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곳곳에 상흔, 슬픈 역사의 섬

송세진의 On the Road – 서귀포 건축문화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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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 건축문화기행은 제주도를 꼼꼼히 살펴볼 수 있는 기회다. 10가지 테마 중 1코스의 주제는 ‘전쟁과 근대 건축’이다. 일제의 야욕이 남긴 전쟁 시설물과 한국전쟁의 흔적을 들여다보며 제주를 보다 깊이 이해하고 나라의 소중함을 생각해보자.


알뜨르비행장 애국기매국기.
남제주비행기격납고.

◆알뜨르비행장과 남제주비행기격납고

알뜨르비행장은 일본이 ‘대동아공영’이라는 헛된 야심을 실현하기 위해 건설한 비행장이다. 1937년 일제는 서양 세력으로부터 동북아를 지키겠다는 알량한 핑계로 대대적인 침략전쟁을 개시한다. 바로 중일전쟁이다.

하지만 일제가 제주 대정읍에 비행장을 건설하기 시작한 건 1920년대 중반의 일이다. 당시 기술로는 폭격기가 일본에서 중국까지 한번에 비행할 수 없었기에 중간 지점인 제주도에 내려 연료를 공급받게 한다는 계획이었다.

일제는 비행장 건설을 위해 살고 있던 사람들을 내쫓았다. 알오름동, 저근개, 골못, 광대원 등 일대의 마을이 사라졌다. 삶터를 빼앗겨 억울한 주민들은 강제노동에 동원됐다. 10여년의 공사 끝에 20만평 규모의 비행장이 만들어졌고 실제로 중일전쟁에서 중간보급기지로 활용됐다.

1940년대로 들어서며 일본의 패색이 짙어지자 일본은 미국의 공습에 대비해 ‘결 ◌호 작전’이라 명명한 본토사수작전을 계획한다. ‘결 1~6호’는 일본 본토 방어를 위한 계획이고 ‘결 7호’는 이곳 제주 공습을 대비한 계획이었다.

마음이 급해진 일본은 알뜨르비행장을 대대적으로 확장한다. 다시 조선인을 동원해 비행장을 80만평 규모로 늘리고 방호벽과 동굴진지를 구축하는 등 ‘전 섬 요새화’에 돌입했다. 1944년 300여명에 불과하던 제주 주둔 일본군이 1945년 8월에는 7만5000명까지 늘었으니 이곳에 감돌았을 일촉즉발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활주로는 길이 1400m, 너비 70m로 1980년대까지 비행기 활주로로 사용됐다. 처음 완공했을 때는 잔디를 깔고 그 위에 미끄러짐 방지를 위해 구멍 뚫린 PS철판을 깔았다고 한다. 이 잔디마저 양민에게 할당량을 주고 쥐어짜낸 것이었다.

일제는 비행기 격납고를 만들어 폭격기를 감춰두고자 했다. 폭 18.7m, 높이 3.6m, 길이 11m로 똑같은 크기의 비행기 격납고가 아직도 원형 그대로 19개나 남아 있다. 철근 콘크리트로 짓고 지붕에는 흙을 덮어 위장했는데 그 위로 풀이 자라 들판에 있는 작은 동굴처럼 보인다. 이곳에 ‘빨간잠자리’라 불린 ‘아카톰보’ 폭격기를 감춰두려 했는데 정작 전쟁 말기에 폭격기가 모자라 원래 목적대로 쓰이지는 못했다고 한다.

격납고 중 한곳에는 제로센 모형이 들어있다. 2010년 열린 ‘경술국치 100년 박경훈 개인전’의 설치작품이다. 작품명은 ‘애국기 매국기’로 격납고와 어우러져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전해준다.

 

지하벙커 입구.
진지동굴.

◆지하벙커와 진지동굴

알뜨르비행장에는 의심스러운 작은 구릉들이 많다. 흙과 풀이 자란 19개의 비행기 격납고 외에 4개의 환기구가 있는 지하벙커도 있다. 벙커 역시 수풀로 덮여 주변의 환경과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그런데 입구를 찾아 들어가면 보고도 믿기지 않는 콘크리트 시설물이 나타난다. 마치 어제 완성한 듯 벽면이 깨끗하고 공사도 깔끔하게 마무리됐다.

이 역시 일제가 조선인을 동원해 다급하게 구축한 시설이다. 패망해 물러가면서 제대로 사용하지 못해 새집으로 남았다. 폭 28m, 길이 35m의 크기가 다른 두 공간이 방처럼 맞붙어 있고 벽면 아랫쪽으로는 홀이 파여 있다. 중간쯤에 벽장처럼 파 놓은 곳이 있고 천장에는 지상을 향해 수직으로 뚫어놓은 통로가 있다. 환기구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활주로와 관련된 통신시설이라는 추측도 있다.

알뜨르비행장 남동쪽에는 섯알오름이 있다. 제주 4.3사건의 현장으로 이전에 일제의 탄약고였던 자리다. 순서대로 말을 하자면 일제가 물러나면서 전쟁무기를 바다에 수장시키고 시설을 폭파했는데 대형 탄약고가 폭파되며 오름에 움푹 들어간 부분이 생겼다. 이후 4.3사건이 진행되며 군경토벌군이 이 웅덩이에 예비검속자 252명을 몰아넣고 집단학살을 자행했다.

