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날 경제학] 휴일도 출근… ‘번아웃’에 몰린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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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일한 만큼 편하게 쉬어야 하는 시대다. 잘 쉬어야 일의 능률이 오르고 건강해진다는 사회·문화적 분위기가 조성됐다. 공휴일에 대한 이해와 분위기가 변하자 저마다 이색 휴무를 즐기는 이도 늘었다. <머니S>는 ‘쉼’에 대한 우리 사회의 달라진 분위기와 이에 따른 경제효과를 비롯해 공휴일 확대로 나타난 각종 부작용을 어떻게 극복할 지 등의 문제를 짚어봤다. -편집자-


빨간날 못 쉬고 연차도 못써… 남은 것은 박탈감
휴일 신분시대의 슬픔

상대적 발탈감… '번아웃' 위태


/사진=뉴시스DB

경기 성남시에 사는 직장인 김모씨(36)는 휴일 출근이 고역이다. 형형색색의 등산복을 입고 지하철에 오르는 이들과 달리 김씨는 주말에도 말끔한 정장을 입어야 한다. 직업상 쉬는 날이 불규칙한 데다 회사 분위기는 쉬고 싶다는 말도 꺼내기 어렵다. 지난달에는 연차휴가 계획서를 냈다가 “그렇게 자꾸 쉬고 싶으면 다른 일을 하라”는 핀잔도 들었다. 김씨는 “마음 편히 쉰 공휴일이 언제인지 까마득하다”며 “집에서 가족과 함께 하지 못해 미안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최근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일과 삶의 균형) 열풍이 번지면서 쉴 때 확실하게 쉬자는 경향이 확산 중이다. 지난해부터는 휴일에 ‘연락 받지 않을 권리’까지 대두되면서 삶이 곧 일이던 한국인의 생활에 변화의 움직임이 감지된다.

확실히 세상은 변했다. 한국사회가 고도의 성장을 거듭하던 시절 휴일은 사치였다. 특근, 잔업 등의 명목으로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쉼 없이 회사로 향했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 성장이 정체되고 주 5일 근무가 시행되면서 휴일에 대한 인식이 변하기 시작했다. 몇몇 대기업에서는 “잘 쉬어야 일도 잘한다”며 직원들에게 휴식을 적극 권장하고 나섰다.

올해 법정공휴일은 69일로 1990년 이후 가장 많다. 주말을 포함한 ‘빨간날’은 모두 119일에 달한다. 하지만 모든 이에게 휴일이 온전히 주어진 것은 아니다. 제조업·운수업·서비스업 등 일부 업종 종사자들에게 아직 휴일은 ‘그림의 떡’에 가깝다.

◆휴일 늘수록 박탈감 커져

경기 시흥시에서 외식업에 종사하는 이모씨(31)에게 공휴일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이씨는 “공휴일은 더 바쁜 날이에요. 빨간날이 아예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라고 털어놓았다. 평소 이씨의 출근시간은 오전 9시다. 하지만 공휴일과 주말은 평일보다 재료를 더 많이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7시30분까지 출근해야 한다. 그마저도 중간에 재료가 떨어질 기미가 보이면 매장관리에 재료도 새로 준비해야 하는 등 눈코 뜰 새 없다.

사람을 더 쓰면 되지 않냐는 질문에 이씨는 “휴일에 쉬지 못하고 평일보다 더 바빠 사람도 잘 구해지지 않는다”며 “구인광고를 두달째 하고 있지만 가끔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 건성으로 면접을 보러 오는 사람 외에는 연락이 전무하다”고 말했다.

실제 이 매장은 주말에 더 바쁘다. 평일 140만~150만원의 매출을 올리고 휴일에는 180만~200만원의 매출을 기록해 약 30% 매출이 증가한다. 쉬는 날이 많을수록 장사가 더 잘되는 셈이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한사람이 휴일에 지출하는 금액은 평균 7만9600원이다. 정부도 이에 착안해 내수경제 활성화를 목표로 2015년 처음 임시공휴일제도를 시행했다.

하지만 문제가 발생했다. 정부가 임시공휴일을 지정하면서 회사 대표의 재량에 맡겼고 여기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종사자의 휴일에 격차가 발생했다. 취업포털 사이트 인크루트의 설문조사 결과 국내 중소기업의 61%가 임시공휴일에 쉬지 않은 반면 대기업은 23%의 직장인만 임시공휴일에 출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에게 활력을 부여하고 내수진작 효과를 거두기 위해 도입된 제도가 오히려 상대적 박탈감을 유발한 것이다.

경기 파주시에 거주하는 성모씨(36)는 “임금뿐만 아니라 휴일에서도 격차가 발생해 박탈감이 크다”며 “경영진은 임시공휴일 하루 쉰다고 회사가 위기에 봉착하는 것처럼 말하는데 거꾸로 이런 사소한 것을 챙겨준다면 없던 애사심도 생겨 회사 다닐 맛이 더 날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임시공휴일은커녕 법으로 정해진 연차도 다 써본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연차도 제대로 쓰기 어려워

법적으로 제공되는 연차도 박탈감을 키운다. 중소기업 종사자들은 연차를 마음놓고 사용할 수 없다고 불만을 제기한다. 전세버스 운전기사 이모씨(50)는 “4년째 이 일을 하고 있지만 단 한번도 연차를 마음대로 써본 적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회사가 정부와 공공기관에서 운행 일감을 받아오는 구조인데 관공서가 쉬어 회사에 일이 없어지면 그때 연차를 사용해 쉬어야 한다”고 말했다.

청와대 홈페이지의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법으로 정해진 연차도 마음대로 쓰지 못하는 현실을 개선해달라는 글이 올 6월 기준 1237건에 달한다.

자신을 3년차 직장인이라고 소개한 한 청원인은 “회사의 규모가 작아 다른 회사에 다 있는 연차휴가가 없다”며 “사장님은 일이 있으면 말하고 쉬거나 무급으로 하루 쉬라면서도 직원들과 대화를 하려 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이 청원인은 “기업의 규모에 관계 없이 최소한 쉴 수 있는 법안을 마련해 달라”고 요구했다.

전문가들은 ‘휴식’을 바라보는 인식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제도적인 해결책이 우선돼야 하지만 물질 중심의 구조적 문제점 또한 지적할 필요가 있다”며 “회사가 단기적인 경영 이익만 쫓다 보니 직원 삶의 질이나 만족도를 높여야 한다는 가치나 철학이 없어지고 결국 제대로 쉬지 못하고 ‘번 아웃’하는 직장인이 양산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45호(2018년 6월20~26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박흥순 soonn@mt.co.kr

<머니S> 산업1팀 IT담당 박흥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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