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량진 별곡] ‘화약고’가 된 최대 수산물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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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량진이 무너지고 있다. 서울 한복판 교통의 요지, 국내 최대 수산시장이 손짓하는 곳. 청년 수만명이 공무원시험 합격의 꿈을 안고 불을 밝히는 공시촌…. 1970년대 후반 전국에서 모여들기 시작한 ‘청춘의 꿈’은 노량진을 기회의 땅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40여년이 지난 최근 노량진은 모래성처럼 서서히 허물어지고 있다. 평화롭던 ‘백로의 땅’ 노량진은 왜 서울의 골칫거리로 전락했을까. <머니S>가 최근 노량진 공시촌과 수산시장 일대에 닥친 위기의 원인을 찾아봤다. -편집자-


국내 최대 수산물시장인 노량진수산시장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다. 신시장 입점을 거부하며 옛시장 터를 지키는 상인을 대상으로 수협중앙회가 강제퇴거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어서다. 법적으로 옛시장 상인들이 점유한 자리는 모두 불법이기 때문에 수협은 이들을 언제든 내몰 수 있다.

그러나 문제가 간단치 않다. 강제퇴거 집행 시 ‘제2의 용산 참사’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갈등이 심화되던 2016년 4월 수협 직원을 상대로 옛시장 상인이 ‘칼부림 난동’을 벌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국내 최대 수산물시장이라는 명성을 잃을지도 모른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에 시민의 발걸음도 줄어들고 있다.

노량진수산시장(구) 진입로에서 바라본 신시장(오른쪽 위)과 옛시장(오래 오래된 건물). /사진=임한별 기자

◆옛시장 상인-수협 갈등, 현재진행형

서울 동작구 노량진수산시장을 찾은 지난 4일 오후 신시장과 옛시장은 모두 한산했다. 여름에 성큼 다가선 계절 영향이 크지만 상인들은 “손님이 예년 대비 20~30% 줄었다”고 입을 모았다. 이는 시장을 둘러싼 갈등으로 대외 이미지가 실추된 탓이라고 상인들은 분석했다.

옛시장 상인과 수협의 갈등이 본격화된 건 2015년 말이다. 1971년 문을 연 옛시장이 노후해 현대화사업으로 추진한 신시장이 2015년 10월 완공됐지만 상인들이 입점을 거부하면서다. 생선을 놓고 파는 좌판대의 면적이 옛시장의 6.61㎡(2평)에서 신시장은 4.96㎡(1.5평)로 좁아졌는데 임대료는 1.5~2.5배 비싸졌다는 이유 때문이다. A급 점포 기준 임대료는 옛시장의 경우 20만원 후반대지만 신시장은 71만원이다.

이듬해 3월16일 신시장에서 경매가 시작되며 갈등이 본격화됐다. 당시 신시장으로 이동한 상인은 20%가량에 불과한데 경매공간을 옮겼고 이는 옛시장 상인들에게 직접적인 타격을 입혔다.

경매는 노량진수산시장의 존재 이유다. 시장의 정식 이름도 ‘노량진수산물도매시장’으로 지자체가 중도매 허가권을 가진 일반법정도매시장이다. 전국 수산물 부문 2곳 중 한곳이 바로 이곳이다. 즉 신시장에서 경매가 시작됐다는 건 국내 최대 수산물도매시장이 신시장으로 이동했다는 걸 뜻한다. 지난해 초 옛시장에서 신시장으로 넘어온 한 상인은 “여긴 경매가 없으면 시장이라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갈등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옛시장 상인을 대표하는 노량진수산시장 현대화 비상대책총연합회에 따르면 옛시장에 남은 상인은 270명가량이다. 전체 상인의 40% 정도다. 이들은 신시장 건물 구조상 영업활동이 힘들다며 입점을 거부하고 있다. 좌판대와 경매장이 가까이 있어야 상인들 동선이 꼬이지 않는데 신시장은 1층(경매장)과 2층(판매장)으로 나뉘어 있다는 것이다. 옛시장 상인 이모씨(60)는 “예전엔 물건(수산물)을 다 펼쳐놓고 직접 골랐는데 신시장은 경매 공간이 좁아서 샘플만 확인하고 산다”며 “물건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노량진수산시장(구). /사진=임한별 기자

