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광장] '묻지마 투자'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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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글호 항해 중 다윈이 관찰해 ‘다윈의 핀치’라는 애칭이 붙은, 서로 다른 종이지만 뭉뚱그려 ‘핀치’라 부르는 새가 있다.
 
여러 섬으로 이뤄진 갈라파고스에는 섬마다 각기 다른 환경에 적응한 여러 종의 핀치가 있고 다윈은 ‘변이와 자연 선택’으로 축약되는 진화론으로 이들의 존재를 설명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지난해 11월 <사이언스>에 흥미로운 논문이 실렸다. 논문에 따르면 갈라파고스의 여러 섬 중 다프네 섬의 핀치를 오랜 기간 연구한 과학자들은 3세대 만에 새로운 종으로 보이는 핀치를 발견했다. 또 이 핀치가 6세대까지 성공적으로 번식을 이어가는 걸 확인했다.

신종 핀치가 등장한 과정은 다음과 같다. 100㎞ 이상 떨어진 다른 섬에서 우연히 날아온 외래 핀치 한마리가 고향 섬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다프네 섬에서 사는 다른 종의 핀치와 짝짓기를 해 자손을 남긴다.

사실 이런 종간 짝짓기는 드문 일이 아니다. 말과 당나귀의 잡종 노새, 사자와 호랑이의 잡종 라이거, 심지어 속간잡종인 메추리와 닭의 잡종 메닭도 있다. 이 종간잡종개체는 대부분 자손을 남기지 못한다. 낮은 확률로 자손을 남긴다 해도 부모 종에 비해 환경 적응력이 떨어져 쉽게 사라지곤 한다.

그러나 다프네 섬에서 종간 짝짓기로 태어난 잡종 핀치는 운이 좋았다. 토착종이 갖지 못한 딱딱한 열매를 먹을 수 있는 큰 부리를 외래종 아빠로부터 물려받은 것. 또 새로 태어난 잡종 핀치는 몸의 크기나 노래 소리가 토착 핀치와 확연히 달라 주로 근친끼리만 짝짓기를 했다. 결과는 딱 3세대 만의 신종 핀치 등장으로 나타났다. 현재 이 신종 핀치는 6세대까지 번식을 이어가는 것으로 보고됐다.

이 연구는 종간 짝짓기에 의해 빠른 속도로 새로운 종이 등장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줬다. 새로운 종의 출현은 오래된 화석 기록에서만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어쩌면 매일 매일 우리 코앞에서 벌어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사실 이 연구가 필자에게 놀라움을 준 이유는 또 있다. 어떻게 이런 연구가 가능했을까 하는 경탄이다. 연구를 주도한 프린스턴대학의 진화생물학자 그란트 부부는 다프네 섬 핀치에 대해 수십년째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새로 온 딱 한 마리의 핀치를 발견해 토착종과 다르다는 것을 한눈에 알아차리려면 장기간의 연구가 필수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연구가 가능할까. 필자의 답은 부정적이다. 경제발전에 대한 기여도로, 1년간 출판된 논문의 수로 재단할 수 없는 기초연구가 있다. 신종 핀치연구가 바로 이런 연구다. 어떤 연구는 장기간의 ‘묻지 마 투자’가 필요하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21호(2018년 1월3~9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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