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수의 인사이트] 중식당에서 희망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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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지 않은 외식 전문가들이 중식의 종언을 말했다. 그러나 중식은 그렇게 쉬 사라지지 않는다. 빙산처럼 수면 아래 잠재된 중식에 대한 소비자 니즈를 간과한 관측들이다. 고객이 원하는 중식을 내놓으면 중식은 언제든 부활한다. 

◆ 중식당의 시대는 정말 갔을까?
여러 해 전, 모 외식기업에서 강남거주 주부들을 대상으로 외식 선호도 조사를 실시했다. 그때 한식 중식 일식 가운데 꼴찌를 차지한 것은 중식이었다. 중식은 강남 주부들에게 가장 인기가 없었다. 칼로리가 높고 지저분하다는 것이 중식에 대한 주부들의 일반적 인식이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2009년 서울대 비교문화연구소에서 한중일 음식문화 포럼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한국학중앙연구원 양영균 교수는 ‘한국사회의 웰빙 담론과 중국 음식’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논문에 따르면 ‘1982년과 비교해 2003년 한국에서 한식당이 243% 일식당이 511% 증가한 반면 중식당은 43% 증가한 데 그쳤다’고 했다. 역시 외식업계에서 중식의 비중이 점차 줄어든다는 주장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한동안 ‘일식이 뜨고 중식은 진다’는 말이 적잖이 회자됐었다.

그러나 외식업 전문가의 시선으로 보면 이것은 표면적인 현상일 뿐이다. 숫자나 도표로 나타나지 않은 중식의 잠재적 니즈는 아직도 상당히 강하다. 예전에는 중산층 가정마다 대개 단골로 정해둔 중식당들이 있었다. 집안 대소사 때 단골 중식당에서 행사를 치르곤 했다. 

▲ 송쉐프 (제공=월간 외식경영) @머니S MNB, 식품 외식 유통 · 프랜차이즈 가맹 & 유망 창업 아이템의 모든 것

이처럼 중식은 한식과 함께 수십 년간 강고한 지위를 잃지 않았다. 일식당 숫자가 늘어났다고 해도 일식 단가가 중식에 비해 너무 높다. 가족 단위 식사는 여전히 일식보다 중식이 더 선택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 진정한 틈새시장은 중식

얼마 전에 서울 신사동 중식당 '송쉐프'에 다녀왔다. 중식당으로서는 입지가 좋지 않았다. 거의 B급이나 C급에 해당하는 위치였다. 문을 연 지 얼마 되지 않았고 개점 후 특별한 홍보 활동을 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테이블이 늘 만석이다. 대체로 가정주부나 가족 단위 손님들이 많다. 식사, 요리 손님 뿐 아니라 저녁이면 술손님도 적지 않다. 규모에 비해 매출액도 엄청나다. 

이 집의 가장 큰 성공 요인은 음식 퀼리티에 비해 가격이 비싸지 않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음식 가격이 싼 것도 아니다. 강남 중산층 고객이 수용할 만한 선에서 아주 합리적으로 가격을 책정했다.

신생 '송쉐프'의 눈부신 약진은 고급 중식 수요가 많은 강남지역에 생각보다 괜찮은 중식당이 없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예전에는 꽤 괜찮은 중식당들이 많았다. 대개 화상들이 운영하던 식당들이었다. 그런데 어느새 하나 둘 사라졌다. 새로 생겨난 중식당들의 음식 수준은 사라진 중식당들의 음식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 

새로 생긴 중식당들은 음식 수준만 떨어지는 게 아니었다. 양이 적고 가격도 비싸졌다. 소비자 입장에서 가격은 비싸졌고 갈만한 중식당은 적어진 것이다. 이것이 소비자들로 하여금 차츰 중식을 외면하게 만든 요인이다.

합리적 가격의 괜찮은 중식당이 생긴다면 소비자들은 언제든 찾아갈 준비가 되어 있다. '송쉐프'가 짧은 시간에 성공한 것은 바로 이런 소비자 심리와 욕구를 정확하게 꿰뚫은 결과다. 양질의 중식당이 사리진 공백, 그 틈새를 메울 괜찮은 중식당의 부재. 이런 현실을 파고 든 것이 바로 '송쉐프'인 것이다.

◆ 강한 시그니처 메뉴가 강한 중식당을 만든다

얼마 전까지 삼겹살은 외식업에서 망하지 않는 창업 아이템이었다. 그러나 사정이 달라졌다. 너도나도 뛰어들다 보니 과열경쟁 양상을 보인다. 웬만해선 망할 수 없는 아이템이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요즘 틈새 창업 아이템으로 차라리 삼겹살보다 중식당이 더 낫다.

