 자식에게 외면당해 쓸쓸한 여생을 보내는 노인이 많다. 노인의 정서적 빈곤은 국가적 차원에서 고민해야 할 문제다. 노인 부양의식 쇠퇴나 학대, 고독사, 자살 등은 결국 사회적 비용으로 돌아온다. <머니S>는 연중기획 <노후빈곤, 길을 찾다> 6번째 시리즈를 통해 노인의 정서적 빈곤을 야기하는 문제들을 짚고 정부와 지자체가 살펴야 할 과제를 고민해봤다.<편집자주>



최근 TV 인기 시사프로그램에서 소개된 한 예비신부의 사연이 시청자의 공분을 샀다. 그는 “서울 신혼집을 마련할 자금이 부족한데 예비시부모님이 집을 사주겠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부모님 중 한사람이 아프거나 죽게 되면 부양하는 조건이라 고민”이라고 털어놨다. 이 사연을 두고 진행자들은 “부모자식 간 부양을 조건으로 거래하는 것이 공감하기 힘들다”, “부양이 싫다면 부모의 지원도 받지 말아야 한다”고 비판했다. 인터넷 게시판에는 자식의 이기심을 비난하는 댓글이 수백개 달렸다.

지난해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설문 결과 20~64세 1000명 중 부모를 부양하는 사람은 절반 수준인 56.7%다. 결혼한 자녀의 분가나 핵가족화가 일반적인 모습으로 자리잡았지만 때로는 이 예비신부처럼 ‘유산은 받고 싶으나 부양의무는 지기 싫은’ 생각을 드러냈다가 지탄받기도 한다. 

◆자식에게 짐 되는 노후

요즘은 가난한 부모만 자식의 앞날에 짐이 되는 것이 아니다. 결혼생활 3년차인 직장인 김모씨는 “주변을 보면 친부모든 배우자의 부모든 함께 살다가 부부사이에 다툼이 생기는 일이 많다. 대다수 부모가 각자 자기 자식만 위하다 갈등을 일으키기 때문에 부모님 집과 최대한 멀리 떨어져 사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하는 젊은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30대 직장여성 이모씨는 “부모님이 경제적 지원을 해주는 것은 부양의무와 별개”라며 “대도시 집값이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아진 데다 부모세대 대부분은 부동산자산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여유가 된다는 가정 아래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난 11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사회환경 변화에 따른 가족위기 특성과 정책과제’ 보고서를 보면 1500명 중 46.1%가 ‘가족 위기’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가족 위기의 원인은 경제적 이유(47.5%)가 가장 많았지만 부모부양·자녀양육(31.7%) 때문이라는 답변도 상당수를 차지했다. 또 가족의 성격·사고방식(13.7%) 등 경제적인 문제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사진=뉴시스 최동준 기자

전문가들은 이런 가족 간 세대단절이 노인의 사회적 고립을 일으키고 삶의 질을 저하시킨다고 지적한다. 이를 방치하면 노후의 정서적 빈곤을 야기할 뿐 아니라 결국은 복지를 위한 세금 증가나 다음 세대의 경제적 부담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김봉희 제주한라대학교 사회복지과 겸임교수는 “세대통합을 위한 노력은 젊은세대나 노인세대, 지역사회 모두에 도움이 된다”며 “세대 간 지속적인 교류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해외에서는 이런 세대통합이 중요한 사회적 이슈로 다뤄진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 태어난 베이비부머가 ‘단카이세대’라는 인구사회학적 용어로 정착됐다. 제조업강국인 일본의 단카이세대는 현장에서 은퇴 후 세대단절을 겪으며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일본정부는 단카이세대의 기술과 노하우를 다음 세대로 이전하기 위해 다시 현장에 복귀시키는 정책을 펼쳤다. 또한 단카이세대의 퇴직금과 여가시간을 겨냥해 여행·이주·주택 리모델링 등 새로운 분야의 사업을 지원함으로써 약 15조엔(약 153조원)의 경제효과를 냈다.

◆끝나지 않는 가사·육아

한편에서는 부양과 관계없이 가사와 육아노동을 부모세대에 떠넘기는 세태도 노후의 삶을 망가뜨리는 주범으로 지목된다.

정윤씨(37·가명)는 3살짜리 딸아이를 평일 내내 친정엄마에게 맡긴다. 올해로 70세인 친정엄마는 체력적으로 지쳐 몇번이나 병원신세를 지고도 맞벌이하느라 바쁜 정씨 부부와 손주를 외면하지 못한다. 정씨는 “엄마에게 미안하지만 베이비시터를 고용하면 비용이 매달 200만원 드는 데다 남에게 아이를 맡기기 불안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토로했다.

김기은씨(62·가명)는 10년 전 연년생 손주를 돌보다가 쓰러진 경험이 있다. 당시 김씨는 온몸에 마비가 와 수개월을 병상에서 지냈다. 지금은 손주들이 커 초등학생이 됐지만 맞벌이하는 자식 내외를 위해서 일주일에 3~4차례 집을 방문해 청소·빨래·설거지를 한다.

부모가 불편해 되도록 멀리 살겠다는 자식들이 있는 한편 맞벌이를 이유로 부모의 가사·육아노동에 의지하는 현상도 많이 볼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친정엄마에게 가사·육아노동을 맡기려고 한 아파트단지나 가까운 동네에 거주하는 30·40세대가 늘면서 ‘신모계사회’라는 신조어마저 생겨났다. 

이나영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가정과 사회에서 이중노동에 시달리는 딸들은 독립적인 삶을 꾸릴 수 없어 친정과의 교류가 늘고 있다”며 “엄마들은 딸이 자신처럼 불행한 삶을 살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에 가사노동을 대신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세대단절 극복 어떻게… 정부가 나서야

수원시 건강가정지원센터는 지난해 9월 ‘세대조화 샐러드 가족캠프’라는 행사를 열었다. 경기도는 가족 간의 세대단절을 예방하고 소통과 화합을 위한 가족사업을 진행하면서 정부의 지원도 받는다. 1박2일 캠프에서 조부모·부모·자녀 3세대가 모여 소통 교육을 받고 레크리에이션, 문화체험 등을 한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015년 ‘인문·정신문화의 진흥’ 정책을 추진, 인생나눔교실 등을 통해 선배세대의 경험과 지혜를 나누는 자원봉사사업을 펼쳤다. 소설가 권지예, 언론인 노재현, 첼리스트 양성원, 국립발레단 예술감독 강수진 등이 청년에게 멘토링하는 시간을 가졌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빠른 고령화로 노인인구가 급증하는 가운데 한정된 기회와 자원 분배의 문제로 세대갈등이 심해지고 있다. 정부는 세대교류 프로그램을 활발히 지원해 노인에 대한 젊은이들의 부정적 인식을 개선시키기 위해 노력 중이다. 이는 단지 노인만을 위한 정책이 아니다. 노인의 사회참여를 통해 정서적 빈곤을 줄이고 사회적 통합을 이루기 위함이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9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김노향 merry@mt.co.kr  |  facebook

안녕하세요. 머니S 산업2팀 김노향 기자입니다. 부동산·건설과 관련해 많은 제보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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