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저물가] ②지표와 체감의 괴리, 해법은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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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가 치솟는다. 통계청이 내놓은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대인데 장바구니 물가는 고공행진이다. 정부는 경기가 살아나도 낮은 물가를 문제로 지목한다.물가는 임금· 실업률과 반대로 움직인다는 이른바 '필립스 곡선' 현상이다. <머니S>는 물가지표와 반대로 가는 체감물가의 현주소를 살펴보고 저물가 문제의 해결책을 알아봤다.<편집자주>
/사진=뉴시스

# 직장인 최민형씨(36)는 점심시간에 동료들과 설렁탕집에 갔다. 차림표를 봤더니 보통설렁탕은 1만원, 특설렁탕은 1만2000원으로 올라 적잖이 당황했다. 남자 넷이 설렁탕 4그릇에 만두 한접시를 시켜 먹고 최씨는 5만원 지폐를 꺼내야 했다.

외식물가가 줄줄이 오른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1월 전체 외식물가는 1년 새 2.8% 올랐다. 23개월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편의점 김밥과 도시락, 햄버거, 순댓국, 김밥, 짜장면처럼 대중적인 음식도 오름세다. 일부 음식점에선 김밥 한줄이 4000원, 짜장면과 짬뽕 8000원, 통닭은 2만원에 판다. 따뜻한 봄이 찾아왔지만 물가한파는 여전히 거세다.

반면 소비자물가상승률은 전년 동기대비 1.0%로 내리막이다. 지표상으론 ‘저물가’인데 체감물가는 고공행진하고 있어 괴리를 축소하는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괴리 큰 통계물가와 체감물가

통계상 물가지표가 체감물가보다 낮은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1월 생산자물가지수는 103.50으로 전월보다 0.4% 상승했다. 지난해 9월(0.7%) 이후 가장 큰 상승폭이다. 생산자물가는 국내 생산자가 시장에 공급하는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 변동을 나타내는 지표다. 통상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에 반영된다.

통계청은 이런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 460개 품목중에서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판단할 때 매기는 가중치 때문이다.

1월 기준 밀폐용기는 전년 대비 가격이 48.2%나 올랐지만 가중치는 0.7에 불과하다. 생강과 고춧가루, 오징어는 가격이 각각 46.7%, 43.4%, 43.3% 상승했음에도 올 가중치는 각각 0.2, 1.5, 1.0이다. 가격이 40% 넘게 올라도 물가지수에 미치는 영향은 적은 셈이다.

반면 전·월세, 휴대전화 요금은 밀폐용기보다 가중치가 훨씬 높아 물가에 큰 영향을 끼친다. 같은 기간 0.07% 하락한 월세의 가중치는 43.6, 0.7% 하락한 휴대전화료의 가중치는 38.3이다. 가격 변동이 없는 전기료는 가중치가 18.9에 달한다. 이처럼 품목별 가중치가 다르다 보니 통계청의 지표가 체감물가를 못 쫒아가는 실정이다.

통계청 측은 “농산물과 석유류를 제외한 근원물가지수, 식료품 및 에너지를 제외한 물가지수 등 여러 보조지표를 반영해 체감물가와 괴리를 좁히려고 노력한다”며 “소비자물가지수의 품목과 가중치도 개편주기를 5년에서 2~3년으로 바꿔 체감물가를 반영하려는 추세”라고 말했다.

심리적 요인도 체감물가와 실질물가 사이의 차이를 벌린다. 소비자물가는 가격 상승과 하락을 동일하게 반영하지만 체감물가는 가격이 올라간 것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만약 양파값이 10% 오르고 고추값이 10% 내리면 소비자는 올라간 양파값에 반응하기 쉽다.

개인에 따라 물건을 구입하는 빈도도 체감물가에 영향을 준다. 소비자물가는 구입빈도를 감안하지 않지만 체감물가는 자주 구입하는 품목의 가격 변동에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채소값이 많이 올라도 평소 채소를 먹지 않는 사람은 체감물가가 크게 올랐다고 인식하지 않는다. 최근 신선식품값이 크게 올라 가정주부의 체감물가가 올라간 것도 이 때문이다.

이밖에 물가 대비 소득이 낮은 점도 물가지표와 체감물가의 괴리를 일으킨 이유로 꼽힌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은 “경기침체 속에 소득 증가율이 낮아져 상대적으로 물가가 조금만 오르면 살림살이가 팍팍하다고 느낀다”며 “소득이 늘어나지 않는 이상 물가는 항상 오른다는 생각이 들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은행이 27일 열린 2월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연 1.50%로 동결했다./사진=뉴스1

◆물가상승 복병, 한은 금리동결 속사정

체감물가와 큰 괴리가 있지만 우리나라 물가가 낮은 게 사실일까. 전문가들은 이상한 저물가 현상이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세계적으로 퍼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저물가 딜레마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일이 아니다. 경기회복기 지지부진한 물가상승률은 글로벌 중앙은행의 골칫거리다.

