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경제 허리 DMZ-르포] “다리 놓이면 얼마나 좋을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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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7 판문점선언'에 이어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한반도에 온기가 감돈다. 남북이 경제협력을 통해 세계로 뻗어나갈 절호의 기회다. 무엇보다 의미가 큰 건 분단의 상흔인 DMZ가 평화의 상징으로 탈바꿈한다는 점이다. 지난 65년간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 희귀 동식물로 생태계가 구성된 만큼 세계적인 관심을 받는다. 관광산업 잠재력도 어마어마하다. <머니S>가 '평화·생태의 보고'로 새롭게 조명받는 DMZ의 가치와 개발방향을 살폈다. <편집자주>


황해도 송화군 풍해면 천북리. 박규성씨(78)의 고향이다. 인천 백령도와 이북방향으로 마주한 장산반도에서 북동쪽으로 10㎞가량 떨어진 곳이다. 박씨는 한국전쟁이 발발한 1950년 송화군에서 가장 가까운 서해 초도로 피신해 남으로 왔다.

“열살 때니까이 뭐, 눈치꼬 나지 고쪽 상황.”

지난 1일 오후 경기 파주시 문산읍 임진리 나루터마을 민통선(민간인통제구역) 앞에서 만난 박씨는 고향 생각이 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열살 때 피신한 박씨에게 고향은 아직도 생생한 곳이다.

“고향 가서 터전이라도 함 보고 죽어야지. 옛날엔 그런 생각도 읎었는데, 어느널 갑자기 그냥 나이 묵은 게 티나더라니까. 여기까지 와서 이런 거 허고 살 생각, 꿈이너 했갔어.”

경기 파주시 나루터마을 민통선 앞에서 만난 박규성씨. /사진=서대웅 기자

박씨는 뱃일을 한다. 임진강이 일터다. 배는 나루터마을 바로 앞 나루에 정박해있다. 예부터 ‘임진나루’라고 불린 곳이다. 민물고기인 누치와 모래무지가 많이 잡힌단다. 조수간만의 차가 심해 ‘물때’를 살펴 배를 탄다. 서해에서 임진강으로 물이 들어오는 시간이 매일 달라 어업에 나설 때 이를 확인해야 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박씨는 임진강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없다. 임진나루를 포함해 임진강 연안선이 민간인통제구역이어서다. 그는 어업활동을 할 때마다 초소 통문을 지키는 군인에게 ‘패스’(민통선 출입증)를 제시해야 한다. 임진나루엔 나룻배 10척이 있다고 한다. 이곳을 드나들 수 있는 민간인이 10명뿐이라는 얘기다.

“임진나루는 예부터 유명헌 데야. 지금은 군부대가 차지허고 있으니까 그렇지, 딴데 같으먼 관광객들허고 말도 못해. 지금은 사람덜 오믄 뭐해, 다 꽉 막혔는데.”

◆DMZ 시작점, 임진강 인근 마을

DMZ(비무장지대). 휴전선(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남으로 2㎞, 북으로 2㎞, 총 4㎞에 이르는 지역이다. 군 충돌을 막기 위한 완충지대 역할을 한다. 남측 2㎞ 구간을 연결하는 선이 남방한계선이며 여기서 다시 남쪽으로 5~20㎞ 떨어진 곳이 민통선이다. 군사시설 등 군 작전의 보안을 위해 민간인 출입을 통제하는 구역이다.

파주시 임진강 주변은 이런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특이한 지리적 위치 때문이다. 서울을 가로질러 흐르는 한강은 남쪽의 김포반도와 북쪽의 관산반도가 마주보는 곳에서 임진강과 만난다. 두 강이 어우러져 ‘교하’ 지역으로 불린다. 한강은 여기서 김포반도와 강화도 북쪽을 따라 서해로 흐르는데 이곳엔 DMZ가 없다. 한강을 사이에 두고 남북이 대치해서다.

서쪽 DMZ의 시작점은 파주시 장단면으로 임진강 북쪽이다. 임진강 남쪽의 만우리에서 북쪽의 정동리 방향으로 군사분계선이 급격히 북쪽으로 꺾이는 지점이다. 북한군의 수중침투를 대비해 우리 땅인 임진강 북쪽연안에도 철책이 있다. 임진강 남측과 북측연안을 따라 2개의 철책으로 남방한계선이 형성된 곳, 우리 군이 지키는 북쪽연안을 북한지역으로 오해하기 쉬운 곳. 바로 임진강이다.

그리고 남방한계선에서 다시 최소 5㎞ 떨어진 곳에 민통선이 형성돼야 하지만 이 지역의 민통선 기준은 임진강이다. 남방한계선에서 5㎞ 이내인 곳이더라도 임진강 남쪽의 철책선까지 민간인이 갈 수 있다는 뜻이다.

박씨를 만난 곳도 임진강 남쪽 연안 바로 앞에서였다. 다만 임진강을 직접 눈으로 볼 순 없었다. 3m가량 높이의 통문이 가로막고 있어서다. 통문엔 이 지역을 관할하는 군부대 사단 마크와 함께 ‘민간인 통제구역’이란 팻말이 붙어 있다.

◆추억 서린 곳, 지금은 ‘딴 세상’

임진강 남쪽연안의 주민들에게 임진강은 과거 추억이 서린 곳이기도 하다. 앞서 이날 오전 파주 탄현면 문지리에서 만난 김진석씨(79)는 3대째 이 지역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다.

“전쟁 나기 전 어르신들이 뱃일 다녀오믄 낙해나루에 깨나리(민물고기류) 받으러 갔다고. (이 마을에서 석해나루까지) 5리(2㎞)가 안되는데 애덜이랑 걸어댕겼어. (임진)강 가로질러 나룻배도 댕겼는데 지금은 끊겼지 뭐.”

