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량진 별곡] '들뜬' 주거지 vs '우는' 공시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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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물쇠로 굳게 잠긴 노량진의 한 상가. 사진=임한별 기자
노량진이 무너지고 있다. 서울 한복판 교통의 요지, 국내 최대 수산시장이 손짓하는 곳. 청년 수만명이 공무원시험 합격의 꿈을 안고 불을 밝히는 공시촌…. 1970년대 후반 전국에서 모여들기 시작한 ‘청춘의 꿈’은 노량진을 기회의 땅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40여년이 지난 최근 노량진은 모래성처럼 서서히 허물어지고 있다. 평화롭던 ‘백로의 땅’ 노량진은 왜 서울의 골칫거리로 전락했을까. <머니S>가 최근 노량진 공시촌과 수산시장 일대에 닥친 위기의 원인을 찾아봤다. -편집자-


“교통편이 좋아서 개발되면 집값이 더 뛸 거예요.” - 노량진동 주민 A씨
“길게 줄지어 컵밥 먹는 모습도 다 옛날 일이에요.” - 컵밥거리 상인 B씨

대표적인 서민주거지이자 공시촌 밀집지역인 서울 동작구 노량진동은 최근 변화의 바람이 거세다. 재개발이 진행 중인 주거지역은 집값 상승 기대감에 부풀었다. 편리한 교통편을 갖춘 최적의 입지라는 자신감이 가득하다.

반면 공시촌 밀집 지역과 인근 상권은 울상이다. 주 고객층인 공시생 이탈이 가속화되며 폐업이 속출하고 있다. 인터넷강의(인강) 시대로 접어들며 학원강의를 들으러 올 이유가 사라진 탓이 크다. 변화의 기로에 선 노량진 일대는 활발함과 침울한 분위기가 공존했다.

◆재개발 본격화에 들썩이는 주거지

노량진 일대는 대표적인 서민 주거지이자 베드타운이다. 일부 비탈진 곳도 있지만 대체로 평지여서 오가는 데도 큰 무리가 없다.

베드타운이지만 서울 중심부라 교통은 편리하다. 지하철 1·9호선 환승역과 7호선 장승배기역 사이에 위치해 두 역을 오가는 데는 도보 10~15분이면 충분하다.

노량진을 통과하는 주도로인 장승배기로와 노량진로를 통해 수십여대의 시내버스와 마을버스가 오가는 점도 편리한 교통편을 입증한다. 이를 통해 강남·여의도·종로 등 서울 주요 업무지구로 이동이 편리하다. 이밖에 수산시장, 노량진근린공원과 한강공원, 샛강공원 등도 가깝다.

최적의 입지지만 주택은 다소 노후화됐다. 오래된 다세대주택과 빌라가 대부분이고 곳곳이 깨진 기와지붕과 천막으로 덮인 허름한 집도 보였다.
노량진의 한 노후 주택가에서 바라본 신축 아파트인 쌍용예가. /사진=김창성 기자
노량진에서 가장 비싼 새 아파트는 2010년 7월 입주한 ‘쌍용예가’. 나머지는 1997~2001년 사이에 입주한 아파트로 벌써 17~21년이 지났다.

인근 A공인중개업소에 따르면 쌍용예가 전용면적 59㎡ 시세는 6억~6억3000만원, 84㎡는 6억9000만~7억4000만원선이다.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쌍용예가는 높은 언덕에 있지만 노량진역세권인 데다 입주한 지 10년도 안된 새 아파트”라며 “지난 1년간 시세가 꾸준히 올랐고 최근 주변 재개발 소식을 타고 지속적인 매매가 상승도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의 말대로 노량진 일대는 최근 재개발에 속도가 붙었다. 교통이 편리한 서울 중심부에 위치한 데다 인근 장승배기역 일대에 종합행정타운 개발 및 경전철 서부선 개통 등이 예정돼 꾸준한 인구유입이 전망되는 만큼 대형건설사가 눈독 들이는 사업지다.

SK건설은 최근 서울 노량진2구역 재개발사업을 수주했다. SK건설은 2014년 GS건설과 함께 노량진6구역을 수주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인접한 노량진7구역도 단독 수주한 바 있다.

대형건설사를 중심으로 재개발 진행에 속도가 붙으며 시세도 뛰었다. 인근 B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노량진 일대의 주택·아파트 매매가는 최근 1년간 꾸준히 올랐다”며 “최적의 입지인 만큼 보상 등의 절차가 잘 마무리되는 일만 남았다”고 말했다.

◆줄어든 공시생에 침체된 공시촌

반면 노량진역 인근 상권과 공시촌은 울상이다. 노량진 학원가에 불어닥친 인강 바람에 공시생 유출이 늘며 공시촌과 상권을 꽁꽁 얼린 탓이다. 여전히 학원가 인근 식당, 카페 등은 사람들로 붐볐지만 속빈 강정이라는 게 상인들의 공통된 주장.

학원가 인근 카페 주인 C씨는 “여전히 사람들로 붐비지만 한창 장사 잘되던 때보다는 매출이 20% 이상 줄어든 것 같다”고 씁쓸해 했다.

인근 식당 주인 D씨는 “예전에는 손님의 대부분이 공시생이었다”며 “최근에는 일부 학원도 폐업하고 공시생도 많이 떠나 손님이 예전만 못하지만 그나마 값싸고 맛있다는 입소문이 퍼져 외부인이 많이 찾는 점은 위안거리”라고 말했다.

노량진 학원가의 명물로 통하는 컵밥거리도 한산했다. 문 닫은 가게가 많았고 그나마 문을 연 곳은 손님 몇 명만 띄엄띄엄 찾았다.
입주자를 구하는 한 고시촌의 안내문. /사진=임한별 기자
컵밥가게 주인 E씨는 “워낙 지역명물로 유명해서 명맥은 유지하고 있지만 예전만큼 바글바글한 모습은 없다”며 “공시생이 줄어든 데다 최근에는 미세먼지 문제까지 심각해 밖에서 조리하는 음식을 꺼리는 이가 늘었다”고 울상이다.

이뿐만 아니다. 번화한 대로변 1층 입지임에도 임대 안내 현수막이 곳곳에 붙은 채 방치된 가게가 보였고 폐업 후 새 업종을 차리느라 분주한 상가도 더러 보였다. 유행을 타고 넘어온 인형뽑기 가게 역시 텅 빈 건 마찬가지.

공시촌도 직격탄을 맞았다. 도서관에서 편하게 인강을 들으며 공부하는 시대가 되자 굳이 이곳에 방을 구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

인근 공인중개업소 관계자 F씨는 “보증금 300만원에 월세 20만~30만원,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40만~60만원 등 매물은 다양하지만 세입자는 갈수록 주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인근 고시텔에 사는 공시생 G씨는 “계약이 몇달 안 남았는데 연장하지 않을 계획”이라며 “집중만 할 수 있다면 도서관이든 카페든 어디서든 인강을 들을 수 있는데 굳이 돈을 이중으로 쓸 필요가 없지 않냐”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44호(2018년 6월13~19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김창성 solrali@mt.co.kr

머니S에서 건설·부동산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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