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칼럼] 행복지수 갉아먹는 '명절 잔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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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미지투데이

30대 후반 A씨는 올 추석연휴에 고향인 부산에 편안한 마음으로 다녀올 수 있겠다고 한다. 결혼할 사람이 생겨 지난달 부모님께 인사를 드렸기 때문. 고향엔 1년에 몇차례 못가지만 갈 때마다 결혼하라는 잔소리에 적잖은 압박감을 느꼈다. 더욱이 명절에 모이는 친지들까지 한마디씩 거들었다. 대학생 때부터 부모한테 경제적 지원을 받지 않고 장학금과 아르바이트 등을 통해 독립적으로 살아왔건만 무슨 걱정을 대신 해주는 건지 모르겠다.

◆미혼 83% "명절스트레스 시달려"

결혼정보회사 듀오가 최근 ‘명절 부담’에 관해 20~30대 미혼남녀(454명)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명절에 부담감과 스트레스를 느낀다고 응답한 사람이 83%에 달했다. 여성의 가장 대표적인 명절 스트레스는 ‘부모 및 친인척의 잔소리’(38.3%)였다. ‘귀성길 차표 전쟁과 교통 체증’(19.8%), ‘어려운 친지 사이에 강제 소환’(15.2%) 등도 짜증나는 요인으로 꼽았다.

부모 및 친인척 잔소리 중 가장 언짢은 것은 ‘결혼은 평생 안 할거야?’(32%)라고 묻는 가족의 성화였다. 그 다음으로 ‘취직은 했어?’(25.5%), ‘남들은 자식 걱정 안 한다던데’(20.3%), ‘그만 좀 먹어. 다이어트 안해?’(10%) 등이 꼽혔다.

남성의 가장 큰 명절 스트레스는 타인과 비교되는 ‘휴일수와 상여금 차이’(28%)였다. 이어 ‘가족 용돈과 선물로 인한 큰 지출’(25%), ‘부모 및 친인척 어른의 잔소리’(19.5%) 순이었다. 명절날 남성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은 ‘얼마 벌어? 떡값은 좀 나와?’(36.8%), ‘취직은 했니?·넌 뭐하고 살래?’(18.8%), ‘넌 왜 애인이 안 생기니?’(15.7%) 순이었다.

얼마 버는지 알아서 적게 번다면 돈 줄 것도 아니고 취업 안 됐으면 원하는데 취직시켜줄 것도 아니면서 왜 그런 것을 묻는지 모르겠다. 적게 벌거나 취업이 잘 안 되는 사람은 스스로 스트레스 받고 있는데 도움을 주지는 못할망정 한술 더 떠서 빈정대는 것은 분명 삼가야 할 언행이다.

◆행복지수 낮추는 '가족 잔소리'

남녀 모두가 꼽은 명절 스트레스 요인 중 1위는 ‘가족 잔소리’였다. 다음으로는 ‘추석 상여금’이 꼽혔다. 가족과 독립해 혼자 사는 미혼자의 74%가 가족의 잔소리 때문에 귀향길을 부담스러워했다. 한국은 명절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불필요한 말로 다른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만드는 사람이 많은 편이다. 이런 말투가 스트레스를 쌓이게 한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만 변해도 한국인의 행복지수가 지금보다는 높아질 것이다.

2년 전 추석을 앞두고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성인남녀 304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올해 추석이 기다려지는가'라고 물었더니 ‘반갑고 기다려진다’(12.9%)는 답변보다 ‘부담되고 스트레스 받는다’(36.3%)는 답변이 훨씬 많았다. ‘좋지도 싫지도 않고 별 감흥이 없다’(50.9%)가 절반에 달했다. 추석 스트레스를 상대적으로 더 많이 받는 비율은 여성이 남성보다, 기혼자가 미혼자 보다 높았다.

기혼여성(48.1%)은 절반 가까이 추석을 앞두고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답해 기혼남성(33.3%)보다 많았다. 명절에 받는 스트레스는 아내가 남편보다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취업을 못한 구직자(46.6%)가 추석에 받는 스트레스는 직장인(26.9%)이나 대학생(22.7%)보다 높았다. 이 가운데 결혼을 했음에도 직장을 구하지 못한 기혼구직자(52.8%)의 경우 스트레스 받는 비율이 더 높았다.

