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에서 '박가네빈대떡' 추상미 대표 "아주 천천히 조금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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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은 늘 바빴다. 사업가인 아버지는 늘 바깥 일이 우선이었고, 어머니는 할머니와 함께 광장시장에서 하루 종일 장사를 하느라 피곤하기만 한 일상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집에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그녀는 이따금씩 외로웠지만 쉽게 내색할 수는 없었다. 

지적장애로 몸이 불편한 오빠를 직접 챙겨야만 했기 때문에 나약해지는 건 아예 생각할 수도 없는, 그런 것이었다. 어렵거나 힘들어도 그걸 내보이지 않고 조용히 혼자 끅끅 삼키며 성숙할 수밖에 없던 여자아이 하나, 그녀가 시장으로 나오게 된 건 뜻하지 않은 일이었다.

“대학교 때는 생명공학을 전공했어요. 그리고 한 연구소의 연구원으로 일하다가 아이를 낳고 육아휴직을 낸 후 쉬고 있었는데 '박가네빈대떡'이 세무조사를 받으면서 저도 경영에 참여하게 된 거죠. 할머니와 어머니 두 분이서 처리하기에는 쉽지 않은 일이었으니까요. 어릴 때부터 매장에 나가 부모님을 도와드리기는 했었지만 이 일을 업으로 삼고 싶지는 않았죠. 그저 주말과 연휴엔 나 혼자만의 시간, 여유를 보낼 수 있는 평범한 직장인을 꿈꿨어요. 그런데 인생이 계획대로 되지는 않았죠. '박가네빈대떡'과 함께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으니까요.”

50여 년 전, 광장시장 한 가운데 간판도 없던 노점은 할머니 혼자 운영하시던 걸 어머니가 함께 도우며 그 규모를 키웠고, 2000년 초부터는 어머니가 주도적으로 이끌어나갔다. 그리고 2008년 즈음에는 번듯한 점포를 얻어 '박가네빈대떡'이라는 상호의 간판을 처음 달기도 했다. 

'박가네빈대떡'은 그렇게 아주 천천히 조금씩, 그 이름을 알려나갔다.
“어릴 때부터 매장에 나와 부모님을 도와드리고는 해서 장사가 쉬운 줄 알았어요. 그냥 열심히만 하면 잘 되는 거라고 착각했던 거죠. 서른여섯 나이에 다시 매장에 나와 이것저것 바꿔보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어요. 지금까지의 주먹구구식 운영을 시스템화 시켜보려고 하기도 했고 직원들의 앞치마나 모자착용 등등 위생적인 부분도 매뉴얼화하려고 했죠. 하지만 모든 게 쉽지 않았어요. 무언가를 바꿔보려고 할 때마다 직원들과의 갈등이 생겼죠. '박가네빈대떡'에서 10년 넘게 일해 온, 제가 어린아이였을 때부터 쭉 지켜봐왔던 분들인데 그랬던 제가 갑자기 나타나 급작스런 변화와 지시를 하니 얼마나 당황하셨겠어요. 아무 것도 모른 채 너무나 교만했던 거죠.”

이후 그녀는 달라졌다. 거래처와의 관계 맺는 법에서부터 물건관리와 손질, 직원들과의 커뮤니케이션 등등 모든 걸 다시 처음부터 배워나가기 시작했다. 조용히 혼자 성숙할 수밖에 없었던 여자아이는 그렇게 스스로 또 하나의 틀을 깨고 나와 시장의 한복판에 섰다.

2호점 리뉴얼·기획, 성공적인 오픈으로 리부트

'박가네빈대떡'은 흔들리지 않는 뿌리와도 같았다. 집안 사정이 힘들 때마다 늘 든든한 의지가 되어줬다. IMF 때 아버지의 사업이 힘들어지면서 수많은 빚을 떠안을 때에도 할머니와 어머니는 이 매장에서 묵묵히 빈대떡을 부쳤다. 

삶의 굴곡마다 닥쳐왔던 모든 시련은 그 시간 속에서 희미하게 흩어지고 사라졌다. 때문에 '박가네빈대떡'이라는 이름은 ‘시장 한 구석의 식당, 빈대떡집’ 그 이상의 무엇이었다.

