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흑역사 끊을까] ③'권력의 꼭두각시' 20년 잔혹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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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은행의 구조조정 기능이 흔들린다. 산은이 주채권은행으로 추진하는 구조조정이 번번이 무산되면서 우리경제에 끼치는 부작용도 커지고 있다. 지난 20년간 부실기업 구조조정을 책임진 산은의 역할에 물음표가 붙는다. <머니S>가 산은이 주도한 기업 구조조정의 과거와 현재를 되짚어보고 앞으로의 과제를 모색했다.<편집자주>

1997년 11월21일 밤 10시20분. 임창렬 경제부총리가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에 자금 지원을 요청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경제주권’을 IMF에 맡긴다는 의미로 그야말로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금융 지원의 대가는 혹독했다. IMF는 한국에 경제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며 가혹한 구조조정을 요구했다. 결국 정부는 제 손으로 가지치기를 해야 했다. 한보를 시작으로 삼미, 청구, 해태, 한라, 진로 등 굵직굵직한 대기업이 도미노처럼 쓰러졌다. 그 여파로 수많은 근로자가 길거리에 나앉았다. 1990년대 말 한국은 그렇게 외환위기의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정부는 ‘대기업의 몰락’을 방치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정부의 의도대로 움직여줄 칼잡이가 필요했다. 그 칼자루를 산업은행이 쥐었다. 산은이 기업 구조조정 업무를 일선에서 총괄하게 된 배경이다.

그로부터 20여년, 산은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채권단이라는 이름으로 매년 막대한 공적자금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수년간 지속해온 대우건설, 대우조선해양, 금호타이어 등의 매각 타이밍을 번번이 놓치면서 비판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지난해 9월 취임한 이동걸 산은 행장은 환골탈태하는 모습을 보여주겠다며 팔을 걷어붙였다. 이후 산은 기업구조조정 부문 조직이 흔들리는 분위기다. 

전국금속노동조합이 지난달 24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구조조정저지 노동악법철폐, 노조할 권리, 산별교섭 제도화 촉구 집회를 열었다. /사진=뉴시스 최동준 기자


◆정부 손짓에 움직여온 산은의 칼날


산업은행의 20년 기업 구조조정 역사는 ‘흑역사’의 반복이었다. 산은 수장의 평균 재임기간은 1년6개월. 3년 임기를 제대로 마친 인물이 단 한명도 없었다.

DJ정부 시절 대우그룹 해체의 중심에는 강봉균 재경부 장관, 이기호 청와대 경제수석 등 주요 관료들을 비롯해 첫 산은 수장을 맡은 재무부 세제실장 출신 이근영 총재가 있었다. 당시 산은은 대우그룹에 과감한 수술을 단행했다. 마침내 1999년 8월 대우그룹이 워크아웃을 선언하고 해체됐다. 이때부터 산은의 대우 계열사 정리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 작업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대우조선해양은 여전히 조선업 구조조정의 한복판에서 ‘애물단지’ 취급을 받고 있고, 새 주인을 찾는 듯했던 대우건설은 다시 산은 품으로 돌아왔다.

덩치가 워낙 큰 탓에 이들 기업은 산은의 골칫덩이로 전락했다. 이근영 총재에 이어 취임한 재정경제부 차관 출신 엄낙용 총재는 대우자동차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하다 대북송금 의혹에 휘말려 취임 8개월 만에 자진 사퇴했다. 대우차는 1차 매각 실패 후 매수자를 찾지 못해 '돈 먹는 하마'로 전락했고 사겠다는 곳이 없었다. 결국 노사 협상이 결렬, 대우차는 부도 처리됐다.

그나마 LG카드 경영 정상화를 이뤄냈다는 게 산은의 유일한 업적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흑역사는 계속됐다. 특히 이명박정부 들어 산은은 자생적인 흑역사를 쓰기 시작했다. 산은 수장의 직함은 총재에서 행장으로 바뀌었다.

민유성 산은 전 행장이 수장이던 2010년 산은은 금호아시아나그룹 구조조정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채권단과 함께 금호타이어 등에 9조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했다. 강만수 전 행장 시절에는 STX그룹의 유동성 위기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STX조선해양에만 신규자금을 포함 3조원이 넘는 규모의 금융지원을 결정했다.

이는 박근혜정부 들어 논란이 됐다. 박근혜정부는 두 사람에게 산은 구조조정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물었다. 대우조선해양 비리 의혹과 관련 남상태 전 대우조선 사장을 구속하면서 검찰의 칼날이 산은으로 향한 것. 급기야 지난해 10월 강 전 행장은 남 전 사장의 비리를 눈감아준 대가로 거액의 투자를 종용한 혐의로 기소돼 징역 7년을 구형받았다.

박근혜정부의 산은도 비슷한 행보를 보였다. 2013년 구조조정 첨병으로 발탁돼 부실기업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겠다던 홍기택 전 산은 회장 역시 수장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채 책임회피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부총재 보은 인사 등 각종 논란에 휩싸였다.

홍 회장 후임으로 신한금융투자 부회장 출신 이동걸 회장이 산은 수장 자리를 넘겨받았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한진해운이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물류대란이 일어났고 지난해 금호타이어 매각이 불발되며 SK그룹과 중국 타이어업체 더블스타간 신경전만 계속 되고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산은 수장은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새로운 낙하산 인사로 교체됐다. 이 때문에 산은은 번번이 구조조정 타이밍을 놓쳤다. 다시 말해 지난 정부 모두가 산은 구조조정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새 정부 들어 지난해 9월 금호타이어 경영 정상화와 대우건설·KDB생명 등 자회사 매각 등 숙원 과제는 동명이인인 이동걸 회장(동국대 초빙교수 출신)에게 넘어갔다. 하지만 지금도 마찬가지다.

최근에는 호반건설이 대우건설 인수 포기를 선언하면서 대우건설은 주인 찾을 기회를 또다시 놓쳤다. 헐값매각 논란에 이어 이제는 '호반마저 인수를 포기한 회사'라는 오명을 쓰게 됐다. 

◆해마다 반복되는 ‘공공기관 인질극’

산업은행 등을 대상으로 한 공공기관 지정 여부 논란도 해마다 반복된다. 올해는 금융감독원, 수출입은행과 함께 공공기관 지정 대상에서 제외돼 한시름 놓았지만 내년에도 안건이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 

익명을 요구한 기재부 관계자는 “올해도 기업 구조조정 업무에 대한 성과가 미흡할 경우 산은을 공공기관으로 지정해 체계를 개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반면 박진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지금까지 (산은 구조조정 작업에) 너무 많은 정부의 개입이 이뤄졌다”며 “산은은 좀 더 냉정한 잣대로 부실기업 정리에 집중하고 산업적 측면에서 회생 또는 청산을 결정해야 하며 정부는 이로 인한 실업 등 사회적 문제에 대응하는 게 제 역할”이라고 꼬집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28호(2018년 2월21~27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박효선 rahs1351@mt.co.kr

안녕하세요. 증권팀 박효선입니다. 많은 격려와 질책의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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