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쪽방촌의 겨울, 그 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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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신동 쪽방촌 골목. /사진=김창성 기자
화려한 도시의 일상에 가려진 또 다른 세계
사계절 더위·추위·눈·비 견디며 힘겨운 생활


서울은 인구 1000만명의 화려하고 거대한 도시다. 도시 곳곳은 첨단으로 차장됐고 시민들은 매일 바쁘게 달린다. 하지만 화려한 서울 도심 한복판에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곳이 남아있다. 매일 바쁘게 돌아가는 서울과 달리 한 박자 느린 일상을 보내는 이들은 ‘쪽방촌’에 산다. 여유가 있어서 그런 게 아니다. 바쁘게 살 만큼 넉넉지 않은 형편 때문이다. 구석으로 쫓겨난 것도 아니고 골목 모퉁이만 돌면 서울의 화려함과 마주하지만 이들의 삶은 외딴섬과 같다. 유난히 추운 한파가 몰아친 올 겨울은 유독 더 그렇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살리면서 새로움을 더하겠다는 문재인정부의 도시재생뉴딜사업이 쪽방촌의 겨울을 녹일 수 있을까. 


보물 1호인 흥인지문이 있는 동대문역 인근은 항상 사람들로 붐빈다. 근처에 쇼핑센터와 재래시장이 몰려 있고 호텔,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를 비롯해 가상체험(VR) 게임장과 각종 먹거리 등이 한데 어우러진 이곳은 내국인뿐만 아니라 외국인 관광객까지 더해 발 디딜 틈 없다.

◆창신동- 몇 발자국 뒤의 어둑한 골목

어딜 가나 사람들로 북적일 것 같은 이곳에도 한적한 곳이 있다. 대로변에서 불과 40여m 떨어진 곳에 있는 창신동 쪽방촌 골목이다.

최근 찾은 이곳은 대낮이었지만 입구부터 스산했다. 쪽방촌 입구에 사람들이 모여 담배를 폈다. 동네 주민으로 보이는 사람도, 거리를 지나던 사람도, 너도나도 모여들어 마치 이곳이 흡연구역이라고 무언의 약속이라도 한 듯 담배를 폈다.

연기를 뚫고 골목으로 조금 들어서자 금세 여러 갈래의 또 다른 작은 골목이 보였다. 어둑한 골목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게 허름한 벽에 밝은 색깔로 덧입힌 캐릭터 벽화도 그려져 있어 동네 분위기를 바꾸고자 했던 주민들의 노력이 엿보였다.

골목 구성은 단촐 했다. 다닥다닥 붙은 수많은 쪽방과 구멍가게 하나, 여인숙 서너 개 뿐이었다. 지붕은 깨진 기와장과 천막으로 뒤엉켰고 현관문은 고개를 푹 숙이고 몸을 옆으로 돌려야 겨우 들어갈 수 있을 만큼 낮고 좁았다. 골목 한편의 어느 집은 붕괴 위험이 있어 경찰의 접근 금지띠가 사방으로 둘러져 있었다.

동네 주민 A씨는 “이 동네는 젊은 사람들은 없고 대부분 나이 드신 분이나 외국인 노동자 등이 거주 한다”며 “여기 살고 싶어서 사는 분은 없다. 그냥 힘들어도 버티면서 산다”고 말했다.

동자동 쪽방촌 건물과 바로 뒤에 들어선 고급 주상복합아파트. /사진=김창성 기자

◆동자동- 고급 주상복합아파트와 공존하는 쪽방

“왜 자꾸 여기 찾아오고 그래요. 뭐 볼게 있다고.”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골목에서 만난 한 할머니에게 들은 말이다. 목소리엔 짜증이 가득 섞였지만 힘이 없었다. 폐지를 모아 생계를 유지한다는 그는 눈발이 날리던 이날도 가파른 언덕을 오르며 폐지를 줍고 있었다.

괜한 질문으로 실례를 범한 것 같은 죄송한 마음과 꽤 모은 폐지가 무거워 보여 좀 들어 드리겠다고 했더니 내 일이라며 한사코 거절했다. 그리고 말 없이 본인 일만 열중했다.

