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자본의 덫] ①"호갱민국, 잘 빼먹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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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 시절 부도위기에 내몰린 한국 기업에 심폐소생을 했던 외국자본이 우리 경제의 숨통을 죄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면세를 비롯한 각종 특혜로 호황을 누리다 슬그머니 발을 빼거나 사업철수를 볼모로 우리 국민의 혈세인 공적자금 투입을 요구하는 등 ‘슈퍼 갑’의 민낯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는 것. 그간 외국자본이 시세차익만 챙긴 뒤 한국을 떠나거나 알짜 기술만 빼돌린 채 공장을 폐쇄해 대규모 실직사태를 유발하고 지역경제를 해치는 등의 문제는 지속적으로 반복됐다.<편집자주>


한국지엠이 군산공장 폐쇄를 결정하면서 외국자본의 ‘먹튀’ 논란이 또다시 도마에 올랐다. ‘먹튀’란 말 그대로 ‘먹고 튀는 것’의 줄임말. 외국자본이 한국 기업에 대한 투자를 빌미로 우리 정부의 온갖 지원과 혜택을 받아 이득을 챙긴 뒤 돌연 사업을 정리하거나 시세차익을 남겨 투자액을 회수하는 행위를 지칭한다. 1997년 외환위기로 수많은 한국기업들이 부도 위기에 내몰린 상황에서 외국자본 유치는 자금을 수혈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자 대안이었으나 먹튀 사례가 잇따르면서 대책 마련이 절실한 상황이다.


/사진=뉴시스 DB

◆GM으로 돌아본 ‘먹튀’의 역사

최근 한국지엠의 대주주인 제너럴모터스(GM)는 군산공장 폐쇄 결정 후폭풍을 수습하기 위해 정부, 한국지엠 노조 등과 대화에 나섰다. 본사가 직접 회생을 위해 적극 노력하는 자세를 보여 먹튀 의혹을 불식시키겠다는 의도에서다. 하지만 논란은 여전히 거세다. 해외시장에서 GM의 먹튀 전례가 한두 건이 아니기 때문.

GM은 호주 정부로부터 2001년부터 12년간 1조7000억원의 지원을 받고도 2013년 공장을 철수했다. 유럽 자회사 오펠과 공장 6곳은 회생 기미가 안 보이자 지난해 매각했고 스웨덴에선 2009년 3000억원대의 지원금이 끊기자 공장을 팔고 철수한 바 있다.

외국자본이 한국에서 ‘먹튀’를 했던 사례는 많다. 대표적인 예는 ‘론스타 사태’다. 론스타는 외환위기 직후인 2000년대 초반 국내에 진출해 극동건설, 스타리스, 외환은행 등을 인수한 뒤 되파는 방식으로 거액의 차익을 올렸다.

특히 2003년부터 2005년에 걸쳐 외환은행 지분 51%를 2조1548억원에 인수해 2012년 하나금융지주에 3조9156억원을 받고 매각, 배당금 등을 포함해 총 4조6600억원의 차익을 남겼다. 정부는 과세를 통해 론스타가 거둔 차익을 일부 회수하려 했으나 소송에서 론스타 측이 승리하면서 수포로 돌아갔다.

중국 상하이차도 2005년 쌍용자동차를 인수해 2009년 법정관리를 신청하고 철수할 때까지 매년 3000억원씩 4년간 총 1조2000억원을 연구개발(R&D) 등에 지원하기로 한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오히려 쌍용차의 핵심 연구원과 기술을 중국 본사로 빼돌렸다.


/사진=뉴시스 DB

국내 LCD업체인 하이디스테크놀로지는 두번이나 외국자본에 기술만 뺏기고 버림받는 수모를 당했다. 2003년 중국 BOE에 매각된 하이디스는 자사의 특허 기술인 광시야각기술(FFS)을 공유했으나 2006년 법정관리를 거쳐 2008년 대만 이잉크로 매각됐다.

문제는 이잉크 역시 하이디스의 운영·유지보다는 특허기술 장사에만 관심이 있었다는 점이다. 이잉크는 하이디스가 기술특허로 2014년 800억원이 넘는 흑자를 내는 등 기술 로열티로만 수백억원을 벌 수 있게 되자 특허 장사만 하기로 결정하고 공장 폐쇄와 대규모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이 과정에서 노조위원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참사가 발생했다. 이후 해고자들은 3년이 넘는 복직투쟁을 이어오다 최근 복직을 포기하고 사측이 그동안 받지 못한 임금과 보상금을 지급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법원의 조정안을 수락했다.


배리 앵글 GM 총괄 부사장 겸 해외사업부문 사장이 지난달 국회를 방문해 한국GM 대책 TF 위원장 등 의원들과 면담을 진행했다. /사진=뉴시스 DB

◆경영권까지 위협하는 외국자본

국내 기업의 취약한 지배구조를 파고들어 경영권을 차지하려던 외국자본도 있다. SK그룹은 2003년 외국계 자산운용사인 소버린이 14.99%의 지분을 확보한 뒤 최태원 회장의 퇴진을 비롯한 경영권 개입을 시도해 한바탕 전쟁을 치렀다.

당시 SK는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지분율 규정에 따라 의결권이 3%로 제한되면서 1조원을 투입한 뒤에야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SK의 주가는 급등했고 소버린은 9000억원이 넘는 차익을 챙겨 2005년 한국을 떠났다.

KT&G도 영국계 펀드인 TCI와 미국의 큰 손인 칼 아이칸 등 외국계 주주와 경영권 분쟁을 겪었다. TCI는 2004년 KT&G가 자사주를 모두 소각하지 않으면 유럽계 투자자와 연합해 경영진을 교체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당시 주가를 올려 단기차익을 노린 작전이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는데 TCI는 실제로 대부분의 주식을 팔고 차익을 실현했다. 2006년에는 칼 아이칸이 KT&G 지분 6.59%를 확보하면서 경영권 개입을 시도했다. 이후 10개월간의 경영권 분쟁을 겪은 끝에 칼 아이칸은 44% 수익률에 배당금과 평가차익까지 합쳐 1500억원의 차익을 내고 사라졌다.

현대그룹 역시 2대 주주인 다국적 승강기 기업 쉰들러로부터 유상증자 방해를 비롯한 경영권 위협을 수차례 받았다. 쉰들러는 2004년 현대 측이 현대엘리베이터를 통해 현대상선의 파생금융상품 계약을 체결해 7000억원대의 손해를 입혔다며 현정은 회장 등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2006년 8월 1심 판결은 현대그룹이 승리했으나 현재 2심이 진행 중이다. 업계에서는 해당 소송이 현대엘리베이터의 승강기사업을 가져가기 위한 쉰들러의 압박으로 해석한다.

삼성도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에서 미국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와 분쟁을 겪었다. 당시 엘리엇 측은 우호지분을 포함한 삼성물산 지분 11.78%를 앞세워 합병을 반대했다. 결국 그해 7월17일 주총에서 표대결을 펼친 끝에 삼성물산의 승리로 일단락됐다.

외국자본의 경영권 개입은 정당한 주주의 권리로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지금까지의 사례를 보면 분쟁과정에서 급등한 주가로 차익을 챙긴 뒤 내빼는 패턴이 대부분이었기 때문.

더욱이 외국자본의 국내 유입이 매년 늘어남에 따라 아직 분쟁이 발생하지 않은 다른 기업들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외국인의 한국 상장주식 보유금액은 635조9300억원으로 전년 481조5660억보다 154조원 이상 급증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30호(2018년 3월7~13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이한듬 mumford@mt.co.kr

머니S 산업팀 기자입니다. 많은 제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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