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잃은 규제] ①'글로벌 경제 방향타' 맞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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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주체들의 규제개혁 요구가 커지는 가운데 문재인정부가 규제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관심이 집중된다. 진보의 가치와 규제완화가 충돌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특히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규제로 우리나라 산업 경쟁력에 경고등이 켜진 상황이라 산업계의 불안감이 가중되고 있다. 이에 <머니S>는 경제 각 분야에서 쏟아지는 규제개혁 요구의 당위성을 짚어봤다. 아울러 최근 이슈로 떠오른 가상화폐 규제를 돌아보고 문재인정부의 규제개혁 방향을 진단했다.<편집자주>

자유방임주의 경제학자인 밀턴 프리드먼은 ‘규제’가 이익집단과 정치인, 관료 사이에 형성되는 단단한 정치관계(철의 삼각형·Iron Triangle)에 의해 생성된다고 주장했다. 이익집단이 정부와 정치인에게 입맛에 맞는 규제를 만들어 달라고 청탁하고 관료들과 정치권은 이에 영합해 규제를 실행한다는 것. 규제의 속성에 대한 통찰이다.

하지만 규제는 단순히 이런 연결고리의 결과물만은 아니다. 광범위한 규제완화가 불러올 미래도 낙관할 수만은 없다. 2015년 발생한 의정부 화재참사가 대표적인 사례다. 2009년 주택난을 해소하기 위해 규제를 대폭 완화해 도입한 도시형생활주택의 취약한 방재 시스템 탓에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각지대에 놓일 수밖에 없는 안전과 환경, 인간의 기본권 등을 수호하기 위해선 적절한 규제가 필수적이다.

그럼에도 산업계는 규제를 완화하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과도한 규제가 사회의 성장동력을 갉아먹는다는 것. 실제로 일부 규제는 각 주체의 자유를 제한하기 때문에 창의성을 옭아매고 투자를 위축시킨다. 규제개혁은 글로벌 경제 체제와 맞물려 거부할 수 없는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


◆ 진보정권서 규제개혁 많아 


문재인정부 역시 출범과 동시에 규제개혁 드라이브를 걸었다. 그러나 산업계에선 상대적으로 진보 성향을 띠는 문재인정부의 규제개혁에 의구심을 품는다. 지난 10여년간 보수 정권에서 행해진 규제개혁에 비해 동력이 떨어질 것이란 생각에서다. 앞서 이명박·박근혜정부는 기업과 투자자의 입장에서 규제를 ‘철폐의 대상’으로 간주했다. 옳고 그름을 따지기는 어렵지만 일관된 방향성은 있었다.

이른바 ‘촛불 혁명’ 이후 집권한 문재인정부의 규제정책은 이와는 궤를 달리한다. 기업보다는 ‘민생’에 초점을 둬서다. 이 같은 정책방향에선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주창한 이전 정권에 비해 규제개혁의 어려움이 크지 않겠냐는 우려가 나온다. 부동산 정책 등에서 보여준 규제강화 노선이 산업계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다. 하지만 이 같은 생각은 진보와 보수의 틀로 규제를 바라보기 때문에 나타나는 오해다. 친기업과 성장동력 마련은 같은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실제로 우리나라 규제개혁의 역사를 살펴보면 진보성향의 정권에서도 상당한 성과가 있었다. 규제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규제개혁이 본격화된 시점을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민의정부’ 시절로 본다. 김 전 대통령은 취임과 동시에 대통령 직속 규제개혁위원회를 신설하고 규제 타파에 나섰다. 집권초인 1998년 1만327개에 달했던 규제 수는 집권 3년차인 2000년 6912개로 감소하는 성과를 냈다.

이어진 참여정부도 규제개혁에 적극적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총리 주재 규제개혁장관회의를 신설하고 민관합동 규제개혁 기획단을 설치했다. 이에 따라 2003년 7827개였던 규제 수는 2007년 말 5114개로 대폭 감소했다. 반면 이명박 정부 집권 2년차인 2009년 1만2905건으로 크게 늘었고 2012년에는 1만4889건이나 됐다. 진보 성향의 정권이 오히려 규제를 줄이는성과를 낸 것이다.


서비스산업발전법 폐기와 생명안전보호를 위한 공동행동 회원들이 서비스산업발전법 및 규제프리존법 폐기를 주장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고범준 기자

◆ 어떤 규제, 어떻게 개혁해야 하나

산업계가 최근 강력하게 요구하는 규제완화 분야는 안전과 환경 문제를 불러오는 부분이 아니다. 규제를 없애기 위해선 당위성을 먼저 갖춰야 한다. 기업과 투자자들이 주장하는 규제완화 대상은 ‘갈라파고스 규제’다. '다른 나라에는 없고 한국에만 있는 규제'를 뜻한다. 글로벌 시대에 맞지 않는 기형적인 규제이므로 철폐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2016년 7대 갈라파고스 규제를 선정한 바 있다. 수도권 규제와, 투자개방형 의료법인 제한, 지주회사 규제, 중소기업 적합업종, 게임셧다운제, 금산분리, 택배 증차규제 등이다.

이 같은 기업의 규제완화 요구를 모두 적절하다고 보긴 어렵다. 다른 나라에 없는 규제여도 한국의 특수성을 감안해야 한다. 예컨대 수도권 규제의 경우 다른 나라에 없는 제도지만 우리나라 수도권 과밀이 심각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수도권의 환경오염 경감과 국토 균형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규제일 수 있다.

사라져야 하는 규제는 취지를 이해할 수 없는 '기형적 규제'다. 택배차 증차 규제가 그렇다. 택배업계 관계자는 “택배차량 과공급으로 인한 택배업 종사자의 과잉경쟁을 막겠다는 발상은 현 시점에서 이해하기 어렵다”며 “화물연대와 정치권, 관료들의 결탁으로 유지되는 규제”라고 주장했다.
 
최근 전기택배차 도입과 맞물려 이 규제가 완화되려는 움직임이 나온다. 주목할 대목은 이 움직임이 노동권 사각지대에 있던 택배업계 종사자들의 권익을 보장하는 방안과 함께 진행됐다는 점이다. ‘무조건적인 규제완화’가 아니라 기형적 규제가 나타난 원인을 살피고 이를 총체적으로 해결할 방법을 찾아내면 풀어낼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준다.

또한 규제개혁이 시급한 분야는 융·복합산업과 신산업 분야다. 융합 신기술 제품은 말 그대로 다른 카테고리의 신기술들이 융합돼 만들어진다. 따라서 융합 신기술 제품은 기존의 품목분류 체계로는 올바르게 파악되지 않는 것이 많다.

하루가 멀다하고 새로운 기술이 나오는 만큼 하나하나의 규제내용을 바꿔 쓰는 것은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규제를 먼저 만드는 것보다 신산업 분야를 풀어놓고 전개 과정에서 필요한 부분만 조정하는 방안이 해법이 될 수 있다. 최근 문재인정부가 말하는 네거티브 규제 정책이 이에 해당한다.

유환익 한국경제연구원 정책본부장은 “‘선허용 후규제’나 ‘네거티브 규제’ 등 규제 방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며 “기술혁신을 어디까지 인정하고 얼마나 수용할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조기에 도출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24호(2018년 1월24~30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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