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칼럼] 다시 운전대 잡은 7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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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미지투데이


나이 든 부모를 물심양면으로 봉양한 세대. 그들은 정작 자신이 노인이 된 후 자녀에게 의지하지 못한다. 예전엔 65세가 넘으면 자녀의 부양을 받는 경우가 흔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서울복지실태조사 심층분석 리포트(서울연구원, 2016.12.31)에 따르면 65세 이상 서울 노인 중 피부양자로 자녀나 손자녀에게 부양받는 노인은 16.5%에 불과했다. 오히려 24.8%가 노후에도 여전히 다른 가족원을 부양한다.

(손)자녀를 부양하는 노인이 22.5%에 이르고 자신보다 더 연로한 부모를 부양하는 경우도 0.5%로 나타났다. 나아가 1.8%는 자녀와 부모를 모두 부양하는 실정이다. 이들은 노인이 된 후에도 부모 봉양, 자식 부양이라는 이중고를 안고 사는 셈이다.

혼자 사는 노인 19.2%와 노인부부 39.6%를 합해 총 58.8%의 노인이 독립적으로 생활한다. 그러나 상당수는 자신만을 위해 또는 부부만을 위해 살지 못하고 여전히 위아래 가족의 경제적 부담을 안고 일을 계속 하고 있다.

◆마을버스 운전하는 70세 노인

버스 운전기사로 평생 일하다 은퇴한 A씨는 70세에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비좁은 언덕길 위 동네까지 다니는 마을버스를 1주일에 6일 동안 오전 6시부터 오후 1시까지 또는 오후 1시부터 자정까지 운전한다. 버스가 기점에서 돌아 나올 때 몇분 쉴 뿐이며 식사할 시간도 충분치 않다. 그가 적은 월급과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일하는 이유는 다시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에 처해서다. A씨는 마을버스 기사가 정년이 없어 나이가 많아도 근무할 수 있음을 다행으로 여기며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A씨 아들은 기술계통을 전공한 뒤 해당 기술을 살리지 못하고 서울의 한 서비스업체에서 일했다. 근무조건과 월급 등을 따지며 회사를 이곳저곳 옮겨 다니던 그는 급기야 아버지가 금융회사에서 대출받고 친척에게 빌린 돈으로 사업을 하다 돈을 날려버렸다. 70대인 아버지는 힘든 근무환경을 감수하며 일하고 신체 건강한 30대 아들은 자기 한몸을 책임지기는커녕 아버지에게 경제적으로 신세를 지는 상황이다.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86%가 부모 노후는 부모 스스로 준비해야 한다고 답했다. 부모에게는 노후를 스스로 준비해야 한다면서 자식이 부모 노후에 경제적 짐이 되는 것은 모순이다.

먹고 살기 힘든 시절엔 자식을 배불리 먹이는 것만으로도 부모로서 역할을 다했다고 여겼으며 대학진학은 부모의 의무로 여기지 않았다. 따라서 부모의 경제력이 부족하면 으레 대학진학을 포기했다. 그러나 지금은 국가 전체적으로 경제수준이 상승함에 따라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학비를 지원하는 것이 부모의 의무로 여겨지고 이제는 결혼까지 부모가 책임지는 게 일상화됐다. 나아가 사회인으로 살아가는 자식에게 경제적 문제가 생기면 기꺼이 해결해주는 부모도 있다. 자식을 대신해 부모가 빚을 얻는 경우도 적지 않다. 부모 스스로 자식에 대한 경제적 의무범위를 넓힌 것이 자녀의 사고방식에 영향을 미쳤다.

2008년 한 사회조사에서 자녀의 ▲대학교육 ▲대학원 교육 ▲미취업 시 용돈 ▲결혼준비 가운데 부모가 어디까지 지원해야 하는지 묻는 질문에 네 항목 모두 부모가 최소한 일부분이라도 도와야 한다는 답변이 지배적이었다.

