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자본의 덫] ②잡을 수밖에 없는 ‘독배의 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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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 시절 부도위기에 내몰린 한국 기업에 심폐소생을 했던 외국자본이 우리 경제의 숨통을 죄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면세를 비롯한 각종 특혜로 호황을 누리다 슬그머니 발을 빼거나 사업철수를 볼모로 우리 국민의 혈세인 공적자금 투입을 요구하는 등 ‘슈퍼 갑’의 민낯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는 것. 그간 외국자본이 시세차익만 챙긴 뒤 한국을 떠나거나 알짜 기술만 빼돌린 채 공장을 폐쇄해 대규모 실직사태를 유발하고 지역경제를 해치는 등의 문제는 지속적으로 반복됐다. <편집자주>

금호타이어 노동조합(금속노조 금호타이어지회)이 지난 2일 KDB산업은행 등 채권단의 중국 더블스타 자본유치 방안 발표에 강력히 반발했다. 이날 산업은행은 더블스타로부터 6463억원의 투자를 유치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노조는 법정관리를 감수하더라도 해외매각만큼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버틴다.

무엇이 노조를 이토록 불안하게 만들었을까. 업계에선 금호타이어 노조의 이 같은 반응이 금속노조가 겪은 쌍용자동차 사태의 트라우마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최근 한국지엠의 대주주인 제너럴모터스(GM)의 행보도 노조의 불안감을 키웠다. IB업계 관계자는 “최근 각국 보호주의의 폐단과 맞물려 기업 내부에서도 해외매각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점차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금속노조 금호타이어지회 노동자들이 자구안 철폐 구조조정 반대 결의대회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박진희 기자

◆ 왜 해외 초국적기업에 매각하나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우리정부는 IMF(국제통화기금)의 요구에 따라 ‘외국자본 유치’에 나섰다. 구제금융 사태로 부실기업으로 전락한 기업을 살릴 별다른 방안이 없었기 때문이다. 기업의 연쇄 파산으로 인한 대규모 실업과 경기침체를 막을 방안이 사실상 외국자본 유치뿐이었던 것이다.

해외 매각이 단순히 대안의 부재 때문에 이뤄지는 것만은 아니다. 글로벌 기업의 유치는 국가 전체의 경제력 향상과 직결된다. 특히 개발도상국의 경우 더욱 그렇다. 초국적기업의 투자가 이뤄지면 기술이전이 동반되고 이는 해당 국가의 다른 기업 기술발전으로 이어진다.

양질의 일자리 창출도 외국자본 유치의 긍정적인 측면이다. 양질의 일자리가 많아지면 GDP(국내총생산)와 GNI(국민총소득)가 상승하며 국가경제 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초국적기업과 개발도상국간의 윈-윈이 이뤄지는 셈이다.

모디 인도 총리가 세계 각국을 돌며 ‘Make in india’를 주창하는 이유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1978년 대외개방에 나선 이후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기 시작했다. ‘현지합작 투자’ 방식을 통하긴 했지만 가장 적극적으로 해외자본을 유치했고 이는 빠른 경제성장의 원동력으로 평가받는다.

◆ 득보다 실이 큰 이유

그런데 이 같은 윈-윈 논리는 개발도상국과 초국적기업의 관계에서만 성립된다. 선진국 반열에 오른 국가에서 해외기업은 고임금의 일자리를 보장하지 못하며 ‘기술 낙수효과’를 일으키기도 어렵다.

현재 산업경쟁력이 선진국 수준으로 접어든 우리나라의 상황에서 득보다 실이 많을 수 있다는 것. 더욱이 기술 후진기업이 자본을 앞세운 인수합병(M&A)을 통해 접근한다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기술과 자본 모두가 유출될 공산이 크다.

상하이차의 쌍용차 인수 사례가 대표적이다. 상하이차는 2004년 경영위기를 맞은 쌍용차 지분 48.9%를 5900억원에 인수하며 대주주가 됐다. 그러나 상하이차가 인수 4년여 만에 법정관리 신청을 통해 사실상 경영에서 손을 떼고 철수하기로 결정하면서 쌍용차는 뿌리째 흔들렸다.

이로 인해 수많은 실직자가 발생했고 우리 경제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상하이차는 4년간 국내시장에 단 한푼도 투자하지 않았고 핵심기술만 모두 빼갔다. 인수합병 먹튀의 대표적인 사례로 불리는 이유다.

쌍용차 사태 이후 우리나라엔 중국자본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최근에는 GM이 군산공장 폐쇄조치를 내리자 국내 기업의 해외매각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이가 많아졌다. 금호타이어 노조도 ‘중국자본’ 혹은 ‘부실 해외자본’ 매각에 반대하던 기존 입장에서 GM사태 이후 해외매각에 원천 반대하는 입장으로 선회했다. 해외매각이 기술유출뿐만 아니라 더 많은 위험요소를 안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금호타이어 노조 관계자는 “한국지엠 사태를 보며 해외기업에 매각되면 장기적으로 봤을 때 언제든 고용이 담보잡힐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실제로 제기되는 문제의 양상은 다양하다. 고배당과 현지법인에 불리한 매각가 책정 등 기업경영과는 관계없이 본사만 배불리는 구조를 만들 거라는 우려가 크다. 일각에선 연구개발(R&D)센터를 유치하는 것이 먹튀를 막을 해법이라고 말하지만 GM의 상황을 보면 그렇지도 않다. GM은 한국지엠에 글로벌 기술연구소를 설립했지만 2011년 10월 이후 모든 특허를 한국지엠이 아닌 GM 본사의 이름으로 출원했다.

대우건설 본사. /사진=뉴시스 고승민 기자

◆ 해법 막막한 부실기업들

가장 큰 문제는 주인을 잃고 부실의 늪에 빠진 기업의 구조조정이다. 해외매각 외에는 별다른 대안을 찾을 수 없어서다. 경영 정상화가 시급한 금호타이어와 대우건설, 대우조선해양, STX 등을 안고 있는 정부 역시 해외매각을 막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건실한 국내기업이 제값을 주고 인수하는 게 무난하지만 원매자가 나타나지 않는 것이 문제다. 대우건설은 호반건설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지만 무산됐다. 호반건설은 대우건설의 지난해 4분기 실적과 잠재된 리스크 등을 뒤늦게 확인하고 발을 뺐다. IB업계에는 엘리언홀딩스와 중국건축공정총공사 등이 헐값 인수를 노리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금호타이어의 경우 인수의사를 내비친 SK그룹이 채권단에 감자와 출자전환 등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채권단은 “현실성 있는 제안은 없었다”고 일축했다. 결국 금호타이어 채권단은 중국 더블스타와의 투자협상으로 가닥을 잡고 외자유치에 나섰다.

IB업계 관계자는 “채권단이나 국책은행 입장에선 채권 회수를 포기하지 않는 한 부실기업을 마냥 끌어안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며 “적절한 국내 인수자가 나타나지 않는 상황에서 해외매각 유혹을 뿌리치긴 어렵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30호(2018년 3월7~13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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