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잃은 규제] ④포괄규제 ‘골든타임’을 잡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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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주체들의 규제개혁 요구가 커지는 가운데 문재인정부가 규제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관심이 집중된다. 진보의 가치와 규제완화가 충돌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특히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규제로 우리나라 산업 경쟁력에 경고등이 켜진 상황이라 산업계의 불안감이 가중되고 있다. 이에 <머니S>는 경제 각 분야에서 쏟아지는 규제개혁 요구의 당위성을 짚어봤다. 아울러 최근 이슈로 떠오른 가상화폐 규제를 돌아보고 문재인정부 규제개혁의 방향을 진단했다.<편집자주>

순항하던 문재인정부가 규제라는 암초에 주춤거린다. 지난해 5월 출범 당시만 해도 규제를 개혁하고 경제를 활성화하겠다고 외쳤지만 그 열기는 반년 만에 사그라들었다. 일각에서는 문재인정부의 규제개혁 공약이 공염불에 그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출범 초기 ‘포괄적 네거티브 규제’를 도입하겠다고 선언했지만 아직까지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어서다.

규제개혁은 우리경제의 숙원이다. 창조경제연구회가 집계한 우리나라의 등록 규제 수는 2000년 6912건에서 2003년 7827건으로 늘었다. 이어 2006년 8084건으로 200건가량 증가한 데 이어 2009년에는 1만2905건으로 크게 늘었다. 이후 2012년 1만4889건, 2015년 1만4688건 등 큰 폭의 변화는 없었다. 신관호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규제개혁이 오랫동안 주요 국정과제로 추진됐지만 혁신은 아직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지금이 수십년간 이어진 규제개혁 논란의 마침표를 찍을 수 있는 ‘골든타임’이라고 말한다. 문재인정부가 역대 가장 높은 수준의 지지를 받고 있어 규제 개혁의 오해와 갈등을 최소화하고 정책 추진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 수 있다는 분석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해 12월27일 열린 국민경제자문회의 겸 확대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규제혁신은 혁신성장을 위한 토대로 과감하고 창의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며 규제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지난해 12월27일 문재인 대통령이 국민경제자문회의 겸 확대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DB

◆“포괄적 네거티브 규제 찬성”

기존 규제는 일제강점기 법제에 뿌리를 둔 포지티브 방식으로 모든 것을 금지하고 관청이 허용하는 선에서 사업을 진행하는 구조였다.

현 정부는 4차 산업혁명을 눈앞에 둔 시점에서 규제개혁의 틀을 '포괄적 네거티브'로 전환하기로 결정했다. 포괄적 네거티브는 법령의 개정 없이도 혁신제품과 서비스 출시가 용이한 장점을 지닌다. 이는 신산업·신기술 등에 대해 사전허용·사후규제 방식을 취하는 것으로 빠른 환경변화에 민첩하고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어 각광받는다.

이와 함께 정부는 지난해 9월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신사업을 시도하기 위한 방안이자 포괄적 네거티브의 핵심인 ‘규제 샌드박스’를 도입한다고 밝혔다. 규제 샌드박스는 어린이들이 자유롭게 놀 수 있는 놀이터 모래밭처럼 제한된 환경에서 규제를 풀어 신사업을 테스트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뜻한다.

정부의 이 같은 규제개혁 방침은 학계의 환영을 받았다. 조장옥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금껏 우리는 규제에 가로막혀 시장에서 새로운 기술을 개발해도 상업화를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외국의 경우처럼 관련 법이 없으면 사업을 진행할 수 있는 네거티브 규제를 도입해 혁신이 가능한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재용 서울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도 같은 입장이다. 송 교수는 “규제 방향의 전환이 시급한 시점에 정부가 포괄적 네거티브 규제를 시도하는 점은 다행”이라며 “신산업에 국한시키지 말고 패러다임의 대전환을 통해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고 신성장동력을 창출할 수 있도록 포괄적 네거티브 제도를 산업계 전반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산업계도 정부가 포지티브 규제에서 네거티브 규제로 방향을 바꾸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특히 규제 해소가 절실한 벤처업계에서 긍정적인 반응이 두드러졌다. 벤처기업협회 한 관계자는 “현재 우리나라는 연간 규제비용이 150조원으로 추산될 만큼 미국, 일본, 중국 등 선진국과 주변국에 비해 지나치게 규제가 많고 복잡하다”며 “새로운 사업과 혁신 기술·서비스가 등장하기 위해서는 포괄적 네거티브로의 변화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변화 큰 만큼 방향설정 신중해야

현재 진행 중인 문재인정부의 규제개혁 시도는 지금까지 전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을 만큼 전향적이다. 전문가들은 그만큼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규제개혁의 방향을 설정하는 데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말한다.

전문가들은 규제개혁의 방향을 설정하기에 앞서 낡은 개혁시스템부터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혁우 배재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는 “문재인정부의 규제개혁추진체계는 김대중정부의 규제개혁위원회부터 이어진 것으로 15년 이상 변화가 없었다”며 “시스템에 대한 투자 없이 규제개혁만을 외쳐서는 제대로 개혁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정부 관계자들은 규제가 실제로 어떻게 왜곡됐는지, 당시와 상황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확인하고 규제개혁 시스템을 수정하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정부가 앞장서는 방식의 규제개혁이 아닌 민간이 주도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김주찬 광운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겸 한국규제학회장은 “규제개혁의 핵심은 민간부문에 혁신의 길을 터주는 쪽으로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새로운 방향을 추진했던 점을 유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일각에서는 규제개혁을 통해 성장발판을 마련한 일본의 사례를 벤치마킹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본도 2010년 초반까지 규제가 강력했지만 아베 정권의 규제개혁이 결실을 맺으면서 도요타, 닛산, 시세이도 등 대표 기업들이 생산설비를 본국으로 ‘U턴’하고 있다.

전인우 중소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일본 아베정권의 규제개혁은 각각 별개의 정책이 아니라 금융·세제 등 여러 분야를 체계적으로 뒤섞어 경제계 전반에 활력을 불어 넣고 있다”며 “일본이 규제개혁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각지대를 다양한 방식으로 최소화한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24호(2018년 1월24~30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박흥순 soonn@mt.co.kr

<머니S> 산업1팀 IT담당 박흥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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