낙해나루는 문지리 바로 옆 낙하리 지역의 나루로 현재 통일로 낙하IC 아래에 위치한 곳이라고 김씨는 설명했다. 낙하리 ‘아랫말’(아랫마을)이란 지역이다. 이곳을 찾은 결과 낙하IC교 아래에 자동차 1대가 들어갈 수 있는 작고 짧은 터널이 있었다. 과거 낙해나루로 짐작되는 곳이었지만 터널 밖으로 통문이 있어 더 이상 가지 못했다. 30여분간 주변을 서성였지만 이곳을 찾는 지역 주민은 보지 못했다.

분명 우리 땅이지만 출입이 통제된 탓에 이곳 주민들은 임진강 북쪽 지역을 ‘딴 세상’으로 여기는 듯했다.

김씨는 “지금은 강 하나 놓고 이북이랑 나뉘는데, 다리 하나 놓이면 얼마나 좋겠어”라고 말했다. 임진강 이북지역도 우리땅이지 않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여긴(이 마을) 접경지역이야. 저짝은 아무나 못들어가. 딴세상이지 뭐”라고 했다.

박규성씨는 나루터마을을 설명하면서 “여긴 장단반도서 피난 온 사람들 많어”라고 말했다. 장단반도는 파주 내포리에서 임진강을 건너면 바로 나오는 지역으로 우리땅이다. 한국전쟁 때 그곳에서 강 건너 온 주민을 ‘피난민’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반신반의’하는 임진강 주민들

지난달 27일 처음으로 북한 최고지도자가 우리땅을 밟으며 한반도 평화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보수층의 상당수도 남북 정상회담에 긍정평가를 내렸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잇따라 나오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 대한 신뢰도가 77%에 달한다는 여론조사 결과(지난달 30일 MBC 발표)도 나왔다.

그러나 이곳 주민들은 현재의 남북 대화모드를 반기면서도 북한에 대해서는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박규성씨는 “저들(북한)이 딴 짓을 안해야지. 몇번을 속었는데. (남북 관계는) 잘 돼야 하는 거고, 지금은 이렇다 저렇다 못허지”라고 했다.

만우리경로당에서 만난 한 주민은 욕설도 섞어가며 다소 격앙된 모습을 보였다. 그는 “전방 사람들은 저놈들 안믿는다. 잘만 되면 좋지. 그런데 (북한을) 어떻게 믿나”라고 했다. 다만 그는 “얼마 전 확성기를 떼가니까 조용한 건 좋다”고 덧붙였다.

경의선 종점 도라산역 인근지역이면서 민통선 내 마을인 파주 군내면 백연리 통일촌의 이완배 이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반신반의하고 있다”며 정상회담 이후 마을 주민들의 반응을 전했다. 앞선 두번의 정상회담 때도 마치 통일이 될 것 같았지만 남북관계가 바로 경색되는 걸 봤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선대와 달리 김정은 위원장의 평화에 대한 의지가 돋보인다는 반응도 있었다. 문지리 경로당에서 만난 윤경채씨(71)는 “지금은 김정은이 진실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자유한국당이 이번 회담 결과를 폄훼하는데 완전한 결과가 안나온 상황에서 너무 정치적으로만 이용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임진강 아랫마을에 터를 잡아 사는 파주시 탄현면과 문산읍 일대 주민들에게 임진강은 일터이자, 추억이 묻어있는 곳이자, 전쟁의 상흔이 남은 곳이었다. “지척이지만 지금은 발도 담글 수 없다”는 마을 주민의 말은 이를 상징한다. 이곳 주민들이 다시 임진강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날이 올까.

“옛날 얘기하믄 뭐해. 지나간 일이지, 꿈겉이. 앞으로 잘 돼야 안컸어?”(박규성씨)

[안보관광객 몰리는 임진각관광지]

지난 1일 점심 무렵 찾은 임진각관광지 주차장엔 차 댈 곳이 없었다. 임진각IC교차로 동편의 공터가 임시 주차장 노릇을 했지만 이곳도 여의치 않아 임진각관광지를 잇는 마정교(임진각로)까지 물려야 했다. 노동절 휴일을 맞아 이곳을 찾은 안보관광객으로 북적인 탓이었다.

평화랜드엔 놀이기구 바이킹이 운행 중이었으며 여기저기서 신나는 비명소리가 들렸다. 서울(53㎞)보다 개성(22㎞)이 더 가까운 이곳은 마치 축제를 여는 듯했다. 바람의언덕 건너편 공터엔 텐트를 치고 휴식을 취하는 시민들도 있었다.

임진각 전망대. /사진=서대웅 기자
임진각 바람의언덕. /사진=서대웅 기자

제3땅굴과 도라산전망대, 민통선 내 마을인 통일촌을 견학하는 투어버스를 타려 했지만 매표소 창엔 “관광객 폭주로 인해 금일 조기 마감되었습니다”란 표지가 붙어있었다. 통일촌 취재를 위해 이곳 관할구역 군부대의 정보처와 정훈공보부에 연락했지만 “최소 일주일 전 신청을 해야 하며 이미 정상회담 전부터 취재 요청이 밀려있다”는 답변을 받았다.

다만 통일촌 이완배 이장은 “회담 이틀 전부터 (북측이) 대남방송을 안했다. 그 전엔 밤새도록 한 적도 있었는데 이젠 발 뻗고 잔다”고 말해 마을 분위기를 접할 수 있었다. 이 이장은 또 “마을이 통일촌농산물직판장을 운영하는데 투어버스를 타고 오는 관광객이 많아 농외소득이 부쩍 늘었다”고도 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39호(2018년 5월9~15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파주=서대웅 mdw1009@mt.co.kr

<머니S> 금융팀 서대웅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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