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스타트업 새출발-르포] ‘한국판 실리콘밸리’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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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교에 위치한 스타트업캠퍼스. /사진=박흥순 기자

“이 부분의 재질을 조금 가벼운 것으로 만드는 게 사용하기 편하지 않을까? 아니다. 그러면 원가가 너무 많이 들겠구나. 그럼 적당히 가벼우면서도 저렴한 재질을 찾아봐야겠네.”

마치 대학교의 동아리방에 들어온 듯했다. 막 점심시간이 지난 터라 식곤증이 몰려올 시간이었지만 판교 스타트업캠퍼스에는 활기가 돌았다. 간혹 의견이 맞지 않아 고성이 오가고 졸음을 이기지 못한 이들은 휴게실에서 잠을 청하는 모습도 보였다.

한국의 실리콘밸리를 꿈꾸는 국내 최대 창업지원공간 판교 스타트업캠퍼스의 일상풍경이다.

◆인프라 완비… 누구나 창업

지난 8일 스타트업 종사자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판교 스타트업캠퍼스를 방문했다. 첫인상은 한적함이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수십여개의 스타트업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특히 8층에 위치한 오즈인큐베이션센터에서는 반팔에 슬리퍼 차림의 스타트업 관계자들이 쉴새 없이 회의하며 창의력을 쏟아내는 데 여념 없었다.

판교 스타트업캠퍼스는 경기도와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 사단법인 아르콘이 운영하는 공간이다. 2016년 3월 완공된 이 3개의 건물에는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각종 단체와 편의시설 등이 갖춰져있다.

판교역에서 도보로 약 20분. 다소 멀다고 느껴질 수 있는 거리에 위치한 스타트업캠퍼스의 운영 취지는 ‘업(業) 탐색 창업교육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는 것이란다.

이를 위해 스타트업캠퍼스 사무국은 16주간의 시그니처코스 교육을 실시한다. 이 교육과정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면 스타트업캠퍼스 8층에 자신들만의 작은 공간을 1년간 할당받을 수 있다.

스타트업캠퍼스는 1년에 두번 ‘신입생’을 받는다. 특별한 제약은 없다. 약 16주간 진행되는 시그니처코스 교육을 완주할 수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가능하다. 시그니처코스 교육대상자는 서류전형과 면접을 통해 선발된다. 면접전형에서는 일반 기업체 취업과 스타트업 창업에 대한 개인의 생각을 주로 묻는다. 흔히 알고 있는 경직된 방식의 면접이 아니라 순수하게 개인의 생각을 밝히면 되는 수준으로 크게 부담이 없다는 게 수료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판교 스타트업캠퍼스 내부. /사진=박흥순 기자

1기 스타트업은 다음달이면 입주가 만료돼 스타트업캠퍼스를 떠나 더 큰 물로 나아가게 된다. 다만 더 입주를 원하는 스타트업 1~2곳은 1년 연장할 수 있다.

민주희 스타트업캠퍼스 매니저는 “더 오랜 기간 입주를 허용할 수 있지만 많은 이에게 직접 시장에 나갈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해 입주기한을 1년으로 제한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제한에도 불구하고 스타트업캠퍼스에 입주한 스타트업 관계자의 만족도는 상당히 높은 편이다. 시그니처 1기 코스를 수료한 A씨는 “막연하게 창업하고 싶다는 의지로 스타트업캠퍼스에 지원하고 교육을 받았는데 생각을 구체화하고 사업을 진행할 수 있어 좋았다”며 “시설은 두말할 것 없고 스타트업에 대한 체계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어 만족한다. 뜻이 맞는 팀원도 구할 수 있어 더할 나위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스타트업캠퍼스에서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군대를 갔다 오지 않은 연령대부터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대기업을 다니던 중년층까지 모두 만날 수 있어 시야가 넓어지는 느낌”이라며 웃었다.

◆제도·사회인식 아쉬워

입주 기업 관계자들은 스타트업캠퍼스의 지원에 만족하는 분위기다. B씨는 “지난해만 하더라도 스타트업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이었는데 시간이 갈수록 긍정적인 측면이 부각돼 투자유치도 더 수월해진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물론 모두가 만족하는 것은 아니다. 일부 입주자의 경우 여전히 국내에서는 스타트업하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토로한다. 오즈인큐베이터에 입주한 스타트업 관계자 C씨는 “스타트업은 거대 기업에서 소화할 수 없는 톡톡 튀는 창의력이 가장 큰 무기인데 이를 온전히 구현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토로했다.

스타트업캠퍼스 8층에 위치한 오즈 인큐베이터 내부. /사진=박흥순 기자

실제 한 여성 성인용품전문 스타트업은 사업이 ‘건전하지 못하다’며 공공사업 지원을 수차례 거절당했다. 이 성인용품 스타트업은 지난해 결손가정의 청소년을 위해 생리대 지원사업에 참여하기로 뜻을 모으고 해당 사업을 추진 중인 사회단체에 생리대를 지원할 의향이 있음을 밝혔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뜻은 고맙지만 성인용품업체의 제품은 받을 수 없다”였다.

해당 스타트업의 공동대표 D씨는 “올바르고 건전한 성문화를 조성한다는 생각에 스타트업을 창업했는데 우리 사회는 아직 이 같은 취지를 온전히 수용하기 어렵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만약 성인용품을 생산하는 유명 대기업이 지원한다면 거절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또 스타트업 관계자들은 아직 제도적으로 시행착오를 겪는 점도 개선해야 할 과제로 지목했다. 스타트업 관계자 E씨는 “스타트업에 가장 필요한 것은 뭐니 뭐니 해도 투자자금”이라며 “투자하겠다는 말은 많이 듣지만 아직 체계적으로 제도가 갖춰지지 않아 주먹구구식으로 투자가 진행되는 일이 다반사”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스타트업 종사자들이 온전히 아이디어를 발산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다면 국내 스타트업이 한단계 성숙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40호(2018년 5월16~22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박흥순 soonn@mt.co.kr

<머니S> 산업1팀 IT담당 박흥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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