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삼만리] 상사 갑질에 멍드는 취업자… 따돌림·성희롱 '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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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미지투데이

역대 최악의 고용한파가 청년들을 덮쳤다. 정부가 일자리위원회를 구성하고 천문학적인 예산을 투입해 청년 일자리 정책을 최우선 과제로 추진함에도 취업난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없다. 청년층의 경제활동 소외는 생계유지 곤란과 주거문제를 비롯한 연쇄 부작용으로 이어져 한국경제 성장의 둔화를 낳는다. 정부가 청년일자리 문제 해결에 심혈을 기울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근본적 대책 마련엔 접근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머니S>가 청년일자리 문제의 현실과 이로 인한 부작용을 다양한 시각에서 짚어봤다. <편집자주>

취업에 성공해도 기쁨은 일순간이다. 근로계약서에 서명하는 순간 청년은 회사에서 ‘을’이 된다. 모든 근로계약서에서 사용자(회사)는 ‘갑’, 노동자는 ‘을’로 표기된다. 물론 편의상 표기되는 방식이지만 약자로 살아가는 삶은 그때부터 시작된다. 회사 또는 상사의 ‘갑질’을 오롯이 견뎌야 하는 새로운 고난의 길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사내 갑질의 종류는 한두가지가 아니다. 자신의 업무를 부하직원에게 떠넘기는 일, 성과를 가로채는 일, 인격모독, 따돌림, 심지어 성희롱까지…. 서열 관계에서 우위에 있는 직장 상사로 인해 신출내기 청년 직장인의 마음은 멍들어간다.

◆따돌림 부르는 상사의 ‘사소한 괴롭힘’

#. 한 대기업에 다니는 박종원씨(32·가명)는 회사에서 먼저 말하는 일이 거의 없다. 상사가 업무 지시를 내리면 대답할 뿐이다. 처음부터 내성적인 성격은 아니었다. 4년 전 입사할 때만 해도 누구보다 활발하게 지낸 그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나댄다”는 소리가 무성하게 들려왔다. 부당한 업무 지시가 잇따랐다. 업무가 늘어남에 따라 실수도 빈번해졌다. 상사는 “입만 살아서 할 줄 아는 게 뭐냐”며 나무랐다. 평판도 나락으로 떨어졌다. 상사의 업무지시 외에 박씨에게 말을 거는 사람도 없어졌다. 자연스레 말수도 줄었다. 박씨는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모르겠다. 입사 전까지 이런 일을 겪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며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따돌림을 당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청년 직장인이 사내에서 겪는 대표적인 갑질이 따돌림이다. 보통 우월적 지위인 상사로부터 시작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 못하는 직원’, ‘말만 많은 직원’ 등 상사로부터 찍힌 낙인은 주변 동료들에게도 영향을 준다. 사내에서 완전히 자리잡지 못한 청년은 상사 횡포의 딱 좋은 먹잇감이다. 그 상사가 인사권자라면 더더욱 참고 견딜 수밖에 없다.

류순건 노무법인 인화 대표노무사는 “최근 ‘미투’(#ME TOO) 운동이 활발하지만 사실 직장에서 가장 많이 발생하는 갑질은 상사로부터 시작되는 ‘사내 따돌림’”이라고 말했다. 사내의 조직적인 괴롭힘이 특정한 개인, 특히 상사에 의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는 설명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해 12월 발표한 ‘직장 내 괴롭힘 실태조사’ 보고서를 통해 “실질적으로 조직적 괴롭힘이지만 이를 수행하는 행위자는 특정 개인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직장 내 괴롭힘 행위자는 ‘상급자(임원·경영진 제외)’가 42.0%로 가장 많았으며 ‘임원 또는 경영진’이 35.6%로 뒤를 이었다. 동료직원과 하급자 비율은 각각 15.7%, 4.7%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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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의 괴롭힘’이 사내 따돌림의 원초가 될 수 있지만 문제는 그것이 사내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직장 내 괴롭힘 실태와 제도적 규율방안’에 따르면 과거 5년간 피해를 겪은 적이 있다고 응답한 사람은 66.3%에 달했다. ‘명예훼손·모욕 등 정신적인 공격’(24.7%), ‘업무 외적인 일을 시키거나 과도한 업무를 지시하는 등 과대한 요구’(20.8%)가 가장 많았다. 류 노무사는 “조직적인 따돌림은 보통 상사의 ‘사소한 갑질’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고 분석했다.

이처럼 직장 내 괴롭힘·따돌림을 당하더라도 피해자가 기댈 제도적 장치는 미흡하다. 설사 회사에 그러한 장치가 존재하더라도 꾹 참아내는 게 현실이다. 국가인권위의 조사에 따르면 직장내 괴롭힘 피해를 겪은 후 ‘특별한 대처를 한 적이 한번도 없다’고 응답한 사람이 60.3%에 달했다. 직장 내부 조직에 상담하거나(5.3%) 외부 민간기관에 상담을 요청한 경우(2.5%)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이종선 고려대학교 노동문제연구소 부소장은 “우리나라처럼 가부장적인 사회 분위기에선 직장 상사의 각종 갑질, 따돌림 등을 겪어도 참는 경우가 빈번하다. 외부에 알리는 순간 오히려 ‘배신자’로 낙인찍히기 때문”이라며 “특히 신분, 계약이 불안정할수록 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성희롱 피해… 그러나 알릴 수 없다

사내 갑질의 가장 극단적인 양상은 단연 성희롱·성폭력이다. 관련 조사들이 대개 익명으로 진행돼 정확한 피해 성별·연령 비중 파악은 어렵지만 피해자 대부분이 지위가 낮은 여성 하급자라는 게 학계의 분석이다.

또 민간기업의 성희롱·성폭력 피해 정도는 공공부문 종사자만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유추할 수밖에 없다. 여성가족부와 고용노동부가 각각 ‘양성평등기본법’, ‘남녀고용 평등과 일 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을 정기적으로 조사하고 있지만 노동부의 경우 ‘성희롱 예방 정책 필요성’ 조사에 그쳐서다.

그렇다면 공공부문의 성희롱·성폭력 피해는 어느 정도일까. 여가부가 지난 4월 발표한 자료를 보면 공공부문 종사자 중 6.8%가 최근 3년간 직접적인 성희롱·성폭력 피해를 경험했다. 국가기관, 지자체, 공공기관 종사자가 56만여명인 점을 감안하면 3만8000명에 달하는 수치다. 관련 고충상담창구 운영이 공공부문에 비해 미흡할 수밖에 없는 민간부문에선 피해자 비율이 이보다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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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성희롱·성폭력 피해 사실을 외부에 알릴 수 없는 조직문화다. 여가부 조사에서도 피해자 대부분(67.3%)은 그냥 참고 넘어갔다.

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는 “사내 성희롱·성폭력 문제는 선진국에서도 빈번하게 발생하는 문제다. 미국 실리콘밸리에도 기업 관련 소송 80%가량이 성문제”라면서도 “문제는 우리나라에서 성 관련 문제를 견제할 수 있는 내부장치가 부족한 점이다. 개인이 법적으로 대응하기에도 비용 감당이 어렵다.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 법과 제도가 보완돼야 한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46호(2018년 6월27일~7월3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서대웅 mdw1009@mt.co.kr

<머니S> 금융팀 서대웅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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