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행복한 직장] ⑤은퇴 ‘못’ 하는 밥벌이 노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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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시대 현대인은 ‘이상적인 직장’을 꿈꾼다. 단순히 일만 하는 곳(Office)이 아니라 오랜 시간 안정적으로 일할 삶의 터전(Work Place)을 찾는다. 최근에는 극심한 취업난으로 젊은 세대의 사회진출이 어려워지면서 ‘복지제도’가 이상적인 직장의 조건으로 떠올랐다. 정년보장은 물론 일과 가정의 양립(워라밸)도 요구된다. 삭막한 사내 분위기와 조직문화는 직장인의 기피대상이다. 가족처럼 친근하게 대화할 수 있는 동료와 일하고 자신의 잠재력을 일깨워주는 조직문화를 선호한다. <머니S>는 취업시즌을 맞아 취업포털 ‘사람인’과 ‘이상적인 직장’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직장인, 공무원, 구직자, 대학생 등 성인 1196명이 온라인 설문에 참여해 이상적인 직장의 모습을 제시했다. 아울러 세대별로 현대인이 처한 상황을 짚어보고 직장생활에서 만족감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다.<편집자주>

# 과거 자신이 다니던 회사에서 임원까지 올랐던 벤 휘테커(70). 은퇴 후 집에서 시간을 보내지만 점차 사회에서 자신이 필요없어진다는 느낌을 받는다.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65세 이상 노인 일자리 인턴 프로그램에 지원한 벤은 한 인터넷 의류업체에 인턴으로 입사한다. 그는 이 업체의 창업자인 ‘커리어 우먼’ 줄스 오스틴을 보좌하는 업무를 배정받지만 줄스는 벤에 회의적이기만 하다. 그러나 벤은 연륜과 각종 노하우로 나이 어린 회사 동료들에게 연애 상담, 클래식 스타일 코디 등도 해주며 인기를 얻게 되고 줄스도 벤에게 점차 마음을 연다.

2015년 개봉한 영화 <인턴>의 줄거리다. 임원 출신의 주인공이 갓 창업한 회사의 인턴으로 들어간 후 회사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담았다. 이 영화가 인기를 끈 건 노후에도 행복하게 일할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머니S>가 최근 ‘사람인’을 통해 직장인 119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5060세대는 은퇴 후 안정적인 삶을 위해 노력해야 할 점으로 ‘원만한 대인 관계’(50대 23.7%, 60대 이상 36.4%)를 꼽았다. 20대(10.3%) 및 30대(6.7%)는 물론 40대(9.9%)에 비해 눈에 띄게 높은 수준이다. 이는 연령이 높을수록 영화 <인턴>에서처럼 함께 일하고 싶은 동료를 바라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우리나라 노인들이 마주한 현실은 이와 거리가 멀다. 빈곤을 탈출하기 위해 비정규직과 단순노무직을 전전해야만 한다. 과거 ‘실버칼라’ 출신도 안심할 수 없는 현실이다.

지난달 7일 열린 '2017년 노인 일자리 및 사회활동지원사업 통합모집'에서 어르신이 일자리 정보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뉴스1 황기선 기자

◆밥벌이 노인, 대다수는 ‘비정규직’

은퇴 후 구직을 희망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이 지난해 초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10명 중 2명(82.0%)이 노후에 근로를 희망했다. 2009년(65.6%)에 비해 높은 수준이다.

그러나 일하는 목적은 영화 <인턴>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사회 참여를 통해 자존감을 높이려는 영화 주인공과 달리 우리나라의 경우 ‘밥벌이’ 때문에 일자리를 찾는다.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절반(50.8%)이 ‘경제적 수단’ 때문에 노후 근로를 희망했다. 사회참여는 17.2%였으며 건강 유지(8.3%), 관계 형성(7.2%) 등의 이유는 10%에도 못미쳤다.

경제적 이유로 노후 근로를 희망하는 건 ‘소득절벽’의 영향을 덜 받기 위해서다. 국내 경제활동인구의 평균 퇴직 연령은 49.1세에 불과해 연금수급 연령 때까지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여기에 연금소득조차 낮은 실정이다. 연금소득으로 노후 생활이 가능한 주요 선진국과는 달리 우리나라 연금의 소득대체율은 23.98%에 불과하다. 개인적으로 노후를 대비해야 하지만 통계청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자 가운데 53.1%가 노후 준비를 하지 못했고 이 중 절반(56.3%)은 ‘준비할 능력이 없다’고 답했다.


이 같은 현실은 65세 이상 노인의 상대적 빈곤율에도 고스란히 반영된다. 우리나라의 이 비율은 지난해 기준 42.7%로 OECD 회원국 평균(10.6%)의 4배 이상이다. 또 OECD 국가 중 이 비율이 40% 이상인 국가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결국 우리나라 노인들은 소득절벽과 상대적 빈곤감을 타개하기 위해 일터로 나선다.

