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노믹스, 임대료를 잡아라] 젠트리피케이션 막은 성동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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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물주 위 건물주’라는 말이 유행하는 시대다. 임금은 제자리걸음이고 은행이자도 물가상승률보다 낮지만 부동산임대료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기만 하는 탓이다. 이런 부동산임대료에 문재인정부가 메스를 들이댔다. 문재인 대통령은 집권하자마자 주택임대차보호법,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등의 개정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일각에서 반시장적 규제라며 반발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규제가 오히려 임대료를 폭등시킨 해외사례도 들먹인다. 전문가들은 임대료 규제의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정부와 지자체의 세입자 보호 등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편집자주>

최근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로 거론되는 ‘젠트리피케이션’은 임대인과 임차인 사이의 양극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낙후된 지역이 개발로 번성하며 높아진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한 세입자와 영세상인, 원주민이 떠밀려나는 현상을 말한다.

최근 한 방송프로그램에서 유시민 작가는 “인류 역사상 젠트리피케이션을 막는 방법은 없었다”고 말했다. 그만큼 해결이 어려운 현상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막은 적이 없다는 말이 막을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 지자체와 시민단체 등은 젠트리피케이션을 막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시도했고 실제로 성과가 나타나기도 했다. 서울 성동구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민선 6기 정원오 구청장(49) 취임 이후 젠트리피케이션 문제 해결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은 결과 가시적인 성과가 드러났다. 정 구청장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젠트리피케이션, 해답은 ‘상생’

2014년 취임한 정 구청장의 눈에 보인 성동구의 가장 큰 위협은 젠트리피케이션이었다. 2012년부터 사회적기업과 예술가가 몰리면서 이른바 ‘핫플레이스’로 주목받기 시작한 성수동이 불과 2~3년여 만에 젠트리피케이션 위기를 맞은 것.

정 구청장은 성수동 지역에서 일하던 젊은 기업가들이 임대료 상승 때문에 떠나는 상황을 목격하고 젠트리피케이션 방지에 모든 정책역량을 쏟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청년사업가들이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성동구를 만들기 위해 정책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라 더 안타까웠다”며 “방법을 찾고자 젠트리피케이션 정책추진 TF를 꾸리고 젠트리피케이션 방지에 몰두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젠트리피케이션을 막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임대료 인상을 억제해야 하는데 이를 강제하면 건물주의 재산권을 침해할 수 있어서다. 그는 강제가 아닌 ‘상생’이라는 키워드에서 방법을 찾았다. 강제적인 임대료 상승 억제가 아니라 지역의 지속성을 위해서는 상생이 필요하다는 공감대를 확산시키고 제도적 기반을 조성하는데 역점을 뒀다.


정원오 성동구청장. /사진제공=성동구청

“젠트리피케이션은 지역의 몰개성화를 불러와 지속성을 앗아가는 현상입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것과 같죠. 지자체가 앞장서 건물주와 지역사회를 설득해 상생의 필요성을 알린다면 방법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성동구는 2015년 9월 전국 최초로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조례를 제정했다.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지역을 지속가능발전구역으로 지정하고 건물주와 임차인, 주민자치위원 등이 참여한 주민협의체가 지역공동체 생태계를 꾸려나갈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 것. 성수1가제2동 서울숲길, 방송대길, 상원길 등이 지속가능발전구역으로 지정됐다. 이 지역의 건물주 62%가 임대료 인상을 자제하는 자율협약에 동참했다.

성과는 놀라웠다. 성동구가 지속가능발전구역 내에서 올 상반기 계약을 갱신한 92개 업체를 대상으로 임대료, 보증금 등을 전수조사한 결과 상가임대료 평균 인상률이 3.7%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17.6%)에 비해 13.9%포인트나 하락한 수치다. 정 구청장은 “상생협약에 참여한 건물의 인상폭이 더 낮은 것은 사실이지만 참여하지 않은 건물도 주변 지역에 비해 인상률이 낮았다”며 “상생의 분위기가 조성된 것”이라고 말했다.

◆ 아직 가야 할 길 '구만리'

물론 이같은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가장 어려웠던 것은 건물주에게 ‘상생’이라는 가치를 인식시키고 설득하는 과정이었다. 성동구는 건물주를 대상으로 수차례 간담회를 실시해 젠트리피케이션 방지를 위한 대책이 단기적으론 손해로 인식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지역이 발전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꾸준히 설명했다.

실무자들은 건물주를 수차례 찾아가 개별 만남을 가지며 설득에 최선을 다했다. 이 과정에서 문전박대를 당하기도 하고 건물주를 만나기 위해 관외 주소지를 찾아가 무작정 기다리는 등 고생을 감수했다. 실거주 여부 확인을 위해 우편함을 뒤진 에피소드도 있다. 정 구청장은 “현재 젠트리피케이션 방지정책은 실무자들의 땀으로 얻은 성과”라며 “성동구 공무원들의 열정과 헌신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고 회상했다.

정 구청장은 꾸준한 설득을 통해 생각을 바꾼 건물주가 다른 건물주를 설득하고 홍보도 하는 것을 보며 자신들이 하는 일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확신했다. 그는 “최근 신촌과 이대 등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상권이 붕괴되는 사례를 접한 건물주들이 앞장서 정책에 협조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성동구의 행보가 젠트리피케이션을 막아냈다고 보기는 어렵다. 성동구는 현재의 단계에서 그치지 않고 젠트리피케이션 사각지대에 있는 소상공인을 보호할 ‘안심상가’ 제도를 추진 중이다. 안심상가는 성동구가 일정 공간을 매입해 적정한 임대료로 공급함으로써 임차인들이 안심하고 장사할 수 있도록 해주는 공간이다.

현재 성수동에 위치한 서울숲IT캐슬 1층 약 132㎡정도의 상가를 매입해 임대료 상승으로 내몰린 상가 임차인을 위한 단기안심상가를 조성한 상태다. 이와 별도로 공공기여 건축물에 5년 이상 마음놓고 장사할 수 있는 장기공공안심상가도 조성할 계획이다. 정 구청장은 “안심상가가 해당 지역의 임대료 가이드라인 기준을 제시해 지역 임대료의 균형추 역할을 함으로써 임대료 폭등을 사전에 억제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젠트리피케이션에 맞선 성동구의 행보는 앞으로 다른 지자체는 물론 정부가 가야할 길을 예시했다. 하지만 정 구청장은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고 말한다. 조례에 따른 상생협약에는 법적 구속력이 없어서다. 실제로 상생협약에 응하고도 임대료를 과도히 인상한 사례도 있었다.

그는 “법적 구속력뿐 아니라 건물주에 대한 인센티브, 장기계약보장, 인프라 구축 지원 등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제도 마련이 이뤄져야 한다”며 “성동구의 경험을 바탕으로 중앙정부에 실효성 있는 법과 정책 확보를 적극 건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02호(2017년 8월23~29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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