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칼럼] 열심히 일한 당신, ‘계속 일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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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공항 제1여객터미널 출국장. /사진=뉴시스 홍찬선 기자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는 광고카피를 보고 정리해고나 희망퇴직을 권고하는 말인 줄 알았던 사람이 있다. 열심히 일한 사람한테 떠나라고 하는 야박한 광고를 내보내는 세상에 기막혔을 것이다. 이는 현대카드가 신용카드시장에 진입하면서 내놓았던 광고카피로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직장인들의 심정을 적절히 표현해 히트작이 됐다. 지금도 휴가철이면 흔히 인용된다.

한국사람들이 가장 휴가를 많이 떠나는 시기는 7월 말에서 8월 초 사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여름에 휴가를 계획하는 국민은 약 55%인데 이 비율은 해마다 낮아지고 있다. 여름은 휴가철 성수기로 항공비와 숙박비를 비롯한 각종 여행 경비가 비싸고 국내여행은 교통체증이 심해 피로도가 높아 휴가를 떠나는 국민이 감소한 것이다.

또한 이제 어느 곳에서나 냉방이 잘 돼 뜨거운 계절에 무더위를 피하기 위한 휴가라는 의미가 퇴색됐다. 휴가문화도 여름을 즐기는 획일화된 패턴에서 벗어나 다양해지면서 봄가을로 확대됐고 상대적으로 여름의 여행비중이 줄었다. 사람들은 열심히 일한 뒤 언제라도 휴가를 떠나고 싶어 한다.

◆한국 연평균 휴가일수 10일

한국인의 실제 연가와 휴가일수는 길지 않다. '2017 한국의 사회지표' 보고서에 따르면 휴가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1년 평균 사용한 휴가일수는 2014년에 6.0일, 2016년 5.9일에 불과했다. 이는 휴가를 사용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산출한 평균으로 휴가를 못 간 사람들까지 포함해 평균값을 구하면 더 짧아진다.

1년간 휴가경험이 있는 사람의 비율은 2014년 62.3%, 2016년 64.2%로 국민의 3분의1은 아예 휴가를 가지 못한다. 한국은 자영업하는 사람이 많은데 이들은 가게 문을 닫고 휴가 떠나는 것을 꿈도 꾸지 못하는 편이다. 가게 문에 며칠부터 며칠까지 휴가라고 써 붙여 놓고 쉬는 경우도 있지만 흔치는 않다. 빠듯하게 생활비를 버는 상황이라면 하루하루 버는 돈을 포기하기가 쉽지는 않다.

글로벌 온라인여행사 익스피디아가 직장인 평균 유급휴가 일수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주요국 가운데 한국은 2011년부터 2016년까지 6년 연속 최하위를 기록했다. 2016년에는 8일이었는데 지난해에는 10일로 겨우 꼴찌를 면했다. 선진국 중 유급휴가 일수가 가장 적은 국가는 미국과 일본인데 한국과 별 차이가 없다.

유급휴가를 가장 많이 가는 나라는 남미의 브라질과 유럽의 프랑스, 독일, 스페인, 핀란드 등이다. 프랑스 직장인은 평균 30일의 유급휴가를 받아 대부분의 사람이 30일 모두 사용하는데도 90%는 휴가가 부족하다고 느낀다.

주어진 휴가일수에 비해 휴가를 많이 쓰지 못하는 국가는 일본이다. 전체 휴가일수의 절반 밖에 사용하지 못한다. 다음은 한국으로 주어진 휴가일수의 3분의1을 사용하지 않는다. 휴가를 전부 사용한 사람 비율은 2016년 39%에서 지난해 51%로 늘었으나 세계 평균 66%에 비해서는 여전히 낮다.

휴가가 있어도 가지 못하는 이유는 ‘업무가 바쁘거나 대체인력 부족’(34%)이라는 답변이 가장 많고 ‘상사나 동료 눈치 보여서’, ‘휴가를 모두 사용한 동료가 없어서’라는 답변도 있다. 주변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한국 직장인의 애환을 느낄 수 있다. 반면 호주와 핀란드는 다음해에 더 긴 휴가를 가기 위해 아껴두는 것이 주된 이유다.

◆일로부터 해방 못하는 휴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연수에 따라 규정된 연차휴가일수를 전부다 챙길 수 있는 경우가 있는 반면 사정상 그러기 힘든 경우는 공무원 사회에서도 볼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취임하면서부터 ‘과로사회’ 문제해결 의지를 피력하고 “연차를 모두 사용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사무관으로 근무하는 지인은 일이 많아 휴가를 제대로 가지 못할뿐더러 공휴일에 일하는 날도 있고 야근이 잦아 힘들어한다.

