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한국경제] 길 잃은 ‘소득주도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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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정부의 핵심 경제정책인 ‘소득주도 성장’이 1년 만에 논란거리가 됐다. 정부는 최저임금 대폭 인상으로 노동자 소득이 늘면 내수가 활성화돼 고용주 수익이 증대되는 선순환 모델을 기대했다. 하지만 ‘고용 축소→고용주·노동자 수익 동반 감소’라는 부작용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고용·소득 축소, 양극화 심화 등 한국경제의 위기를 알리는 경고등도 켜졌다. 국책연구기관과 정부 내에서도 현재의 소득주도 성장론에 회의적인 목소리가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 /사진=뉴시스
◆경마 눈가리개식 밀어붙이기

“소득주도 성장의 실패가 최저임금의 급격한 증가 때문이라는 진단이 성급하게 내려지고 있는데 이에 대해 정부가 대응을 잘 못하고 있다. 소득주도 성장과 최저임금 인상의 긍정적 부분을 자신 있게 설명해야 한다. 긍정적 효과가 ‘90%’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31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한 발언이다. 하지만 통계청의 올 1분기 가계동향조사 결과를 보면 소득하위 20%(1분위)의 근로소득은 전년 동기 대비 9706원 올랐지만 세금과 이자비용 등 비소비지출이 4배 이상 많은 4만4949원 늘어나 실제 소득은 3만5243원 줄었다.

가계소득 하위 20~40%(2분위)도 소득이 2만5690원 늘었지만 비소비지출이 두배가 넘는 5만8754원 더 많아져 실제 소득은 3만3064원 감소했다.

반면 상위 20%(5분위)의 소득은 137만9313원 늘었고 비소비지출은 61만2998원 늘어 실소득이 76만6315원 증가했다. 저소득층은 소득이 줄고 고소득층은 늘어 양극화가 심화된 것이다.

이는 최저임금에 민감한 편의점·식당·숙박업·일용직 일자리가 지난해 12월부터 지속적으로 줄어든 것과 무관치 않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에 따른 부담을 견디지 못한 소상공인들이 고용을 줄여 가뜩이나 어려운 저소득층의 삶이 더 힘들어진 셈이다.

최저임금 인상의 혜택은 대기업과 상용직에게 돌아간 것으로 분석된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1분기 300인 이상 사업체 근로자 1인당 월평균 임금총액은 629만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6.2%(87만5000원) 늘었고 상용 5~300인 미만 사업체 근로자 월평균 임금은 336만원으로 4.9%(15만8000원) 올랐다.

하지만 청와대는 아전인수격 해명으로 논란을 키웠다. 홍장표 청와대 경제수석은 지난 3일 춘추관에서 브리핑을 열고 “가구주와 배우자 이외 ‘기타 가구원’의 소득을 1명의 소득으로 간주하고 분석한 결과 올해 저소득층의 소득증가율이 고소득층에 비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하위 10%를 제외하고는 올해 소득증가율이 전년 소득증가율에 비해 높다는 사실도 확인됐다”고 말했다.

청와대의 주장은 통계청이 발표한 가구단위 소득변화가 아닌 개인별 소득변화를 분석한 것이다. 특히 전체 가구소득이 아닌 근로자가구 위주로 분석해 자영업자와 실직자 등 실질적 저소득층에 대한 자료를 배제했다. 정부정책 성과에 유리한 데이터만 따로 추출해 가공한 셈이다. 

이와 관련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5일 서울 종로구 KT광화문빌딩에서 열린 ‘디지털 헬스케어 체험 현장’을 방문한 후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1분기 소득과 분배 측면에서 나빠진 것을 엄중하게 보고 있고 원인을 찾는 과정에서 논란이 있을 수 있다”며 “누가 옳고 그르고의 문제가 아니라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지혜를 모아 문제를 해결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 부총리는 이어 “소득주도 성장 정책의 부작용을 최선을 다해 줄이겠다”며 “소득분위 하위에 있는 노인 빈곤문제와 자영업자 문제 등을 해결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보완책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지난달 31일 (왼쪽부터) 김동연 경제부총리, 문재인 대통령, 이낙연 국무총리, 임종석 비서실장이 청와대 본관에서 2018 국가재정전략회의가 열리는 충무실로 향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국책연구기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최경수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은 지난 4일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서 “내년과 내후년에도 대폭 인상이 반복되면 최저임금은 임금중간값 대비 비율이 그 어느 선진국보다 높은 수준이 돼 고용감소폭이 커지고 임금질서가 교란돼 득보다 실이 클 수 있으므로 인상속도를 조절하는 방안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올해 최저임금은 전년 대비 16.4% 인상된 7530원이다. 문재인정부가 공약한 ‘2020년 최저임금 1만원 시대’를 위해선 내년과 내후년에도 15%가량 인상돼야 한다. KDI는 이번 보고서에서 이와 같은 대폭 인상이 계속되면 2019년 9만6000명, 2020년 14만4000명의 고용 감소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추정했다.

이와 관련 국제기구도 우려를 표한 바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 초 “한국의 2018년 최저임금 인상이 전반적인 소비를 부양해 경제성장을 뒷받침하겠지만 추가적인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은 실업률을 끌어올리는 등 경제에 타격을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속도조절론’ 목소리 커져

하지만 정부는 소득주도 성장정책의 속도조절보다는 기존 방침을 밀어붙이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문재인정부의 경제정책이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면서도 “방향이 옳다고 해서 그 정책을 무조건 지지할 수 없다. 정책은 방향 못지않게 속도도 중요한데 문재인정부는 너무 서두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이어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이 경제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사람들의 주장을 근거없는 우려라고 일축할 수는 없다”며 “경우에 따라선 이번 정책이 저임금 노동자의 삶을 더욱 어렵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에 정책의 영향을 모니터링하면서 조심스럽게 추진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44호(2018년 6월13~19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허주열 sense83@mt.co.kr

<머니S> 산업1팀에서 유통·제약·의료분야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취재원, 독자와 신의를 지키는 기자가 되겠습니다. 많은 제보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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