글로벌 은행들은 금융위기 이후 시장에 돈을 풀면서 가계와 기업의 수요를 자극했지만 수요 증가의 결과인 물가상승에 실패했다. 지난해 말 재닛 옐런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은 경기회복에 대한 자신감으로 기준금리를 인상했지만 여전히 물가는 지지부진하다.

한국은행 역시 지난 6년5개월 동안 저금리로 완화적 통화정책을 펼쳤지만 저물가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한은이 저물가에 대응하기 위해 풀었던 돈을 조일 만큼 경기 회복세가 탄탄한지 판단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주요국 중앙은행들은 기준금리를 결정할 때 ‘물가안정목표제’를 채택한다. 한국은행도 1998년 도입했다. 이는 중앙은행이 중장기적으로 달성해야 할 물가 목표치를 미리 제시하고 이에 맞춰 금리정책을 운영하는 방식이다. 물가가 목표치에 미달하면 더 완화적인 정책을, 넘어서면 더 긴축적인 정책을 펴는 게 기본이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지난달 27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1.50%로 동결했다. 그는 2014년 4월 취임해 금리를 다섯차례나 내렸고 2016년 6월에는 우리나라 통화정책 역사상 가장 낮은 수치인 1.25%로 기준금리를 인하했다.

7명의 금통위원도 저물가를 잡기 위한 금리정책에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금통위원들은 “물가가 목표치를 하회하는 게 통화정책 정상화에 큰 걸림돌은 아니다”라는 “통화정책 결정에 있어 최우선은 물가 흐름”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한은이 물가 지표로 삼는 근원물가(농산물 및 석유류 제외지수)는 지난 1월 전년대비 1.1% 오르는 데 그쳤다. 외환위기 여파로 우리경제가 홍역을 치렀던 1999년 12월(0.5%) 이후 18년 여만의 최저치다.

한은 관계자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전년대비)은 1%로 한은의 물가목표(2%)에 못 미친다”며 “국내 경제가 회복되면 기준금리를 올려도 시장금리 상승에 따른 부작용을 상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상한 저물가, 고령화사회 문제 찾아야

전문가들은 저물가 미스터리 해법을 고령화사회에서 찾으라고 조언한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일본과 미국 등 글로벌경제가 고령화사회에 진입해 노동생산성이 떨어지고 있다. 경제가 성장하는 만큼 임금이 오르지 않으니 소비가 부진하고 따라서 물가도 오르지 않는 것이다.

지난해 기준 일본과 미국의 실질임금 상승률은 각각 1%, 1.2%에 불과했다.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2% 이상을 기록했으나 실제 손에 쥐어지는 임금은 적다.

그 이면에는 고령화가 자리한다. 노인의 노동력이 늘어도 대다수가 저임금으로 일해서다. 미국의 노동생산성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2000년부터 2007년까지 농업 부분을 제외한 미국의 노동생산성은 매년 평균 2.6%씩 증가했으나 2008년 이후부터는 평균 1.2%로 내려갔다.

우리나라도 고령 근로자가 늘면서 노동생산성이 줄고 있다. 고용주들이 정규직보다 임금 수준이 낮은 임시직 고용을 선호해 물가를 올릴 만한 임금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최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사업체 노동력 조사 결과에 따르면 5인 이상 사업체 근로자의 실질임금(물가 상승률을 반영한 임금)은 지난해 1인당 월평균 341만8000원으로 전년(339만2000원)보다 0.8%(2만6000원) 상승에 그쳤다.

지난해 상승률은 최근 6년 가운데 가장 낮은 것이다. 실질임금 상승률은 2012년 3.1% 증가세로 돌아선 뒤 2016년까지 매년 1% 이상을 기록했다.

아울러 중앙은행이 주도한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의 효율성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경제성장과 임금, 물가의 연계성이 떨어지면서 정부의 소비진작 효과, 재정지출 확대 효과 등 실효성이 약화되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한국은행의 통화정책이 만성적 수요 부족을 해결할 것이란 고정관념을 깨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최근 국제결제은행(BIS)은 세계화와 기술 진보가 고령화사회의 노동생산성을 억눌러 물가상승률을 제약할 것으로 내다봤다. 결국 중앙은행이 장기간 목표치를 밑도는 물가상승률을 감안해 금리인상 가능성을 열어두고 통화정책을 펼쳐야 한다는 얘기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최저임금에 의한 물가 압력은 통화정책에 따른 결과로 볼 수 없다"며 "실물경기가 뚜렷하게 회복되는데도 저물가가 지속돼 통화당국이 실물경기와 물가 중 선택을 강요받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 물가를 핑계로 금리인상을 지연시키면 금융안정성과 거시경제에 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30호(2018년 3월7~13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이남의 namy85@mt.co.kr

안녕하세요. 머니S 금융팀 이남의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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