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자본의 덫] ③GM, '17만 고용 볼모'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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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 시절 부도위기에 내몰린 한국 기업에 심폐소생을 했던 외국자본이 우리 경제의 숨통을 죄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면세를 비롯한 각종 특혜로 호황을 누리다 슬그머니 발을 빼거나 사업철수를 볼모로 우리 국민의 혈세인 공적자금 투입을 요구하는 등 ‘슈퍼 갑’의 민낯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는 것. 그간 외국자본이 시세차익만 챙긴 뒤 한국을 떠나거나 알짜 기술만 빼돌린 채 공장을 폐쇄해 대규모 실직사태를 유발하고 지역경제를 해치는 등의 문제는 지속적으로 반복됐다.<편집자주>

제너럴모터스(GM)의 군산공장 폐쇄 결정으로 발발한 한국지엠 사태는 어떻게 풀릴까. 숱한 해외자본의 ‘먹튀’를 겪은 우리 정부는 GM의 요구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정부는 ‘원칙적 대응’이란 전제를 깔고 최대한 신중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지만 불안감을 지울 수 없는 상황이다.

◆예측된 철수설… 못 막은 정부

업계에선 GM의 철수 시도가 뻔히 예상됐지만 정부가 그동안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많다. 철수설이 언급되기 시작한 건 GM이 2009년 금융위기로 파산위기에 몰리면서다. 구원투수로 투입된 댄 에커슨 CEO는 취임 직후 부실자산 정리·청산으로 재무구조를 개선해 나갔다. 파산보호신청과 함께 미국 주식시장에서 퇴출됐던 GM은 빠른 구조조정 덕에 2010년 재상장에 성공했다.

애커슨 CEO가 퇴임하고 메리 바라 현 CEO가 취임한 뒤부터는 본격적인 해외사업장 정리가 시작됐다. 미국 본사의 구조조정을 마친 뒤 해외사업에 칼을 대기 시작한 것. GM의 사업장 중 안전한 것은 거대시장을 안고 있는 미국과 중국뿐이라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우리 정부가 적어도 이때부터라도 철수에 대비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한국지엠 부평공장. /사진=뉴스1 DB

메리 바라 CEO는 세전 영업이익(EBITDA) 10% 기준을 세우고 실적이 이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철수를 검토했다. 검토과정에서 현지 정부와 협상을 진행하고 지원이 없다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손을 털었다. 그의 취임 이후 GM은 호주·러시아·태국·인도네시아·유럽 등지에서 철수했다.

호주에 엘리자베스공장을 두고 홀덴 브랜드로 아스트라(크루즈) 등을 생산·판매하던 GM은 호주 정부로부터 2001년부터 보조금 15억7000만달러를 받았지만 2013년 결국 공장 폐쇄를 결정했다. 당시 호주가 정권교체와 함께 보조금 지원을 중단한 직후다.

인도 역시 마찬가지다. GM은 내수시장용 차를 생산하는 할롤공장이 위치했던 구자라트 주정부에 2016년 추가 지원을 요청했다가 거절당하자 공장 폐쇄와 내수시장 철수를 결정했다. 이 결정을 할 당시 카허카젬 한국지엠 사장이 인도법인 총괄사장직을 맡고 있었다. 

한국지엠은 이제 얼마 남지 않은 GM의 해외법인이다. 한국지엠 문제를 놓고 우월한 협상력을 확보하기 위해 GM은 철저히 계획된 시기에 딜을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6월 지방선거와 한미 FTA 재협상 등 정치권에 민감한 이슈가 겹친 시기다.

정부는 신중하게 대응하는 모양새다. 일단은 실사를 통해 이전가격 문제 등 그간의 경영의혹에 대해 속속들이 들여다본 후 지원여부를 결정한다는 원칙을 내걸었다.

이전가격은 글로벌 기업이 해외에 있는 자회사와 부품이나 완제품을 거래하는 가격을 말한다. 한국지엠은 핵심 부품을 본사로부터 비싸게 들여와 완성차나 반조립차를 만들어 계열사에 원가 수준에 납품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덕분에 본사는 사상 최대이익을 거뒀지만 한국지엠은 수조원대 적자가 누적돼 자본잠식 상태에 빠졌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따라서 정부가 실사를 넘어 세무조사, 회계감리 등을 동원할 가능성도 높다. 지난달 27일 국회 정무위원회 업무보고에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한국지엠의 이전가격 문제에 대해 세무조사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고 밝혔다. 공정위는 지난해 말 국세청에 구두로 이전가격 조사에 대한 협조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흥식 금융감독원장도 “회계감리가 필요할 경우 금융위원회에 요청해 바로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밑 빠진 독 물 붓기’ 되지 않으려면

정부지원 여부가 어떻게 결론나건 한국지엠이 지속가능한 기업으로 남기는 어려워 보인다. GM의 해외사업 철수 기조가 자동차업계의 변화상과도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의 완성차제조업체였던 GM은 현재 자율주행차와 친환경차, 카셰어링 등 미래산업에 모든 역량을 쏟고 있다. 사업모델 자체를 바꾸면서 몸집을 줄일 수밖에 없다. 한국지엠에 대한 딜은 사업모델 변화과정에서 최대의 이익을 얻기 위한 포석으로 보인다. GM은 내연기관 기반 완성차를 줄일 것이고 한국지엠은 지속적으로 철수 논란에 휩싸일 수밖에 없는 구조다.

결국 앞으로 진행될 협상에서 GM을 묶어둘 수 있는 장치를 전제로 자금지원이 이뤄지지 않으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정부가 지난해 10월 만료된 2대 주주 산은의 ‘비토권’을 다시 찾아오고 연구개발(R&D) 자산을 한국지엠에 묶어둘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문이 나오는 이유다. 또 GM의 신규자금 투자로 자본금을 늘리도록 유도하는 방안도 병행해야 한다.

이마저도 충분조건은 아니다. 앞서 2010년 산은은 GM과 비용분담협정을 개정하며 항구적 무상기술이용권을 보장받았다고 밝힌 바 있지만 8년이 지난 시점에서 그 어떤 효력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지엠 철수 영향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산업구조를 재편하지 못하면 GM의 횡포는 이어질 수밖에 없다. GM이 현재 한국지엠을 통해 볼모로 잡고 있는 것은 1만6000명의 직접고용뿐만 아니라 15만명에 달하는 협력업체 일자리다. 한국지엠에 목을 매는 협력사들이 자생할 수 있는 길을 찾지 않는 한 협상에서 GM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전속거래 관행으로 부품과 소재산업이 발전하지 못해 빚어진 문제”라며 “이 같은 산업구조를 탈피하기 위해 부품업체간 네트워크형 협력체제를 구축하고 연구개발 예산 투입, 관련 법·제도 개선 등에 지원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30호(2018년 3월7~3월13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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