할머니가 사는 동자동 일대도 서울의 대표적인 쪽방촌 밀집 지역이다. 서울역 앞이라 창신동과 마찬가지로 유동인구가 많고 근처에는 여러 기업이 입주한 고층 빌딩도 즐비하다. 쪽방촌 바로 앞에는 이곳을 집어 삼킬 듯이 높은 고급 주상복합아파트가 3개동이나 들어섰다. 추위에 사람들의 발길이 끊겼지만 지난해 문을 연 서울로7017 역시 도보로 10분이면 닿는다.

동자동 쪽방촌도 창신동과 마찬가지로 고개만 돌리면 사람들로 붐비는 곳에 자리했지만 골목 안 모습은 바깥 세상의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다. 가파른 언덕 사이로 오래된 다세대주택이 몰려 있고 문이 거의 떨어져 나간 공용화장실이 골목길과 정면으로 마주한 곳도 있다. 그야말로 너무 열악했다.

근처 공인중개업소를 찾아 시세를 물어보자 대뜸 젊은이가 왜 거기 살려하느냐, 좋은 오피스텔 알아봐 주겠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다고 답하자 보증금 없이 월 15만~25만원 사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두 눈으로 확인한 동자동 쪽방촌 환경에 비하면 월 15만~25만원도 너무 비싸 보였다.

영등포 쪽방촌 골목. /사진=김창성 기자

◆영등포- 화재에 무방비 나무로 덧댄 집

영등포 쪽방촌도 앞선 두 곳과 마찬가지로 번화가 인근에 있다. 롯데백화점 영등포점에서 도보로 불과 3분여 거리고 허름한 쪽방촌 골목에 서면 유동인구로 북적이는 타임스퀘어가 선명하게 보인다. 또 옆으로는 1호선 전철이 시끄럽게 지나고 위로는 차량 통행이 잦은 영등포고가차도가 있다.

앞선 두 곳이 도심 번화가에 자리한 데다 실제 거주민들이 오가는 곳이라면 영등포 쪽방촌은 주변에 노숙자도 공존하는 곳이다. 영등포역 앞과 큰 길 인도 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노숙자들은 쪽방촌 주변에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방 마다 문이 자물쇠로 굳게 잠겨 있어 적막감이 감돌았지만 주변은 여기저기 아무렇게나 앉아 있는 노숙자 천국이다. 앞선 두 곳과 다른 부분이 있다면 비교적 통일된 색깔로 쪽방촌 골목이 정돈돼 있다는 점이다.

쪽방촌 주변을 몇 바퀴 돌다 어렵게 만난 거주민 한명에게 그곳 생활과 동네 분위기가 어떤지 물었다.

“추우면 추운 대로, 더우면 더운 대로, 눈·비오면 눈·비 오는 대로 사계절 내내 살기 힘들죠.”

뻔한 대답이었지만 실제 거주자 입에서 나온 말이라 그런지 열악한 환경을 잘 대변해 주는 듯 했다. 이어진 말 역시 열악한 거주 환경을 충분히 설명 하고도 남았다.

“집이 전부 나무랑 천막 쪼가리로 덧 댄 거라 냄새나 소리에 취약해요. 여름에 쓰레기, 담배 냄새가 진동하고 옆집이나 골목에서 하는 말도 다 들려요. 집이 불에 타기 쉬운 재질로만 돼 있어서 당연히 화재 위험에도 그대로 노출됐죠. 곳곳에 소화기가 있지만 불나면 우리가 손 쓸 틈도 없이 삽시간에 번져요.”

말로만 듣던 쪽방촌 환경을 실제로 보니 생각보다 심각했다. 시도 때도 없이 치솟는 아파트값에 서민들의 내 집 마련 환경도 열악하지만 화려한 서울에 가려진 쪽방촌 환경에는 비할 바 못돼 보였다.

정부가 5년 간 50조원을 투입해 역점 사업으로 추진하겠다는 도시재생뉴딜사업이 과연 쪽방촌의 열악한 환경도 바꿀 수 있을지 궁금하다. 
 

김창성 solrali@mt.co.kr

머니S에서 건설·부동산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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