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그룹의 시작과 현재형' 구본무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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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무 회장의 뚝심있고 온화한 리더십

구인회 창업주와 구자경 명예회장의 업적도 주목

구본무 LG그룹 회장. /사진=LG그룹
구본무 LG그룹 회장(73)이 서울 소재 모 병원에 입원해 치료 중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LG가(家)에 관심이 집중된다. 구본무 회장을 비롯해 아버지인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과 할아버지인 고 구인회 LG그룹 창업주가 주목받는다.

구본무 회장은 1945년 2월10일 경상남도 진주에서 구자경 명예회장의 첫째 아들로 태어났다. 연세대를 거쳐 미국 애슐랜드대학교를 졸업했으며 클리블랜드 주립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은 뒤 1975년 LG화학으로 입사했다.

구본무 회장이 그룹 총수에 오른 건 1995년이다. 과거 회사 이름인 럭키금성을 버리고 LG를 본격적으로 사용한 것도 구본무 회장이다. 최근에는 건강이 좋지 않아 동생인 구본준 부회장에게 사실상 그룹 경영을 맡겼지만 그의 리더십은 재계에서 이미 정평이 나있다.

겉으로는 유유자적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상당히 활발하고 적극적이라 조용하지만 치밀한 리더십을 지녔다. 이런 이유로 구본무 회장을 잘 아는 사람들은 그를 는 ‘백조’에 비유한다. “기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경쟁에서 이기려는 승부근성”이라는 그의 좌우명에서 승부욕을 엿볼 수 있다.

또한 소탈한 성격이지만 무엇이라도 대충대충 하는 것을 싫어하는 그는 항상 완벽을 강조하고 ‘뚝심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제대로 된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묵묵히 밀어붙이는 그의 리더십은 회장 취임 이후 그룹의 매출 규모를 5배나 끌어올리는 성과로 나타났다.

그는 최순실 국정논단 청문회에서 당당하고 솔직한 태도로 세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는 청문회에서 재벌총수 중 처음으로 전경련 탈퇴를 선언하고 곧장 실행에 옮겼다. 대기업들이 최순실 게이트에 흔들리는 상황에서도 LG는 이를 비껴가 눈길을 끌었다.

최근에는 ‘대한민국 재벌 신뢰지수’ 총수부문에서 1위에 올랐다. 일찍이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고 재벌에게 일상이던 경영권 분쟁과 일탈에 따른 구설에 전혀 오르지 않은 점이 높게 평가된 것으로 분석된다. 또 2015년부터 국가와 사회정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의인에게 ‘LG의인상’을 주는 모습도 높이 평가받는다.

그간 구본무 회장은 각종 미담의 주인공으로 언급돼 왔다. 지난해에는 강원도 철원에서 발생한 총기사고로 숨진 이모 상병의 유가족에게 위로금 1억원을 전달했다. 2015년에도 청년 일자리 창출을 돕기 위해 청년희망펀드 공익신탁에 사재 70억원을 기부하기도 했다.

또 2016년에는 지하철 승강장 선로에 추락한 시각장애인을 구한 최형수 해병대 병장을 대학졸업 후 특별 채용키로 한 바 있다. 같은 해 6월 서울 교대역 인근 묻지마 난동을 막은 시민 5명에게 표창과 상금을 전하는 등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표본으로 언급되는 인물이다.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 /사진=LG그룹
구본무 회장에 관심이 집중되면서 아버지인 구자경 명예회장과 할아버지인 고 구인회 창업주도 함께 주목받는다. 구자경 명예회장(93)은 1925년 4월24일 경상남도 진주에서 구인회 LG그룹 창업주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구자경 명예회장은 진주사범학교를 나와 5년간 교사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는 1950년 락희화학공업사(현 LG화학)에 이사로 입사했다. 1970부터 1995년까지 럭키금성그룹 회장직에 있으면서 취임 당시 매출 260억원이었던 그룹을 30조원 규모까지 끌어올리는 눈부신 성과를 거뒀다. 1995년 1월에는 장남인 구본무 회장에게 회장직을 넘기고 스스로 물러났다. 같은 해 2월부터는 LG그룹 명예회장으로 있으며 현재 천안에 있는 한 농장에서 지내고 있다.

고 구인회 LG그룹 창업주. /사진=LG그룹
고 구인회 LG그룹 창업주는 1907년 8월27일 경상남도 진주에서 태어나 1969년 63세의 일기로 별세했다. 구인회 창업주는 1931년 포목상을 설립해 사업을 시작했고 1947년 LG그룹 모태인 락히화학공업사를 창업했다. 또 LG그룹의 모태인 금성사를 1959년 설립하고 전자산업에 뛰어들었다. 럭키사도 치약, 칫솔, 비누, 합성세제 등을 한국 최초로 생산했다.

그는 사회 활동에도 주력했다. 1968년 회갑기념으로 진주에 연암도서관을 세웠고 1969년 12월 연암문화재단을 창설했다. 이후 LG그룹은 그의 뜻을 받들어 학자 및 학술지원에 기여한 사회저명인사들에게 포상, 장려금 등을 지원하고 있다.
 

박성필 feelps@mt.co.kr

산업분야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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