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보 혁명] 미-영 '의료보장 진통'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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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훗날 2018년은 대한민국 의료복지에 혁명이 일어난 해로 기억될지도 모르겠다. 이른바 '문재인케어'로 명명된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 정책으로 비급여 항목 대부분이 급여화되기 때문이다. "돈이 없어 치료를 못 받는 국민이 없도록 하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의지는 국민적 지지를 뜨겁게 받는다. 하지만 반발도 만만찮다. 당장 건강보험료가 천정부지로 치솟을 거라는 예상과 함께 의료계가 공멸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머니S>가 올 4월 문재인케어의 본격 도입을 앞두고 실현 가능성을 진단했다. 또 의료계의 입장과 '계륵'이 될 위기에 처한 실손의료보험업계의 미래, 해외의 '건보 갈등' 사례 등을 짚어봤다. <편집자 주>
 

정부가 이른바 ‘문재인케어’의 시동을 걸었지만 논란이 가라앉지 않는다. 온 국민의 건강·생명과 직결된 문제인 만큼 뜨거운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이 같은 논란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일이 아니다. 국민건강은 어느 나라에서나 최우선 과제다. 따라서 의료보장제도를 둘러싼 논쟁은 전세계 곳곳에서 벌어진다. 완벽하게 자리 잡은 제도가 있다면 이를 빌려 쓰면 되겠지만 아직 적절한 사례를 찾기는 어렵다. 의료보장제도는 각 나라마다 고유한 문화와 정치·사회구조, 철학을 바탕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단편적인 기준으로 우열을 가릴 수도 없다. 한가지 확실한 점은 사적의료보장과 공적의료보장의 양 극단을 이끌어온 미국과 영국마저도 기존 제도가 흔들린다는 사실이다.

◆'오바마케어' 폐지 실패한 트럼프

미국은 우리보다 앞서 의료보장제도를 놓고 진통을 겪었고 이를 둘러싼 갈등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미국의 의료보장제도를 둘러싼  갈등은 문재인케어라는 말을 낳게 한 이른바 ‘오바마케어’에서 비롯됐다.

오바마케어와 문재인케어는 국가의 보장성을 강화한다는 점에서 비슷하지만 동일하다고 보긴 어렵다. 미국과 한국의 기존 보장체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문재인케어가 이미 전국민의 건강보험 가입을 이룬 상황에서 비급여항목 대폭 축소를 목표로 하는 반면 오바마케어는 전국민 건강보험 가입 의무화가 목표다.

미국은 건국 당시부터 유럽의 대다수 국가와는 달리 의료제도를 환자와 의사간의 사적관계로 여겼다. 공적의료보험 도입 논의는 의료계의 반발에 부딪혀 사적의료보험으로 발전했다. 대부분의 근로자는 노사 단체교섭을 통해 회사에서 보험을 보장받았지만 노인과 일부 빈곤층은 의료보험의 사각지대에 놓였다.

중앙정부의 ‘메디케어’와 주정부의 ‘메디케이드’ 등 공적의료보장제도는 충분한 대안이 되지 못했다. 많은 주 정부에서 공적의료보장제도를 도입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이런 미국에서 오바마는 최초로 정부의 보험 개입에 성공했다. 민간의료보험에 정부가 예산을 할당해 ‘적정수준의 의료보험’(Affordable Care Act·ACA)을 만들어 전국민의 의료보험 가입을 의무화한 것. 이른바 오바마케어의 핵심이다.

오바마케어는 시행과정에서 극심한 갈등을 빚었다. 관련 법안은 2010년 의회를 통과했지만 공화당의 반발이 컸다. 민주당과 공화당의 극단적 대립은 17년 만의 셧다운(정부폐쇄)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미국에서 오바마케어를 둘러싼 갈등은 아직 가라앉지 않았다.

2016년 대선에서 오바마케어 폐지를 주요공약으로 내건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취임 1년이 지나도록 의무가입조항을 없앴을 뿐 오바마케어를 폐지하지 못했다. 올해 ACA 가입자는 지난해보다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김태근 미국 아델피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 교수는 지난해 가을 국제사회보장리뷰에 실은 ‘오바마케어 대체에 실패한 트럼프케어’ 보고서에서 “여러 비판에도 불구하고 오바마케어는 미국 사회에서 자생할 수 있는 정책임이 증명됐다”며 “적어도 트럼프 집권 종반까지 행정부 주도로 이를 대체할 의료보험 개혁안을 마련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고 내다봤다.

/사진=이미지투데이

◆NHS 존립 위협받는 영국

자본주의국가 중 최고의 종합보건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으로 알려진 영국에서도 의료보장제도와 관련한 갈등이 첨예하다.

영국의 보건의료제도인 NHS(국가보건서비스)는 영국 국민이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제도다. 2012년 런던올림픽 개막식에 NHS의 로고를 내세웠을 정도다. 하지만 전세계적으로 불어닥친 신자유주의 물결 앞에서 영국인의 자부심인 NHS도 흔들리고 있다.

NHS는 1942년 영국 경제학자 윌리엄 헨리 베버리지의 ‘사회보험 및 관련서비스에 관한 보고서’에서 출발했다. 베버리지 보고서는 '빈곤·질병·무지·불결·실업'의 극복 방안을 제시했다. 특히 국가의료서비스에 대해 포괄적 서비스와 무상의료라는 원칙을 강조했다.

NHS는 ‘모든 국민은 지불능력에 상관없이 의료 욕구에 따른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설립 원칙 아래 지금까지 무상 의료를 실현하고 있다.

NHS는 지난 70여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의료보장제도라고 평가받았지만 2010년대 들어 부정적인 측면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재정 부족과 이로 인한 부분 유료화, 의사들의 이탈, 너무 긴 진료 대기시간 등의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의료 수준에 있어서도 경쟁력을 잃어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5년 OECD의 평가에서 영국의 보건체계는 다른 OECD보다 뒤처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2015년 보건소비자파워하우스(Health Consumer Powerhouse)가 발표한 유로보건소비자지표에서도 영국의 보건의료체계는 유럽에서 14위에 머물렀다. 낮은 접근성과 하향식 관리 문화, 낮은 의료의 질이 그 이유로 꼽혔다.

NHS의 위기는 2016년 브렉시트(영국의 EU탈퇴) 과정에서 증명됐다. 브렉시트 찬성 여론을 만드는데 NHS 위기 담론이 큰 역할을 한 것. EU 내 상대적으로 중·저개발 국가에서 온 이주민이 증가하며 NHS 기금이 자국민에게 적게 사용된다는 의견이 대두했다. NHS 유지에 대한 영국민의 불안이 반영된 셈이다.

닐 런트 영국 요크대학교 사회정책학 교수는 “NHS는 영국 국민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지만 정치권과 전문가는 ‘전면 개혁’을 통해 NHS를 21세기 국가 통합 보건사회복지 시스템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과제에 직면했다”며 “전체적인 관점에서 의료제도를 연구하고 다양한 분야에 걸쳐 논의를 지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22호(2018년 1월10~16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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