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광장] 바둑판 위의 '미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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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진행된 바둑판의 돌들은 서로 어울려 멋진 패턴을 만든다. 흑백뿐이겠는가. 여러 크기, 여러 모양, 온갖 색깔 예쁜 돌들이, 때론 갈등하고, 때론 어울려, 전체를 아름답게 채워가는 멋진 모습을 떠올려 보자. 모두가 함께 엮어내는 우리 삶의 문양이 이렇지 않을까.

바둑이나 오목이나, 바둑판 위 예쁜 무늬에 참여하려면 모두가 따라야 할 규칙이 있다. 격자 모양에 어긋나지 않게 돌을 놓아야 한다. 이유가 있다. 아무렇게나 돌을 놓으면 다른 돌을 방해해 피해를 주기 때문이다. 물론 아무 데나 놓을 수 있는 게임도 있다. 알까기가 그렇다. 바둑판에서 하지만 바둑이 아니다. 다른 돌을 밖으로 밀쳐내야 이긴다. 공격으로 다른 돌이 깨져도 상관하지 않는다. 폭력적 알까기에서 최종 도달하는 바둑판에 형형색색 조화는 없다. 그 넓은 바둑판에서 다른 색을 모두 몰아내, 유아독존, 같은 색의 돌만 남아야 끝이다.

우리 모두는 세상에 나가 예쁜 삶의 문양을 꿈꾸며 바둑판에 참여한다. 누구나 규칙을 잘 따르는 줄 알고 바둑판에 올랐는데 엉뚱하게 알까기를 하는 돌이 있다. 허락된 격자의 영역을 넘어 자꾸 다른 이를 침범한다. 엄청난 힘으로, 미처 공격을 피하지 못한 돌에 깊은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상처 입은 돌은 혼란스러워 경험 많은 돌에게 물어본다. 이 바둑판은 원래 이렇게 다른 돌에 마구 상처를 줘도 되는 곳이냐고.

얘기에 가슴 아파하던 이웃은 자신의 수많은 숨겨진 상처를 내보이며 눈물을 글썽인다. “원래는 안돼요. 그런데 그런 나쁜 돌이 많아요. 게다가 상처가 보이거나 소문이 나면 다음에는 더 공격해요. 어떨 땐 여럿이. 그러니 상처를 입어도 숨겨야 해요. 바둑판은 변하지 않아요.”

체념한 바둑돌은 스스로를 탓한다. 내 탓이다, 내 탓이다, 피하지 못했으니 내 탓이다. 멀리서 본 바둑판은 평화로워 보인다. 상처 입은 바둑돌이 없어서가 아니다. 그 많은 상처 입은 돌이 하나같이 상처를 모두 숨겼기 때문이다.

어느 날 용기 있는 바둑돌 하나가 스스로를 뒤집어 상처를 내보이며 외쳤다. 왜 바둑판에서 허락되지 않은 알까기를 했냐며 다른 돌 하나를 당당히 가리켰다. 그 목소리에 힘을 얻어 상처 입은 많은 바둑돌이 여기저기서 몸을 뒤채기 시작했다. “나도, 나도!” 하나가 둘이 되고 셋이 돼 이제 여럿이 됐다. 상처를 드러낸 모두는 서로 연결해 바둑판 전체를 가로지른 강으로 흐른다.

대마불사다. 연결의 힘은 바둑판을 바꾼다. 속삭임이 함성이 돼 잊혔던 사실을 깨우친다. 맞아, 규칙을 따라야 해. 바둑판은 알까기가 허락된 곳이 아니야. 알까기 한 돌이 잘못이지 피하지 못한 것은 잘못이 아니야.

규칙을 지키라는 당연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러자 어떤 정신없는 바둑돌은 흰 돌이 있으면 자꾸 알까기를 하게 돼 위험하단다. 심지어 앞으로 바둑 둘 때 검은 돌끼리만 하겠단다. 백날을 해봐라. 바둑이 되나. 알까기 하지 말라는데 엉뚱하게 돌의 색을 탓한다. 바둑판은 알까기 하는 곳이 아니다. 이 말이 그렇게 어려울까.

☞ 본 기사는 <머니S> 제534호(2018년 4월4~10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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