노량진수산시장(신). /사진=임한별 기자

◆강제 퇴거집행 ‘초읽기’… 서울시 중재계획 없어

수협은 상인들의 이 같은 주장을 반박한다. 매장 면적은 옛시장과 동일하지만 상인들이 기존 시장에서 통로 공간(1.65㎡)을 무단 사용해 차이가 난 것이며 임대료는 새 건물인 데다 관리 등을 고려하면 비싼 편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 새 건물구조는 2009년부터 상인들에게 사업내용을 알리고 협의한 결과라고 수협은 밝혔다. 수협이 2009년 4월 노량진수산시장 중도매인 및 판매상인, 출하주 등 466명을 대상으로 9회에 걸쳐 사업 추진현황 및 기본계획 설명회를 개최했고 그해 7월9일 사업 추진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는 설명이다. 수협에 따르면 당시 상우회 761명 중 518명(80.3%), 중도매인조합 176명 중 130명(73.8%)이 사업에 찬성했다.

문제는 갈등을 해결할 실마리가 좀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히 수협이 옛시장 상인을 대상으로 강제 퇴거조치를 집행할 계획이어서 또 다른 논란이 예상된다. 옛시장 상인들의 자리 점유는 모두 불법이어서 수협은 이들을 언제든 내몰 수 있다.

수협은 옛시장 점포 명의자를 대상으로 2016년 8월 명도소송을 제기했고 항소포기자를 포함 128명에 대해 승소했다. 명도소송은 임대차계약 종료 후에도 임차인이 빌린 건물의 공간을 비워주지 않을 때 내는 것으로 수협과 노량진수산시장의 임대차계약은 2016년 3월25일 종료됐다.

수협중앙회 관계자는 “지난해 말 수협중앙회장이 300억원을 추가로 들여 옛시장 상인을 위한 지원책을 내놨지만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며 “남은 방법은 강제 퇴거 집행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만 집행 시기는 미정이라고 이 관계자는 전했다.

옛시장 측도 강경하긴 마찬가지다. 윤헌주 비상대책총연합회장은 “상인들의 목표는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등재된 시장을 지키는 것이다. 민주노련(민주노점상전국연합회)과 연합해 투쟁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입장 대립이 첨예하기에 수협이 옛시장 강제 퇴거에 나설 경우 충돌은 불가피해 보인다. ‘제2의 용산 참사’가 발생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오는 이유다. 수협 측은 “갈 곳 없는 주민들을 대상으로 강제 철거를 집행한 용산참사와 비교하는 건 적절치 않다”며 “옛시장 상인들은 신시장으로 이동할 수 있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추가 중재계획은 없다는 입장이다. 서울시 경제진흥본부 도시농업과 관계자는 “옛시장의 미래유산등재는 일부를 보존하는 차원”이라며 “옛시장 상인과 수협의 갈등을 오랫동안 중재해왔지만 추가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또 중도매인 허가권은 서울시에 있지만 이번 갈등은 수협과 옛시장 상인 간 임대차계약, 즉 사유재산을 둘러싼 것이어서 선뜻 나서기도 힘들다는 입장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국내 최대 수산물시장이라는 노량진수산시장의 명성은 퇴색하고 있다. 노량진수산시장 경매에 올라온 수산물의 총 거래금액은 2014년 3584억6900만원에서 지난해 3163억2800만원으로 11.75% 줄었다. 노량진 컵밥거리의 상인 이모씨는 “24시간 불 밝혔던 노량진수산시장도 다 옛말”이라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44호(2018년 6월13~19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서대웅 mdw1009@mt.co.kr

<머니S> 금융팀 서대웅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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