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트로가 뜬다] 추억을 넘어 새로운 시장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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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첨단기술의 홍수를 거슬러 투박한 옛 모습 '레트로'가 떠오른다. 레트로 열풍은 패션과 가전제품의 디자인 영역을 넘어 생활 전반에 빠르게 파고든다. 레트로 상품은 겉만 복고풍이고 속은 최첨으로 채워 또 하나의 경제적 가치를 실어나른다. <머니S>가 최근 마케팅의 키워드로 떠오르는 레트로 열풍을 추적했다. 레트로 열풍의 원인을 분석하고 복고에 열광하는 이들의 일상을 살펴본다. (편집자)

디지털을 넘어 인공지능(AI)이 등장한 요즘, 거꾸로 레트로(Retro) 열풍이 분다. 패션·가전·식품·유통·자동차·스포츠 등 우리 생활 속에 레트로 트렌드가 밀려든다. 단순히 옛것을 되살리거나 오래된 것을 파는 차원을 넘어 새로운 경제가치를 만들어내는 일종의 사회·문화현상으로 자리잡았다.

우리나라는 6·25 한국전쟁이 끝난 이후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려왔다.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였을 뿐 ‘좋은 것, 예쁜 것’을 따질 여유가 없었다. ‘생존’에 초점을 맞추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느라 전통이나 유산에 대해 고민할 여유가 없었다. 모두의 절박한 몸부림은 그동안 세계가 놀랄 만한 엄청난 성장으로 이어졌다.

한층 풍요로워진 지금까지도 우리는 말 그대로 ‘무한경쟁시대’를 사는 중이다. 정보는 쉴새 없이 쏟아지고 수많은 브랜드가 우리의 눈과 귀를 점령한 지 오래다. 어려웠던 시절 남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삶, 남과 다른 삶을 누리려는 본연의 욕망이 ‘새로운 것’에 대한 집착으로 번졌다.

이 같은 경쟁에 지칠 대로 지친 이를 위로하는 건 ‘추억’이다. 인간은 본능에 따라 편안함을 추구하려는 습성이 있다. 편안함은 익숙함에서 비롯된다. 오래도록 함께하며 눈과 손에 익은 것을 만나면 반갑고 정감이 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최신 트렌드 중 하나인 ‘레트로’도 여기서 출발한다.

영등포 타임스퀘어 이마트 일렉트로마트. /사진=임한별 기자 @머니S MNB, 식품 외식 유통 · 프랜차이즈 가맹 & 유망 창업 아이템의 모든 것

◆복고와 레트로, 미묘하게 다르다

레트로라는 말은 사전적으로 ▲추억하다 ▲회상에 잠기다는 뜻의 영어 단어 ‘retrospect’에서 나왔다. 대체로 ‘복고풍’이란 의미로 사용된다.

레트로는 엄밀히 말해 복고 느낌을 주는 것일 뿐 복고와는 약간 다르다. 복고(復古)는 말 그대로 옛 것을 되살린다는 의미인데 과거의 형태·정치·사상·제도·풍습 따위로 돌아감을 뜻한다. 따라서 영어 단어로는 복원을 뜻하는 ‘restoration’에 가깝다.

마케팅업계나 학계 관계자 등의 말을 종합해 보면 레트로는 ‘과거의 영광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것’을 뜻한다. 즉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양질의 콘텐츠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것으로 복고를 넘어서는 개념으로 볼 수 있다.

이를테면 철저히 과거 상황을 재현한 인기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는 복고에 가깝다. 하지만 여기에 새로운 가치를 더한 광고나 상품 등은 레트로다.

최근 꾸준히 인기를 이어가는 가전제품 중 기능이 최첨단이지만 겉모양은 옛 것을 응용한 레트로 라인업도 좋은 예다. 젊은 세대는 이를 단지 개성 있는 제품으로 여길 뿐 부모님세대가 쓰던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피아트 친퀘첸토 레트로(500 Retro) 스페셜 에디션. /사진제공=피아트

스메그 레트로 세탁기, 후지필름 X100F 브라운 에디션, 별뽀빠이. /사진= 각 사

◆남과 다름의 끝, 레트로

레트로 관련 키워드는 차별화, 프리미엄, 디자인 등이 꼽힌다. 이는 최근 레트로 트렌드가 빠르게 떠오른 배경과도 연관이 있다. 다름 아닌 ‘새것의 피로감’ 때문이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남과 다른 점을 드러내고 편리함을 추구하는 건 인간의 본성”이라며 “그 과정에서 새로운 것을 접하며 쾌감을 느끼는데 더 큰 자극을 위해 더 새로운 것을 찾다가 결국 만족도가 떨어지면서 피로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그 결과 ‘변함 없는 가치’에 주목하게 된다는 주장이다.

