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긱이코노미 시대] ④한국판 '긱워킹' 안착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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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고용주에게 대가를 받고 일하던 전통적인 노동개념이 파괴됐다. 온라인플랫폼에서 여러 고용주를 선택해 단기계약 노동력을 제공하는 ‘긱 이코노미’(Gig Economy)가 빠르게 확산된 것. 정규직 선호현상이 뚜렷한 국내에서 긱 이코노미의 정착은 시기상조라는 시각과 피할 수 없는 시대의 물결이라는 주장이 교차한다. <머니S>가 국내에서 부는 긱 이코노미 열풍을 집중 조명했다. <편집자주>


#프리랜서 디자이너 정모씨(32)는 인터넷 구인 사이트를 통해 A중소기업의 홈페이지 개편작업 의뢰를 받았다. 제작비용은 턱없이 낮았지만 오랜만에 생긴 일에 며칠 밤을 새워 작업을 마쳤다. 그 후에도 수차례 수정작업을 진행했고 계약보다 많은 일을 묵묵히 수행했다. 하지만 고용주는 “기대보다 홈페이지 디자인의 완성도가 떨어진다”며 작업료를 절반만 송금한 뒤 연락을 끊었다.

노동시장에서 프리랜서는 열악한 처우를 받기 일쑤다. 법적 근로자가 아닌 개인사업자로 분류돼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해서다. 프리랜서는 4대 보험 가입과 근로계약서 작성도 하지 않고 퇴직금도 없다. 일은 무한대로 하면서 받는 임금과 대우는 열악한 실정이다.

초단기근로자의 고용형태인 '긱 이코노미'(Gig Economy)가 4차산업 시대에 새로운 일자리로 주목받지만 우리나라에선 소위 잘나가는 프리랜서들의 이야기에 불과하다. 오히려 질 낮은 일자리를 양산하는 등 고용안정성을 해치는 부작용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공유경제가 ‘체념경제’ 안 되려면

긱 이코노미가 화두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에서 수요자와 공급자가 만나 직접 거래하고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이른바 공유경제다. 긱 이코노미는 우리나라 젊은세대의 일자리 개념에 새바람을 일으킨다. 한 직장에서 정규직으로 정년까지 다녀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해체되고 짧게 일하면서 자신만의 노동가치를 구현하는 노동시장이 열렸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새로운 기술이 수많은 직업을 만들어 냈지만 생계유지와 노동가치를 실현하는 단계까지 오르지 못했다. 긱 워커를 지원하는 사회안전망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우리나라 1인 근로자는 일반 직장인과 달리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현행법상 초단시간근로자(임시직)는 1주 동안 일하는 시간이 통상 근로자보다 짧아 ‘기간제 및 시간근로자 법률’(기간제법)을 적용받는다. 이들의 근로시간은 소정(약정)근로시간을 기준으로 한다. 1주 40시간과 1일 8시간 등 법정 근로시간과 상관없이 고용주와 약정한 근로시간을 따라야 한다.

이처럼 고무줄처럼 조정되는 근로시간과 달리 주휴일과 연차유급휴가 등은 최소근로조건에서 제외된다. 또한 퇴직금도 받을 권리가 없다. 즉, 근로자는 계약조건에 따라 일하는 부담은 늘어나는 반면 기본적인 고용보장과 근무환경은 제공받지 못하는 셈이다.

우리나라 1인 사업자가 공유경제로 시작했다가 체념경제로 전락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해외에선 프리랜서를 특별 조례로 보호하며 최소한의 경제활동을 지원한다.

미국 뉴욕시는 프리랜서가 120일 동안 임금 총액 800달러 이상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 고용계약서 작성을 의무화한다. 계약서에는 프리랜서가 제공하는 작업 내용과 이에 대한 급여, 급여 지불 일자를 모두 명시해야 한다. 급여 지불 일자가 명시되지 않은 경우 프리랜서는 작업을 완료한 시점부터 30일 이내에 급여를 요구할 수 있다.