즐거워야 할 추석이 이처럼 부담스럽고 스트레스 받는 날이 되는 원인으로는 ‘친지들의 잔소리를 들을 생각에 스트레스를 받는다’(73.4%)가 압도적으로 높았다. 2위는 ‘추석경비 부담’(36.9%), 3위는 ‘명절 음식 준비 등 일할 생각’(28.3%)이었다. 시대는 빠르게 변하는데 추석 스트레스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트위터 사용자들이 작성한 글에서 추석 연관어 10위권 중 6개가 '스트레스·힘들다·울다·역겹다·적적하다·피로' 등 부정적 단어인 것으로 분석된 적이 있다. 연휴기간에 상처받고 사람 관계에 금이 가기도 한다. 두번 다시 맞기 힘든 황금 연휴를 즐거운 마음으로 지내지 못하고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친인척 등지는 사람들… 격려 화법 필요

이번 추석 연휴에는 상대방에게 결혼, 취업, 연봉, 외모 등에 관한 질문은 하지 말자는 캠페인이라도 벌이면 좋을 듯싶다. 굳이 한다면 ‘결혼 언제할 것이냐’는 식으로 압박하는 질문보다는 ‘하는 일은 잘 되고 있지?’라는 가벼운 질문이 낫겠다.

‘취업은 아직 못했니?’라는 말보다 “좀 늦어지면 어떠니, 신중히 잘 결정하는 게 중요하지" 등의 긍정적인 말을 하면 좋겠다.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이 보기 좋다’, “네 소신대로 하면 잘 될거다”라는 용기와 격려의 말을 건네자.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끼리는 상대방 신상에 관한 얘기보다는 ▲웃음을 주는 이야기 ▲각자의 취미 활동에 관한 이야기 ▲스포츠·영화·예술 등에 관한 이야기 등 훈훈한 덕담을 준비했다가 건네는 것도 좋겠다.

가장 고전적인 추석 스트레스는 '주부 스트레스'다. 설문조사기관 AMPM에서 주부(349명)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끝없는 음식 준비’(39%), ‘시부모님 잔소리’(12%), ‘주방 근처에도 오지 않는 남편’(12%), ‘허리 휘게 만드는 부모님 용돈'(11%) 등이 추석 명절에 주부를 가장 힘들게 만드는 요인이었다.

경기도여성능력개발센터에서 148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기혼여성이 추석에 가장 화나는 경우는 ‘하루 종일 음식준비 시키고 남자들은 TV만 볼 때’(48.9%)였다. 이어 ‘친정에 안보내주거나 늦게 보내주는 경우’(18.9%), ‘남편 내조를 못한다며 잔소리할 때’(13.6%), ‘친정 가면 잠만 자는 남편’(12.5%) 등이 주부를 힘들게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명절에 가장 듣기 싫은 시어머니의 말을 묻는 주관식 질문에는 “얘야 아범 좀 챙겨라, 야윈 것 같다”, “넌 살쪘구나!”, “내 아들 고생한다”, “나같이 좋은 시어머니 없다”, “벌써 가니?”, “애 하나 더 가져야지”, “집에서 놀지 말고 취직해라” 등이었다. 특히 남편(아들)만 챙기고 며느리에게는 비난 섞인 말을 한 것에 대해 서운함을 느낀 것으로 나타났다.

요즘은 명절에 모이는 가족 수와 친인척 방문이 줄고 있으며 전통적인 추석 준비에서 탈피해 주부 스트레스를 덜어주는 집도 있다. 명절 음식준비를 간소하게 하고 시장이나 마트에서 구입하는 집도 있으며 외식을 하는 경우도 있다.

제사를 축소하거나 아예 안하는 집도 느는 추세다. 신세대 남편은 아내와 함께 음식 준비를 하고 처가에 가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가정의 명절모습이 예전과 비교해 달라지는 것을 기분 나빠하던 노인들도 점차 순응해가는 편이다.

올 추석연휴기간 여행을 떠나는 항공권 검색량이 지난해 대비 약 8.5배 늘어난 900만건을 돌파해 역대 최대 수준을 기록했다. 추석 명절에 가족 친지가 모여 함께 시간을 보내던 풍습이 약해지고 개인적 여가를 보내는 사람이 증가함에 따라 유럽 등지로 해외여행을 가는 사람과 아직도 명절에 스트레스 받는 사람 사이 간극이 벌어지고 있다. 사회적인 새로운 양극화라 할 수 있다.

☞ 본 기사는 <머니S> 추석합본호(제507호·제50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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