이미 10년 전부터 부모가 자녀를 지원하는 범위가 상당히 넓었음을 알 수 있다. 2008년에는 자녀가 ‘대학 입학 전까지’ 혹은 ‘대학 졸업 때까지’ 경제적으로 지원해주는 것이 적당하다고 응답한 사람이 전체의 73.8%였는데 지난해엔 ‘대학 졸업할 때까지’ 혹은 ‘취업할 때까지’라는 응답비율이 72.9%로 나타나 지원기간이 더 늘어났다(육아정책포럼 2017 봄 제51호). 이밖에 ‘결혼 후 기반이 마련되고 안정될 때까지’라는 답변이 0.6%에서 3.0%, ‘평생 동안 언제라도’가 0.6%에서 2.3%로 늘어났다.

◆부모 의존 청년들, 취업 꺼린다

부모에게 의존할 수 없고 먹고사는 것을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청년들은 취업에 적극적이다. 반면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도움받는 청년들은 원하는 수준의 직장이 아닐 경우 취업을 미루는 취업 재수·삼수생으로 전락하는 일이 많다.

지난해 21~30세 청년과 해당 연령대 자녀를 둔 부모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부모 응답자 중 무려 86.6%가 자녀의 취업을 돕기 위해 경제·물질적 지원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들이 매달 지출하는 평균 지원액은 78만원 이상이었다. 학원비 29만6000원, 용돈 24만5000원, 주거지원비 24만1000원이 포함된다(‘청년 일자리 문제, 세대 간 인식차이와 부모세대의 역할에 관한 토론회’ 중). 이들 중 경제적 부담을 느낀다고 응답한 부모가 37.1%에 달했다.

그러나 기업들은 구인난에 시달린다. 올 1분기 일할 사람을 구하지 못한 미충원율이 대기업 4.6%, 중소기업 12.6%로 나타났다. 고용노동부의 ‘직종별 사업체 노동력조사’ 결과에 따르면 사업체의 적극적인 구인에도 인력을 충원하지 못한 미충원 인원이 전년보다 3.4% 늘어났다. 구인구직 사이에 미스매치현상이 심해진 것이다.

인력 미스매치의 주된 이유가 구직자 입장에서는 ‘임금수준 등 근로조건이 구직자의 기대와 맞지 않아서’(23.8%), ‘구직자가 기피하는 직종이어서’(16.5%) 순이다. 눈높이를 낮춰 취업하라고 조언하면 악성댓글이 달린다. 하지만 업체 입장에서는 직능수준이 높을수록 사업체에서 요구하는 학력·자격을 갖춘 지원자가 없거나 경력을 갖춘 지원자가 없어 인원 충원이 안된다는 하소연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자립심 키워줄 때, 부모도 반성해야

결혼준비부터 혼수비용은 물론 신혼집까지 마련해주는 부모가 적지 않은 것은 자식이 번듯한 아파트에서 살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청년과 부모 등 모든 계층에서 줄어들었다. 돈이 부족하면 부모 도움 없이 원룸, 반지하 빌라 등에서라도 신혼생활을 시작하겠다는 젊은 부부가 많지 않다. 원하는 수준의 집이 마련될 때까지 결혼을 미루다 늦게 결혼하는 경우도 흔하다.

이와 다른 생각을 가진 부모도 많다. 중견 탤런트 임채무는 한 방송에서 아들이 결혼을 안하는 이유를 묻자 “집이 없어서”라고 답한 적이 있다. 임채무는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너희들에게 집과 유산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아이들 스스로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 기술만 알려주겠다는 것이다.

개그우먼 이성미는 큰아들이 어릴 때 “대학교 2학기부터 등록금 지원을 안해줄 거다. 성인이 되면 경제적 지원은 없다”고 선언했다. 실제로 아들은 고등학생 때 아르바이트를 시작했고 미국에서 대학교를 다닐 땐 등록금을 버느라 휴학하기도 했다. 이성미는 “요즘 부모들이 너무 다 해주니까 아이들이 자립심이 부족하다”며 아이들에게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할 수 있는 자유를 주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자녀의 72%가 ‘부모의 지원은 대학교 졸업할 때까지’가 적당하다고 답했다. 이는 자녀보다 부모가 앞서서 자녀를 오랫동안 지원해주고 싶어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은퇴 후 자식에게 짐이 된다고 탓하기 전에 부모 스스로 자식을 그렇게 키운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자녀가 어린 시절부터 뚜렷한 경제관념을 갖도록 키운 부모는 자신의 경제적 노후준비를 더 잘할 수 있고 동시에 자녀를 부양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14호(2017년 11월15~21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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