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칼럼] 부자만 배 불리는 분양가 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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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미지투데이

#. 남편이 벌어오는 돈으로 살아가던 A씨는 아파트 분양에 청약해 운 좋게 당첨됐다. 아파트 청약 당첨으로 거액을 벌게 된 A씨는 본격적으로 부동산 투기에 나선다. 

요즘 인기 지역 아파트 청약에 당첨된 사람의 이야기 같지만 이는 38년 전 만들어진 영화 <복부인>의 이야기다. 한혜숙·박원숙·김애경 등이 복부인으로 출연했으며 임권택 감독 영화 중 유일하게 사회 문제를 비판한 작품으로 꼽힌다. 아파트 당첨으로 큰 돈을 벌 수 있는 것은 근래 나타난 현상이 아님을 알 수 있다. 

70년대에 아파트 개발 붐이 일면서 생겨났던 현상이 반세기가 흐른 지금까지 나타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아파트 3채를 보유한 여성은 4만632명으로 남성 3만1155명보다 많다. 4채 이상 소유자도 여성(2만5400명)이 남성(1만8145명)보다 훨씬 많아서 부동산 투자의 성공 경험을 가진 '복부인'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에는 정부의 규제로 분양가가 인근 아파트 시세보다 낮게 책정되면서 투자자뿐만 아니라 실수요자들도 청약에 나서고 있다. 당첨만 되면 새 아파트에 들어가 살 수 있고 시세 차익까지 크게 생겨난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8·2 대책 이후 청약 광풍 

지난해 부동산시장을 안정화시키기 위해 발표한 8·2 대책 후 9월에 서울 강남권에서 처음으로 분양한 ‘신반포센트럴자이’는 평균 168대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일부 평형에서는 510대1에 달하는 청약 광풍이 나타났다. 

기관 추천, 다자녀 등을 대상으로 하는 특별공급도 전 주택형이 마감되는 기록을 최초로 세웠다. 전용면적 84㎡ 분양가 15억5660만원을 인근 기존 아파트 ‘신반포 자이’ 84㎡의 실거래시세 18억4653만원과 비교하면 단순 시세 차익만 3억원 이상 가능했다. 

비슷한 시점에 강남 개포시영아파트를 재건축해 공급하는 '래미안 강남포레스트'도 1순위 청약에서 평균 41대 1의 높은 경쟁률을 기록했으며 59㎡A형은 234대 1까지 치솟았다. 이 역시 재건축아파트라서 청약 인파가 몰린 것이 아니라 시세 대비 분양가가 낮게 책정됐기 때문에 몰린 것이다.

비강남권에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해 11월 서울 영등포구 신길9구역을 재개발해 현대건설이 공급한 ‘힐스테이트 클래시안’의 분양가는 전용 59㎡이 5억4830만~5억8010만원, 전용 84㎡는 6억8880만~7억2990만원이었다. 

그런데 영등포구 신길7구역을 재개발해 2015년 12월에 삼성물산이 공급했던 ‘신길 래미안에스티움’의 전용 59㎡ 입주권은 6억8500만~7억1700만원, 전용 84㎡는 7억7800만~8억3000만원에 거래됐다. 인근 아파트 단지 시세를 따라간다고 가정하면 ‘힐스테이트 클래시안’에 청약해 당첨되는 순간 1억원 정도 차익이 발생한다. 총 7개 주택형이 모두 1순위 당해 지역에서 마감됐으며 총 538가구(특별공급 제외) 모집에 6503명이 몰려 평균 12.1대 1의 청약경쟁률을 나타냈다. 전용면적 49㎡은 145.5대 1의 최고 경쟁률을 기록했다. 

뉴타운사업장인 거여마천뉴타운에서 거여2-2구역을 재개발해 들어서는 단지인 'e편한세상 송파 파크센트럴’는 지난해 12월에 분양할 때 평균 15.29대 1의 경쟁률을 나타내면서 전 주택형 1순위 마감을 했다. 분양가는 전용 59㎡ 5억800만~6억3000만원, 84㎡ 7억5000만~8억300만원, 113㎡ 9억2000만~9억9000만원이었다. 

반면 인근에서 지은 지 10년 된 '래미안 파크팰리스' 84㎡가 9월에 8억9600만원(11층), 114㎡가 11억(11층)에 거래됐다. 애초 거여2-2 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에서는 주변 아파트 시세를 참고로 3.3㎡당 2750만~2850만원으로 분양가를 고수하다가 각종 규제와 시장 상황 등을 감안해 주변 시세 이하인 2380만원으로 낮췄다. 그 결과 청약자는 ‘e편한세상 송파 파크센트럴’에 당첨되는 순간 1억원 가량의 차익을 얻게 됐다.