섯알오름은 셋알오름으로 이어지는데 이곳도 경악할 만한 곳이다. 길이가 1220m나 되는 일제의 진지동굴이 있는데 입구가 여러개고 각 통로가 바둑판처럼 복잡하게 얽혀 마치 미로와 같다. 폭 4m, 높이 5m나 되는 입구도 있다. 트럭이나 차량이 출입하도록 만든 통로다.

2차대전 말기에 일제는 제주 오름 80여곳에 700여개의 진지굴을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섯알오름에는 지금까지 발견된 진지동굴 중 가장 큰 것이 있다. 그들은 동굴을 파기 위해 제주 사람뿐 아니라 본토 조선인까지 동원했다. 우리 선조들은 매질과 굶주림에 시달리다 무너지는 토사에 목숨을 잃었고 병이 나면 일주일을 기다렸다가 나아지지 않으면 화장당했다고 한다. 나라 잃은 민족의 비극이다.

 

강병대교회.
모슬포성당 사랑의집.

◆강병대교회와 모슬포성당

해방의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우리나라는 다시 한국전쟁의 포화에 휩싸인다. 이때 신병훈련소가 제주에 창설됐다. 1950년의 일이다. 모슬포에 일본군이 남기고 간 군사시설에서 ‘강한 병사를 육성한다’는 뜻의 육군 제1훈련소 ‘강병대’가 신병훈련에 돌입했다. 3주간의 신병훈련은 매우 혹독했고 낯선 환경과 풍토병, 흉년까지 겹쳐 훈련병들은 굶주림에 시달렸다.

강병대교회는 훈련소 제7대 소장으로 부임한 장도영이 1952년에 세웠다. 이곳에서 훈련병을 위로하고 격려했다. 이후 훈련소는 해체됐지만 교회는 지금까지 남아있다. 제주돌인 검은 현무암 벽돌과 좁은 건물의 폭, 높은 종탑이 인상적이다.

모슬포성당에는 ‘사랑의 집’이 있다. 이는 1950년대 성당 건축양식을 엿볼 수 있는 건물로 1951년 성 프란치스코수도회 소속 설리반 신부가 종군신부로 부임한 후 짓기 시작했다. 이때쯤 송악산에 중공군 반공포로 수용소가 있었는데 1952년 포로 중 일부가 속죄의 의미로 이 공사에 참여했다고 한다. 1953년 반공포로가 석방돼 돌아간 후에는 해체된 수용소 자재를 일부 기증받아 공사에 활용하기도 했다. 현재는 1958년 본당으로 승격되면서 완공한 성당을 사용하고 ‘사랑의 집’은 별관으로 쓰인다. ‘사랑의 집’으로 부르기 시작한 것은 16대 주임 고병수 신부 때부터다.

우리가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에 주목하는 이유는 기억하기 위해서다. 역사는 잊혀지면 반복된다. 그 슬픔을 다시 겪지 않으려면 돌아보고 마음에 새겨야 한다. 다시 광복절이 돌아오지만 우리에겐 아직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많다. 그러므로 우린 기억해야 한다. 제주의 아름다운 들판에 여전히 남아있는 것들을.


형제도식당 해물탕.

[여행 정보]

[대중교통으로 여행지 가는 법]
알뜨르비행장: 제주국제공항 정류장에서 755번 버스 탑승 - 모슬포항 정류장 하차 - 택시 이동

[주요 스팟 내비게이션 정보]
알뜨르비행장: 검색어 ‘알뜨르비행장’, ‘4.3유적지 섯알오름학살터주차장’, ‘4.3유적지 섯알오름학살터화장실’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 1607-1
셋알오름 동굴진지: 검색어 ‘제주셋알오름일제동굴진지’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 (4.3유적지 섯알오름학살터에서 도보 이동)
강병대교회: 검색어 ‘강병대교회’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대서로 43-3
모슬포성당: 검색어 ‘천주교 모슬포성당’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영서중로 22

비짓제주
http://www.visitjeju.net

서귀포건축문화기행
한국관광공사 제주지사는 서귀포의 건축을 테마로 한 10개의 여행 코스를 개발했다. 기존의 올레길, 유토피아로 등 도보길을 그대로 활용해 여행자의 혼란을 최소화하고 주제에 집중했다. 코스에 따라 가족여행, 워크샵, 힐링여행, 전문가답사 등 다양한 여행을 선택해 즐길 수 있도록 스마트 투어가이드(스마트폰 앱), 도슨트 프로그램 등을 진행할 예정이다.
1코스: 전쟁과 근대 건축
2코스: 추사 따라 가는 길
3코스: 녹차밭 기행
4코스: 이중섭과 예술가의 길
5코스: 한국 건축 거장
6코스: 21세기 현대 건축
7코스: 서귀포 영화 촬영지
8코스: 목축과 건축
9코스: 제주 민속 탐방
10코스: 안도 & 이타미 코스

음식
형제도식당: 사계 해안도로에 있는 해물탕이 유명한 식당이다. 해물탕이나 조림을 주문하면 옥돔구이, 전복회 등이 기본으로 제공된다. 푸짐한 상차림으로 가족 단위 여행자들이 많이 찾는다.
문어해물탕 6만~8만5000원 / 갈치조림 7만~9만원
064-792-3401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형제해안로 282

숙소
올레스테이: 제주 올레가 운영하며 객실과 도미토리 등이 깔끔하고 합리적인 숙소다. 서귀포 중문에 위치해 교통이 편리하고 주변을 여행하기 좋다.
문의: 064-762-2167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중정로 22

☞ 본 기사는 <머니S> 제500호(2017년 8월9~15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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