/ 월간 외식경영 제공 @머니S MNB, 식품 외식 유통 · 프랜차이즈 가맹 & 유망 창업 아이템의 모든 것

“2세 경영인으로서 주변의 시선이 곱지는 않았던 거 같아요. ‘부모님으로부터 좋은 매장 하나 물려받아서 편하게 산다’는 생각들을 하시는 분이 많았으니까요. 그런 시선들이 너무 부담스러워 잠 못 드는 날들도 많았죠. 그런 나날을 보내다가 서른일곱 되었을 때였나, 언젠가 아버지가 그런 말씀을 건네셨어요. ‘장사를 하지 말고 사업을 해라. 미래를 바라보며 현재를 참을 줄도 알아야 한다’라고요. 순간, 큰 힘이 됐죠. 그렇게 아버지에게는 목표를 멀리 볼 줄 아는 시선이나 자세 등의 경영철학을, 어머니에게는 현장에서의 디테일한 실무를 배웠던 거 같아요.” 

1000번을 흔들리며 무너지고 나서야 겨우 CEO가 된다고 했던가. 마음속으로는 하루에도 수십 번 무너졌다가 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하던 날들. 이러한 때에 그녀의 열정에 다시 불을 붙인 건 '박가네빈대떡' 2호점의 기획, 오픈이었다. 1호점과는 또 다른 '박가네빈대떡'의, 그리고 추상미 대표만의 색깔을 담아내보고 싶었다.

“광장시장 내에는 오랜 역사를 지닌 건물들이 많아요. 현재 2호점이 운영되는 곳도 1895년 을미년에 만들었진 건물이었죠. 광장시장과 '박가네빈대떡'의 역사, 그리고 이를 담아낸 스토리텔링으로 좀 더 구체화시켜보고 싶었어요. 이러한 의도를 잘 드러내기 위해 우선, 서까래를 모두 걷어냈어요. 중요한 기둥 몇 개만 남기고 모두 빼버렸죠. 철골과 석재 등 60년 역사가 고스란히 드러날 수 있도록 말이에요. 그 과정에서 ‘1895년 을미년에 만들어진 건물’이라는 표식의 ‘상량문’이 발견되어서 더 뜻깊은 공사가 될 수 있었죠.

이 와중에 그녀는 아버지와 자주 다투게 된다. 이것저것 덧붙이고 꾸미는 옛날 건축방식에 익숙했던 아버지의 시선으로는, 모두 걷어내고 빼는 방식의 미니멀한 건축·인테리어가 이해되지 않으셨던 것. 뿐만 아니라 간판에도 이것저것 설명하는 문구가 들어가야만 더 많은 손님들이 찾아온다고 생각했던 아버지에게 텅 빈 여백이 더 많은 간판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빈대떡집의 인테리어가 왜 이러냐, 간판이 이게 뭐냐, 아버지와의 다툼이 계속될수록 그녀의 오기는 더욱 더 단단해져만 갔다.

“공사기간, 텅 빈 매장 안에 홀로 앉아 4시간 정도 펑펑 운 적이 있어요. 그리고는 ‘오픈한 후에 사람들의 반응을 보여드리자. 이 방식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걸 증명해보이자’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2호점이 오픈하고, 손님들의 반응은 꽤나 긍정적이었다. “시장 빈대떡집 같지 않다”, “깔끔하고 세련돼서 맘에 든다”는 의견들이 이어졌다. 지금은 아버지도 '박가네빈대떡' 2호점을 여기저기 자랑하고 다니신다고. 새로운 매장의 성공적인 리뉴얼 오픈은 그녀에게 자신감을 불러일으켰다. 

2세 경영인으로서 견뎌야만 했던 부담스러운 시선 또한 어느 정도 훌훌 털어버릴 수 있었다. 그녀에게 이제서야 운동화 끈을 다시 묶는 시간이 잠시 주어졌다. 그리곤 앞으로 해야 할 일들로 머릿속은 더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장애인 고용·복지·교육 관련 재단 만드는 게 꿈

새롭게 리뉴얼 오픈한 '박가네빈대떡' 2호점은 메뉴에서도 차별화를 줬다. 해물빈대떡이나 고기빈대떡이 오랜 인기메뉴이기는 하지만, 1호점과는 다른 시그니처 메뉴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구상해낸 것이 ‘박가네 삼합’. 차가운 편육과 바삭한 빈대떡, 어리굴젓을 곁들여먹게 해 빈대떡의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도록 한 것. 이 외에도 최근엔 불고기빈대떡이나 치즈빈대떡 등의 신 메뉴들을 구상, 만들어보고 있기도 하다.