을지로에는 두 곳의 중식 노포가 있다. 그 중 하나는 '오구반점'이다. '오구반점'의 시그니처 메뉴는 군만두이고 또 다른 곳의 시그니처 메뉴는 굴짬뽕이다. 서로 다른 시그니처 메뉴는 두 점포의 경영 양상과 영업 형태까지도 갈라놓았다. 
 
1953년 문을 연 '오구반점'의 요리는 생각보다 뛰어나지는 않다. 그럼에도 저녁에 만석이 되는 이유는 군만두 때문이다. 군만두는 메뉴 특성상 확장성이 강하다. 손님들이 대부분 짜장면·짬뽕과 함께 군만두를 주문해서 먹는다. 아니면 군만두를 먼저 먹으면서 요리를 주문한다. 손님들은 식사나 요리에 군만두를 곁들여 술도 마신다. 

이처럼 군만두는 만능 재주꾼이다. 식사, 술안주, 포장 등 장기가 다양한 메뉴다. 주 메뉴인가 하면 사이드 메뉴 노릇도 톡톡히 해낸다.

반면 또 다른 중식당은 사정이 사뭇 다르다. 그 집의 시그니처 메뉴는 굴짬뽕이다. 굴짬뽕은 전형적인 식사메뉴로 술안주가 못 된다. 게다가 여름철에는 덜 팔리는 계절적 한계도 지녔다. 군만두에 비하면 메뉴 확장성이 현저하게 약하다. 굴짬뽕이 아무리 많이 팔려도 다른 메뉴나 주류 매출 증대에는 전혀 기여하지 못한다. 

만일 '오구반점'의 시그니처 메뉴가 군만두가 아닌 다른 음식이었다면 사정은 그 집과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 소량 저가 메뉴와 개성 있는 시그니처 메뉴 개발해야

중식당의 취약점은 주류 매출 부진이다. 이는 우리 중식당들이 자초한 측면이 크다. 일본의 중식당들은 소액으로 사먹을 수 있는 ‘작은 접시 메뉴’들이 많다. 영리하고 유연한 식당 경영방식이다. 손님들은 작은 접시를 시켜놓고 맥주를 곁들여 마신다. 부담 없이 주문할 수 있기 때문에 늘 손님들이 붐빈다. 

반대로 한국의 중식당은 최소 판매단위가 너무 크고 비싸다. 손님 입장에서는 간단하게 한 잔 하고 싶지만 부담스러워 주문할 수 없다.

메뉴의 가격과 양이 큰 것도 문제지만 메뉴의 획일성도 개선해야 한다. 이제 중식당도 짜장면과 탕수육 일변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시그니처 메뉴를 다양화해야 한다는 뜻이다.

양장피 맛이 뛰어난 대전 '봉봉원'을 발견한 건 우연이었다. 일전에 대전에서 사람을 만날 일이 있었다. 중식당에서 만나려고 오래된 중식당을 인터넷에서 검색했다. 그런데 50년 된 탕수육 집을 비롯해 올라온 콘텐츠가 온통 탕수육 밖에 없었다. 필자는 탕수육 말고 다른 중식을 먹고 싶었다. 그 때 양장피를 앞세운 '봉봉원'이 군계일학으로 눈에 들어왔다. 찾아가서 맛을 보니 뛰어났다. 

'봉봉원'의 탕수육은 대전 중식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었다. '오구반점'의 군만두, '송쉐프'의 난자완스처럼 '봉봉원'의 시그니처 메뉴였던 것이다. 양장피는 한동안 침체기에 있었던 '봉봉원'을 구해낸 효자 메뉴다.
 
일식은 메뉴 구성이 ‘중화기’ 위주여서 손님 입장에서는 문턱이 높게 느껴진다. 반면 중식은 일단 짬뽕 짜장면이라는 아주 유용한 ‘소총’을 무기로 지녔다. 최소한 식사 손님을 가볍게 끌어올 수 있고, 소총만으로도 어느 정도 ‘전투’가 가능하다. 이 점은 중식의 큰 이점이다. 중식은 잠재적 대박 아이템이다. 

앞으로 중식은 기획력과 메뉴개발 능력을 보유한 사람이 최후의 승자가 될 것이다. 그 가능성을 먼저 발견해낼 안목을 지닌 사람, 남보다 먼저 가능성을 성공으로 이끌어내는 사람이 외식업계를 지배할 것이다.


 

김현수 푸드컨설턴트 enterfn@mt.co.kr  | twitter facebook

머니투데이 미디어그룹 '머니S' 편집국 선임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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