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 어디로] ③흑역사 키우는 '깜깜이 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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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이 천정부지다. 서민은 꿈도 못 꿀 가격까지 치솟았지만 빚을 내서라도 내 집을 마련하겠다는 실수요자의 일념에 분양마다 완판 행진이 이어진다. 여기저기서 볼멘소리가 나왔지만 비싼 집값이 끄떡없자 정부는 재건축 안전진단 강화라는 칼을 빼들었다. 이미 상당수 강남 재건축단지는 안전진단을 끝내 규제를 비껴가서다. 반면 재건축 추진에 속도를 내던 서울 양천구 목동, 강동구 일대 등에서는 재산권 침해라며 법적 대응까지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과연 시장은 어느 방향으로 흘러갈까. <편집자주>


“앞으로 10년은 더 걸릴 거야.”
“거기 조합장은 문제 없어?”
“조합 설립됐다며? 돈 많이 벌겠네. 축하해!”

재건축을 둘러싸고 자연스레 튀어나오는 말이다. 신기하리 만큼 많은 이가 비슷한 얘기를 하는데 대체로 ‘돈’과 관련된 내용에 부정적인 뉘앙스가 깔린다. 그동안 주택 재건축은 조합장의 비리, 조합원의 이기주의로 얼룩진 ‘흑역사’로 기억됐기 때문이 아닐까.

사람 사는 집이 투기수단으로 변질된 점도 부정적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배경이다. 로또에 당첨된 것에 비유하며 투기를 종용하는 분위기가 문제를 키운 것. 이는 주택 재건축을 직접 경험해본 이가 많지 않은 데다 그동안 성공적인 사례만 집중 조명됐기 때문이다.

재건축 과정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수많은 이의 재산이 걸린 문제여서 매번 모두가 한목소리를 내는 건 불가능하다. 예전부터 해당 주택에 살다가 사업이 추진되는 경우와 재개발 시세차익을 노린 투자 목적으로 중도 매입한 경우 등 조합원 간 온도차도 생긴다.

게다가 정부는 재건축으로 발생할 수익에 세금을 부과하는 등 광풍을 잠재우려 한다. 결국 재건축 이후의 기대수익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과정을 거쳐야 얻을 수 있다. 

◆막강한 권력의 조합장 ‘양날의 검’

가장 일반적인 재건축 방식은 주민들이 조합을 설립해 사업을 진행하는 것이다. 조합은 일정수 이상의 주민 동의와 관련서류 등 요건이 갖춰졌을 때 설립인가 절차를 밟을 수 있고 정부가 사업계획을 승인하면 그때부터 본격적인 재건축 과정이 시작된다. 조합은 조합원과 이들을 대표하는 조합장, 조합을 관리·감독하는 이사진으로 구성되는 게 일반적이다.

재건축 조합의 대표인 ‘조합장’은 가장 큰 역할을 맡는다. 조합을 대표해 많은 결정을 내려야 하는 만큼 여러 단계별 평가부터 이주·철거·시공·입주 등 사업추진 전반에 강력한 권한을 행사한다. 이 과정에서 각종 업체의 로비가 이어지며 달콤한 유혹을 이기지 못한 이들의 일탈이 재건축사업의 파행을 부르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지난해 8월 억대 뇌물을 챙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가락시영아파트 재건축 조합장의 사례를 들 수 있다. 가락시영아파트 재건축단지는 사업비만 3조원에 육박한다.

가락시영아파트 재건축 조합장은 2003년 조합설립 이후 각종 비리의혹에 휩싸였고 결국 업체선정 청탁 사례금 1억1600만원을 받은 혐의로 수갑을 찼다.

‘사업을 성공시켜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무리한 사업을 추진하면서 조합원과의 마찰을 빚는 경우도 있다. 서울 영등포의 한 재건축 조합은 10년째 사업추진이 답보상태다. 주민들의 지나친 간섭이 이어지자 조합장이 자리를 떠났고 그 뒤부터 지지부진한 상태다.