문제는 노인 일자리의 질이다. 밥벌이를 위해 다시 사회를 전전하지만 노인 일자리의 대다수는 비정규직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6년 전체 비정규직 노동자 가운데 60세 이상 노동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22.8%(146만8000명)다. 어떤 이유로 일을 찾든 고용형태가 불안정하고 임금수준도 낮은 노인들은 상대적 빈곤감에 시달리는 악순환의 고리에서 빠져나오기가 힘들다. 한번 빠진 노인 빈곤은 장기화될 수밖에 없다. 임숙진 노사발전재단 일자리총괄팀 책임 컨설턴트는 “고령층이 일자리를 구해도 1년 이상 일할 수 있는 곳이 드문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실버칼라도 은퇴 후엔 ‘단순노무직’

사실 기업으로선 노인을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게 국내 경제환경상 부담이다. 청년실업률이 사상 최대치를 경신하는 상황에서 임금피크제를 실시하는 등 청년일자리 창출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가운데 노인 일자리 창출은 후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영화 <인턴>에서처럼 비정규직이더라도 노후에 일을 하며 관계를 형성하고 자존감을 높이는 게 노인들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우리나라 노인이 생계유지형으로 찾는 일은 단순노무직인 경우가 많다. 현대경제연구원이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를 토대로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청장년층 가운데 단순노무종사자 비중은 10.0%에 불과하지만 베이비부머는 그 비중이 25.3%, 고령층의 경우 60.6%에 달한다. 반면 각 세대별 사무종사자 비중은 청장년층 24.9%, 베이비부머 12.8%, 고령층 4.1%다. 전문직은 청장년층 25.8%, 베이비부머 12.2%, 고령층 4.7%다.


‘실버칼라’ 노동자 출신 노인이라고 안심할 수 없다. 2016년 기준 고령층인 실버칼라 10명 중 8명은 10년 전인 2006년 사무종사자(13.4%)와 전문직 종사자(45.5%), 관리자(20.1%) 등의 직종에서 일했다. 하지만 10년 후인 2016년에는 사무종사자 12.2%, 전문직 종사자 31.8%, 관리자 12.0%로 감소했다. 반면 2006년 11.2%에 불과했던 단순노무직 종사자 비중은 2016년 28.5%로 2배 이상 증가했다. 과거 실버칼라로 일했더라도 노인이 된 후 그 직을 유지할 가능성이 적고 단순노무직으로 직종을 변경할 가능성은 높은 셈이다.

고승연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관리자나 전문가로 일했던 고령층 실버칼라는 은퇴 후 단순노무종사자로 일자리가 전환되는 경향을 보인다”며 “특히 연령 증가에 따라 실버칼라 직종의 비중은 감소 추세가 뚜렷한 반면 단순종사자 비중은 2배 이상 증가한다. 실버칼라 출신이더라도 연령이 높아질수록 단순노무종사자로 대체되는 상황이 많다”고 분석했다.

◆마을기업 조성 첫걸음… 민간 역할도 필수

이 같은 현실에서 각 지자체는 최근 단순노동 일자리가 아닌 다양한 분야의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아동에게 전통놀이를 가르치게 하거나 문화재 해설을 맡기는 식이다. 정부는 노인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신중년 인생 3모작’ 대책을 내놨다. 50세 전후로 퇴직하는 중년층엔 재취업 일자리를 마련하고 은퇴준비를 돕는 2모작 계획을, 은퇴 후 구직을 희망하는 노년층을 위해 재취업 일자리와 사회공헌 일자리를 늘리는 3모작 계획이 담겼다.

특히 민간 기업의 취업이나 창업이 어려운 저소득 노인을 위해 공익형 일자리를 늘리고 수당도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우리나라 공익 일자리는 30만7000개지만 참여수당은 월 22만원에 불과한데 이 수당을 2020년까지 최대 40만원으로 올린다는 계획이다.

노인이 밀집한 농·어촌에선 정부와 주민이 합심해 관광상품을 개발,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려는 노력도 엿보인다. 전북 임실치즈마을이 대표적이다. 농민들은 관광객을 대상으로 치즈낙농·목장체험 등을 벌이고 정부는 이 지역을 정보화마을 조성사업지로 선정, 초고속 인터넷 이용환경을 조성해 정보콘텐츠를 구축했다.

노사발전재단의 임숙진 컨설턴트는 “일본의 경우 노인 일자리 창출을 위해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지역의 간이 기차역마다 장터를 운영하고 정부는 IT기술을 구축해 지역을 관광화하는 식”이라며 “지역경제가 발달하면 마을기업이 늘어나고 노인 일자리가 창출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일본의 노인 일자리는 식품과 관광업종에 많은 편인데 노인 일자리 문제는 물론 ‘지방소멸’의 문제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대책”이라며 “우리나라는 이런 마을기업이 아직 드물지만 점차 늘어나는 추세”라고 말했다.

이처럼 정부와 지자체가 노인 일자리 창출을 위해 노력 중이지만 민간 기업의 노력 없이는 노인 일자리 문제 해결이 근본적으로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본은 2006년부터 고연령자고용확보 조치를 의무화해 안정적인 고용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65세까지 안정된 고용을 보장한다는 내용이다. 이 조치 이후 2006년 52.6%에 불과했던 60~64세 고용률이 2015년 62.2%로 상승했다. 이른 퇴직으로 인한 소득절벽을 막을 수 있고 노인이 돼서도 단순히 생계형이 아닌 취미·사회 공헌 등을 위해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도모하는 것이다.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실장은 “정년제도의 개선 등 국내 고령화 단계에 적합한 고용 관련 제도의 전반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며 “기업도 고령자 고용 유지가 경쟁력 강화로 이어지도록 경영 전반에 걸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고령자 고용 증대가 청년층 고용 축소를 유발하지 않도록 정부가 보완책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설합본호(제526호·제52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서대웅 mdw1009@mt.co.kr

<머니S> 금융팀 서대웅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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