“빈대떡은 그 안의 식재료만 바꿔서 넣으면 새로운 메뉴가 나오기 때문에 굉장히 매력적인 음식이에요. 특히 '박가네빈대떡'은 100% 녹두를 갈아서 만들어요. 5년 전만 해도 kg당 3000원이었는데 현재는 6000원이죠. 이렇게 가격이 많이 올랐어도 100% 녹두를 사용하는 건 반드시 지키죠. 그 외 다른 식재료들도 모두 국내산을 써요. 고춧가루는 고창, 고추는 해남에서 직접 가져오죠. 식재료 비율만 매출의 45~50%에 육박해요. 때문에 수익을 남기려면 많이 팔아야 해요. 지금까지 꾸준히 찾아주시는 손님들이 있어 이러한 원칙을 겨우 지킬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르죠.”

그녀가 구상하고 계획하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박가네’라는 이름을 단 수제막걸리를 만들기 위해 조만간 2호점 매장 내에 소규모 양조장을 갖출 계획이며 '박가네빈대떡'과는 다른 제2의 브랜드도 구상 중이다. 제례음식을 전문으로 하는 온라인 판매사이트도 그녀의 사업계획 안에 있다.

“'박가네빈대떡'은 광장시장 안에 있기 때문에 그 가치가 더욱 빛을 발하는 것이라 생각해요. 때문에 '박가네빈대떡'이라는 이름으로 추가 개점을 한다거나 프랜차이즈 사업을 하지는 않으려고 해요. 대신, 수제막걸리나 PB 상품 등으로 브랜드를 넓게 확장시켜 이렇게 연결되는 수익으로 좋은 일을 해보고 싶어요. 특히 오빠가 몸이 불편한 관계로 장애인 복지환경을 바꿔보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하는데,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죠. 궁극적으로는 장애인들과 관련된 고용과 복지, 교육 등에 많은 도움을 주는 재단을 꾸려보고 싶어요.”

광장시장의 문화를 새롭게 만들어가는 것, 그리고 더 나아가 수익을 사회에 환원해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고자 하는 것. 누군가에게는 흔하고 뻔한 문장일 수도 있겠지만 그녀에게는 절실하다. 직접 겪어오며 힘들었던, 딱 그만큼의 비율로 말이다. 198.3m²(60평)과 132.2m²(40평), 2개 매장뿐인 '박가네빈대떡'이 유독 더 크게 느껴지는 건 그래서일까.

시장이 존재하는 한 지금 이 자리에서 계속

현재 추상미 대표는 '박가네빈대떡' 2개 매장, 그리고 인근데 2개의 커피전문점을 동시에 운영 중이다. 이렇게 그저 안정적인 상태에만 만족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녀는 또 새로운 것들을 꿈꾸며 만들어내고 싶어 한다. 그러나 절대 욕심내지도, 조바심내지도 않는다.

“요즘엔, 직원들과 오래 함께하는 구조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그래서 직원 노무관리와 복지에도 더 많은 신경을 쓰려고 하죠. 개인적으로는 '박가네빈대떡'의 수익을 좋은 일에 사용하고 싶어요. 어느 정도의 돈이 있으면 먹고 살 수 있죠. 그런데 그 이상의 돈을 움켜쥐고 있는 게 행복한 건지 아니면 그 돈을 좋은 일에 사용하는 게 행복한 건지 깊이 고민하게 돼요. 사업적인 것도 이런 생각과 맞물려서 바라보고 있죠. 어쨌든 '박가네빈대떡'은 광장시장이 존재하는 한 지금 이 자리에서 쭉 함께하며 착한 기업으로 커 나가고 싶어요.”

시장은 늘 분주하다. 또 다른 표현을 빌리자면 ‘살아있다’는 단어로 바꿀 수 있을까. 그 한 가운데에서 나고 자란 '박가네빈대떡'은 5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끊임없이 변화하며 달음박질치고 있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박가네빈대떡'은, 100여 년 전통을 지닌 종로 광장시장의 역사이자 문화 그 자체이기도 하니까.


 

강동완 enterfn@mt.co.kr  | twitter facebook

머니투데이 미디어그룹 '머니S' 편집국 선임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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