◆반복되는 로또 청약 

겨울 지나고 날씨 풀리는 봄이 오자 아파트 분양시장도 기지개를 켠다. 3월에 전국적으로 분양하는 가구수가 2000년 이후 월별 최대 물량인 7만5000여 세대에 달한다. 특히 수도권에 전체의 65%인 4만9000천여 가구가 공급된다. 분양가가 시세보다 싸게 책정되는 곳에서는 로또 청약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개포주공8단지 재건축아파트인 '디에이치 자이 개포'는 2000세대 가까이 청약이 이뤄지지만 분양받길 원하는 사람은 훨씬 더 많다. 지하철 3호선과 분당선을 함께 이용할 수 있는 더블 역세권 입지, 수월한 고속도로 진입, 국내 최고 수준의 삼성서울병원, 인접 지역의 대형 쇼핑시설을 비롯한 생활 인프라, 우수한 초중고 학군 및 학원가,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양재천과 대모산의 자연 환경 등 모든 주거 여건이 우수하다. 

게다가 분양가 상한제로 인해 전용 84㎡을 14억원대로 분양받으면 인근 ‘래미안블래스티지’ 전용 84㎡ 분양권의 거래가격 18억~19억원과 비교할 때 4억원 정도 차익까지 기대된다. 

서울과 마찬가지로 투기지역으로 지정된 세종시에서도 신규 아파트의 분양 경쟁률이 높게 나타나는데 이 역시 분양가가 시세보다 낮기 때문이다. 지난해 1월~10월 세종시 아파트 분양권 거래 5126건을 국토교통부에서 전수 조사한 결과 분양가 대비 프리미엄이 평균 7842만원에 달했다. 

지난 12월에 분양한 ‘세종 한신더휴 리저브’는 분양가 상한제로 전용 84㎡ 분양가가 3억5000만~4억원선에 책정됐다. 인근 단지 시세는 5억~5억5000만원이라서 당첨되면 최대 1억5000만원 수익이 기대되는 로또가 됐다.

◆주변 집값 쫓아가는 매매가

한국감정원 자료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값은 최근 3년 동안 평균 15.34% 오른 반면 민간아파트 분양가는 9.4% 올라 시세와 분양가 차이가 평균 6% 포인트까지 벌어졌다. 강남권처럼 아파트 수요층이 탄탄한 지역은 시세와 분양가의 상승 폭 차이가 2배 가량으로 더 크게 벌어졌다.

기존 아파트 시세가 내리면 분양가가 내려가지만 분양가를 인위적으로 내려서 기존 아파트 시세가 내려가지 않는다. 인과 관계를 잘못 파악하면 오판할 수 있다. 많은 국가에서 주택값이 급등했지만 한국에서 분양가를 규제하는 것처럼 가격을 직접 규제하는 경우는 드물다.

분양가 규제의 취지는 아파트시장 안정 및 서민주거 안정을 위한 것이다. 어떤 일이든 취지가 좋다고 결과가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분양가를 규제하더라도 입주 이후 매매가는 주변 집값을 쫓아가서 궁극적인 효과는 미약해진다. 

애초 분양가가 주변 아파트보다 저렴했더라도 향후에도 매매가가 저렴한 아파트는 찾아볼 수 없다. 분양가를 규제해도 시장에서 거래되는 가격은 규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나중에 지어진 새 아파트일수록 품질이나 주거 여건이 더 좋기 때문에 기존 아파트보다 더 비싸게 거래될 수 밖에 없다. 시세가 전체적으로 내려갈 때만 함께 영향을 받는다. 

◆인위적인 규제, 시장원리 위배


로또는 매입비용이 적지만 아파트에는 큰 돈을 넣어야한다. 대출 규제까지 강화돼 현금이 많은 사람만 청약에 참가할 수 있어 현금 부자만 더욱 부자로 만든다. 당첨되면 수억원을 벌 수 있다는 것을 누구나 알더라도 10억원 가까운 현금은 중산층도 마련하기 힘들다. 

한 건설사에서 설문조사한 결과 현금 10억원 이상을 쥐고 강남권에서 새 집을 사고 싶어 하는 대기 수요는 5만명에 달했다. 투기가 아닌 근로 소득으로 수억원 연봉을 받거나 사업체 운영으로 큰돈을 벌어 자산가가 된 사람들 중에 보유세, 양도세 등 부동산 관련 세금이 많으면 굳이 집을 사지 않고 고급 아파트에서 전세로 사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다 확실하게 시세 차익이 발생할 때만 나선다. 

즉, 자연스러운 시장 원리를 위배해 인위적으로 더 싸게 공급하면 주거 수단인 아파트 청약이 로또를 사는 것처럼 된다는 사실을 숙고할 필요가 있다. 서민의 주거 안정을 위해 저렴한 가격으로 공공 임대주택 공급을 꾸준히 확대해가는 것만이 답은 아니다. 부자들 리그를 통제하기 위한 정책은 오히려 부작용을 야기한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31호(2018년 3월14~20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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