조합 구성원간 갈등이 비극을 낳기도 한다. 지난해 말에는 부천의 한 아파트 재건축 조합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1년간 조합장으로 재직했지만 사업에 진전이 없다는 이유로 조합 총회에서 해임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뉴시스 임태훈 기자

지난해 초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서울 강남권 8개 재건축 조합 점검결과도 충격이다. 점검결과 부적정 사례가 무려 124건이나 적발됐다. 분야별로는 예산회계 57건, 용역계약 29건, 조합행정 29건, 정보공개 9건 순이었다. 특히 일부 조합은 조합원에게 부담이 되는 계약을 맺을 때 미리 총회 의결을 받아야 함에도 절차를 생략했다. 또 일부는 내부 감사보고서 등 중요서류의 정보공개도 하지 않았다. 이럴 경우 징역 또는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조합원들이 문제가 있는 조합장을 교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조합원이 조합장의 잘못을 파헤쳐서 설명해야 하는 등 절차가 번거롭고 변호사 선임 등 직접 부담할 비용도 적지 않다. 게다가 조합장 해임총회를 열려면 전체 조합원의 10% 이상에게 서면 동의서를 받아야 하며 새 조합장을 뽑는 총회는 20% 이상 동의가 필요하다. 게다가 뚜렷한 대안이 없을 경우 전 세대주의 명운이 걸린 사업이 지연될 우려가 크다.

◆전문성 부족이 문제 키워

재건축 관련업계에서는 조합장을 비롯한 관계자들의 비리가 끊이지 않는 이유로 ‘전문성 부족’을 꼽는다. 특히 조합장은 재건축과 관련된 다양한 분야의 전문성을 꿰고 있어야 해당 분야 업체와 업무조율이 쉽지만 보통은 조합원 중 연장자가 맡는 경우가 허다하다. 결국 재건축업무를 대행하는 지정업체의 조언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고 만약 중간에 브로커가 개입하면 로비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는 사례가 발생한다.

정보공개가 활성화된 최근에는 과거와 같은 ‘깜깜이’ 결정이 어렵다. 이에 따라 각종 비리가 더 쉽게 드러난다. 대표적으로 서울시는 재건축 조합의 모든 정보를 ‘클린업시스템’에서 온라인으로 관리한다. 조합원이라면 해당 홈페이지에서 세무회계자료는 물론 총회 때 속기록 등 조합과 관련한 모든 정보를 내려 받을 수 있다.

정보를 제때 공개하지 않거나 조합원이 요청한 자료를 제대로 제공하지 못해 논란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8·2대책 이후 조합을 구성한 서울 문래동 남성아파트도 그 중 하나다.

빠른 재건축 추진 속도로 눈길을 끌었지만 서두르는 과정에서 누락된 자료가 오해를 부른 것. 조합원들이 조합장 측에 조합 관련 상세정보를 공개할 것을 요청했고 이를 약속한 기간 내 처리하지 못하면서 임시 비상대책위원회가 소집됐다. 결국 조합장 측이 주민설명회를 열어 그간의 오해를 해소하려 했지만 모든 자료가 클린업시스템에 업로드되지 않은 상태여서 설득이 쉽지 않았다.

이처럼 재건축사업의 환경이 달라지면서 '젊은 조합장'을 모시려는 움직임도 있다. 오로지 조합업무에만 전념하도록 그에 상응하는 넉넉한 보수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는다.

재건축 정비업계에서는 “새로 추진하는 재건축사업은 투명한 정보공개가 성공의 지름길”이라고 입을 모은다. 재건축사업 특성상 비용을 나중에 정산해야 하는 만큼 신뢰를 주지 못하면 사업을 이어갈 수 없다는 얘기다.

정비업체 관계자는 “일부 조합장의 비리 외에 입김 센 조합원들도 사업을 더디게 만드는 요인”이라며 “타협 대신 문제제기만 일삼고 조합원을 선동하는 행위를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32호(2018년 3월21~27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박찬규 star@mt.co.kr

산업2팀 박찬규 기자입니다. 자동차와 항공, 해운, 조선, 물류, 철강 등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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