2016년에 국가공무원 1인당 평균 연가부여일수 20.4일 중 연가사용일수는 절반 정도인 10.3일이다. 고위 공무원일수록 연가 사용일수도 적다. 직급별로 5급 10.9일, 3~4급 10.3일, 고위공무원단 8.2일이다. 법에 규정된 휴가지만 직장이나 부서에 따라서는 보장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게다가 휴가를 가도 일에서 벗어났다는 해방감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익스피디아에서 전세계 주요 30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유급휴가 사용 실태’에 따르면 ‘휴가 중에도 일한다’는 답변의 비율은 한국(68%)이 세계 평균(37%)보다 훨씬 높고 ‘휴가 중에도 두고 온 일 생각에 불편하다’는 답변 역시 세계 평균(44%)을 훌쩍 뛰어넘는 72%로 나타났다. 이는 둘 다 세계 1위다.

대부분의 사람은 휴가를 가서도 수차례 업무를 확인하는 편이다. 이런 면에서는 인도, 대만, 브라질이 한국과 비슷하고 네덜란드, 노르웨이, 핀란드 등은 반대의 태도로 휴가를 보낸다. 심지어 휴가를 사용하는데 죄책감 느낀다고 답한 비율이 한국은 61%에 달해 세계 평균(29%)의 2배가 넘는다.

결과적으로 한국인의 휴가 만족도는 세계 최저 수준일 수밖에 없다. 휴가 이후 여유로워진 상태로 업무에 임할 수 있다는 사람의 비율(30%)은 세계 평균(67%)의 절반이 안된다. 휴가 이후 업무 집중력 상승도, 가족과의 친밀감·행복감 상승도 역시 세계 평균보다 낮다. 재충전을 하고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휴가를 가는데 원하는 효과를 얻지 못하는 것이다.

주어진 휴가를 사용하지 못하거나 휴식이 충분하지 않으면 일할 때 스트레스가 더 커진다. 요즘은 입사조건을 고려할 때 높은 연봉 다음으로 많은 휴가일수를 꼽는다. 유연한 근무시간, 주택 보조금보다 우선순위가 높다.

중견기업에서 엔지니어로 능력을 인정받으면서 10년간 일하던 지인은 아이가 중학교 들어가기 전에 가족과의 휴가를 두달 동안 보낼 수 있도록 허락을 요청했다.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다른 데로 옮기겠다고 마음먹었다. 회사업무에 기여도가 높았기 때문에 CEO가 기꺼이 수락했고 가족과 한달 넘게 해외여행을 하면서 소중한 추억을 쌓을 수 있었다.

고용주가 휴가를 독려하는 대표적인 국가는 캐나다, 멕시코, 노르웨이 등이고 고용주가 휴가에 대해 비협조적인 나라가 일본, 이탈리아, 한국 등이다. 이제는 한국도 직원을 격려하는 인센티브로 휴가가 큰 역할을 한다는 인식을 할 필요가 있다.

◆주말에 연차 하루 붙이는 식

휴가를 사용하는 패턴은 나라에 따라 다르다. 휴가일수가 30일이나 되는 브라질과 아랍에미리트 등은 긴 일정으로 휴가 보내기를 선호하고 휴가일수가 짧은 아시아의 한국, 일본, 홍콩 등은 짧은 일정으로 여러차례 휴가를 가는 경향이 있다.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근로자들의 휴가사용현황을 파악한 결과에 따르면 근로자들은 평균 연차휴가 15.1일 중 7.9일만 사용했으며 5일 미만은 33.5%,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는 응답도 11.3%나 됐다. 연평균 5.85회 휴가를 사용하고 최장 휴가사용일은 평균 3.08일로 짧게 나타났다. 평소에도 주말 이틀에 연차를 하루만 붙이면 되는 수준이다.

기간이 짧기 때문에 휴가 시 활동으로는 국내여행(36.8%)과 휴식·기타활동(35.9%)이 많고 해외여행(16.2%)은 상대적으로 적다. 지출액은 아무래도 해외여행(239만원)이 국내여행(74만원), 휴식·기타활동(33만원), 스포츠오락(25만원)보다 훨씬 많다.

최근 해외여행객수가 크게 늘어났음에도 아직까지는 국내여행이 대세다. 산업연구원이 휴가사용의 경제적 기대효과를 분석한 결과 근로자들이 현재 사용가능한 15.1일의 연차휴가를 모두 쓸 경우 여가소비 지출액 16조8000억원, 국내생산 29조3000억원, 부가가치 13조1000억원이 추가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휴가를 사용하지 못할 때 삶에 대한 만족감 하락(49.9%), 스트레스 누적으로 인한 업무 능률 저하(38.5%), 스트레스 및 피로 누적으로 인한 건강문제(33.3%) 등 여러 악영향이 나타난다. 이를 감안하면 일의 능률 향상과 개인의 행복 증진을 위해서도 법적으로 인정되는 휴가를 어떤 직장에서든지, 어떤 근무부서에서든지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사회적 풍토가 조성돼야 한다.
/사진=이미지투데이


☞ 본 기사는 <머니S> 제548호(2018년 7월11~17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이건희 재테크 칼럼니스트 feelps@mt.co.kr

산업분야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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