‘얼리어댑터’의 의미가 퇴색된 것도 같은 이치다. 20여년 전만 해도 새로운 것을 빠르게 받아들여 남보다 먼저 활용하는 부류가 일종의 길잡이 역할을 했지만 요즘은 신제품의 홍수 속에 사는 만큼 누구나 얼리어댑터가 될 수 있다. 남보다 더 많은 신제품을 접하려면 그만한 비용이나 노력을 쏟아야 하는데 결국 자기 돈자랑으로 끝나면서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는 경우도 생겨난다.

경제위기를 겪으며 젊은계층에 가치소비문화가 정착된 것도 레트로 제품의 인기 비결이다.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족이 생겨난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이들은 자신의 행복을 위해 소비하는 경향이 강하다. 본인이 만족한다면 아무리 값이 비싸도 소비할 수 있다는 것.

산업계도 레트로 라인업은 디자인과 성능을 차별화해 개성을 강조한 만큼 값이 비싸더라도 팔릴 것이라고 인식한다. 이런 이유로 레트로 라인업을 ‘한정판’으로 내놓기도 한다. 일종의 ‘프리미엄’ 전략이다. 소비자 반응은 당연히 폭발적이다.

SNS(사회관계망서비스)의 보급도 가지소비가 확산된 중요한 배경으로 꼽힌다. 사진과 동영상 속에서 개성을 표현하려면 독특한 디자인, 큰 로고가 훨씬 효과적이다.


휠라 헤리티지 사선 블럭 반팔 티셔츠, 휠라레이 슈즈. /사진=휠라

◆헤리티지를 담아라

레트로는 새로운 비즈니스모델로 자리잡는 중이다. 마케팅업계는 이른바 ‘흥행보증수표’로 여긴다. 오랜 시간 역사를 이어온 회사는 브랜드 헤리티지를 강조하며 다양한 전략을 구사할 수 있고 후발주자의 경우 차별화 요소를 통해 틈새시장 공략이 가능해서다.

나아가 폭넓은 세대를 아우르는 만큼 탄탄한 수요도 뒷받침된다. 1020세대에게는 개성있는 브랜드로 3040이상 세대에게는 추억을 되살릴 익숙한 브랜드로 다가갈 수 있다.

지난 1월 출시된 휠라 레트로 어글리 슈즈는 4월 말까지 15만개가 팔려 ‘대박상품’ 반열에 올랐다. 대우전자의 레트로 라인업은 30% 이상 가격이 비싼데도 판매량은 20%가 넘게 증가하기도 했다. 이마트의 가전전문매장인 일렉트로마트에서도 최신형 레트로 제품이 곳곳에 놓여있어 오가는 이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유통업계도 과거의 포장 패키지를 다시 살려낸 제품을 내놓는다. 또 장수 브랜드에 새로운 분야를 융합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기도 한다. 삼양식품은 별뽀빠이 스낵 출시 47주년을 기념해 한정판 레트로 제품을 내놨다. 롯데제과와 아모레퍼시픽이 협업해 죠·크·박(죠스바, 스크류바, 수박바) 해피바스 제품을, 휠라와 빙그레는 멜론 컬러를 입힌 ‘코트디럭스 메로나 및 슬라이드 메로나’를 내놓기도 했다.


마케팅업계에서는 최근 레트로 트렌드가 기업 헤리티지(유산)의 중요성을 깨닫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본다.

국내 대형 마케팅대행사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 국내 기업들이 현재와 미래에만 신경쓰다 보니 걸어온 길의 흔적을 제대로 남기지 못했다”면서 “해외 장수기업들은 각자의 헤리티지를 간직하고 이를 토대로 반성하며 미래를 대비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최근 우리나라의 레트로 붐은 기업이 옛것을 되돌아보고 독자적인 헤리티지를 깨닫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탄탄한 제품력을 바탕으로 헤리티지를 강조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게 진정한 레트로라는 점을 잊어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42호(2018년 5월30일~6월5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박찬규 star@mt.co.kr

산업2팀 박찬규 기자입니다. 자동차와 항공, 해운, 조선, 물류, 철강 등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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