우리나라보다 훨씬 전에 임시직이 활성화된 독일은 2000년 단시간근로자법을 제정해 이른바 '미니잡'(Mini-Job)형태의 근로자 차별을 방지하고 있다. 월 450유로를 벌지 않는 근로자는 사회보험료 납부의무가 면제되며 보수는 정규직원과 같이 일한 만큼 지급하도록 규정했다. 6개월 이상 일한 근로자는 근로시간 단축을 요구할 권리도 인정한다.

김근주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독일의 단시간 근로제도는 경제위기에 대응해 일자리를 유연하게 늘릴 수 있는 대응방법으로 주목받았다”며 “신기술이 사람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상황에서 단기근로자를 포용할 수 있는 정책이 추진돼야 한다”고 말했다.



◆공회전하는 법·제도, 정부가 관리해야

한국판 긱 이코노미의 한계는 새롭게 형성된 공유경제시장을 따라잡지 못하는 정부 정책이 문제로 꼽힌다. 우버는 전세계 632개 도시에서 사용될 정도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스마트폰 버튼 하나만 누르면 공유된 차량의 운전기사가 찾아와 목적지까지 데려다주는 서비스로 하나의 상품을 여럿이 공유하는 공유경제의 대표 모델이다.

세계 각지에선 개인 차량을 우버 드라이버로 등록하고 개인사업자의 수익 수단으로 활용하지만 우리나라에선 우버의 사용이 금지된 상태다. 우버를 둘러싼 논란을 해소할 수 있는 법·제도가 없기 때문이다.

최근 출퇴근하는 사람을 카풀로 연결해주는 카풀앱마저도 택시업계와 첨예한 갈등을 빚고 있다. 택시업계는 “생존권을 위협한다”고 주장하지만 카풀앱을 만드는 스타트업들은 “우리 서비스는 불법이 아니다”고 맞선다.

여기에 정부는 갈피를 못 잡고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지난해 국토교통부와 서울시는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위반으로 카풀앱업체들을 조사했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대통령 직속 4차 산업위원회 역시 택시업계와 카풀 스타트업 간 ‘끝장토론’을 추진하려다 서로의 입장만 확인한 채 공회전을 거듭하고 있다.

4차 산업위는 스타트업들이 쏟아내는 공유경제와 기존 업체들의 이견을 조율해야 하지만 국토부 등 기존 주무부처와의 힘겨루기에 나설지 미지수다. 스타트업계에선 생사를 걸고 씨름해야 하는 사안에 정부가 방관하고 있다고 불만을 터뜨린다.

스타트업 한 관계자는 “긱 이코노미는 수요자와 공급자가 만든 시장으로 정부도 발 빠르게 법·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며 “정부 주도 아래 위법사례가 관리되면 긱 워커가 기존 사업자와 경쟁하며 질 좋은 서비스를 만드는 환경이 구축될 것”이라고 말했다.

◆임시직도 평생직업 고르듯 신중해야

과거부터 일자리는 돈을 창출하는 수단으로 여겼다. 단기계약직으로 일하는 긱 이코노미도 단순한 취미생활이 아닌 삶을 유지하는 필수 수단이 돼야 한다.

전문가들은 새로운 일자리 형태에 눈을 뜬 근로자들이 자아실현과 성취에 몰두하다가 물질적 보상보다 정신적 충족을 더 중시하는 함정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경직된 노동환경에서 벗어나 시간과 장소를 유연하게 결정할 때는 더욱 신중해야 한다. 일반 회사처럼 자신의 출퇴근 시간이나 업무 스케줄 등을 관리해야 안정적인 수익을 확보할 수 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긱 워커는 경험과 재능이 중요한 자산으로 남기 때문에 계획부터 실천까지 철저히 기록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며 “직업은 자아를 실현하는 방법이라는 생각으로 신중히 임해야 한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34호(2018년 4월4~10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이남의 namy85@mt.co.kr

안녕하세요. 머니S 금융팀 이남의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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