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칼럼] 아르헨티나에 투자해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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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대척점을 따졌을 때 한국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나라는 아르헨티나다. 비행기로 30시간이 넘는 거리다. ‘멀고도 먼 나라’ 아르헨티나에 대해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축구 강국이다. 월드컵 결승에 5번 진출했고 2번 우승, 3번 준우승했다.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8강 진출에 실패했지만 여전히 축구 강국인 건 틀림없다.

아르헨티나에 대해 사람들이 두번째로 떠올리는 것은 뮤지컬영화 <에비타>에서 주인공 에바 페론 역을 맡은 마돈나의 ‘Don’t Cry For Me Argentina’(아르헨티나여, 나를 위해 울지 말아요)라는 노래다. 시골의 가난한 집안에서 사생아로 태어난 에비타는 나이트클럽의 댄서로 시작해 퍼스트레이디가 됐지만 33세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신화와 같은 인생역정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다.

남편인 후안 도밍고 페론에 대해서는 38%에 달하던 빈민율을 4%로 떨어뜨리고 노동자 권익을 높였다는 긍정적 평가와 대중인기에 영합하는 포퓰리즘으로 경제를 멍들게 했다는 부정적 평가가 상존한다.

원래 아르헨티나는 세계 3대 곡창지대로 불리는 비옥한 팜파스평야가 국토의 60%를 차지해 1816년에 독립한 뒤 식량 수출로 세계 10대 경제대국에 올라섰다. 1913년 1인당 GDP(국내총생산)는 세계 6위였다. 남미 최초로 지하철을 건설했으며 폭이 144m에 달하는 세계에서 가장 넓은 도로가 있다.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지금도 관광객에게 남미의 파리로 불린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 남미의 진주로 불릴 만큼 부강했던 과거의 영화는 뒤안길로 사라지고 경제 부침이 극심하게 반복되는 역사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국립 국회의사당. /사진=이미지투데이
◆치솟은 실업률과 빈곤율

쿠데타 참여세력으로 노동사회복지장관을 지낸 후안 페론은 1946년 노동자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으며 대통령이 됐다. 그후 높은 임금과 많은 휴식을 보장하면서 분배를 중시하는 사회보장정책, 수입대체 산업화정책을 실시했고 초기에는 자국산업보호와 고용안정을 통해 나타나는 성과가 있었다.

하지만 비효율성으로 인한 생산성 저하, 사회보장지출액 증가로 재정적자가 커졌고 국제경쟁력이 약화됐다. 생산성 하락에 노동자 파업이 늘고 대외적으로는 미국과 영국이 아르헨티나의 농축산물 수입제한 조치를 내리면서 외환사정마저 악화됐다. 재정문제 해결을 위해 화폐를 찍어내는 악순환도 이어졌다.

후안 페론은 1955년 쿠데타로 물러난 후 해외 망명생활을 하며 재기를 노리던 중 1973년 총선에서 페론파가 압승을 거두자 귀국해 78세의 고령으로 재집권했다. 그러나 1년이 안돼 심장마비로 사망했고 부인 이사벨 페론(에비타 사후 재혼한 아내)이 부통령 자격으로 대통령 직위를 승계했다.

1976년에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호르헤 라파엘 비델라는 ‘더러운 전쟁’이라는 탄압정치를 펼친 것으로 유명하다. 외자 도입을 위해 공기업에 외채를 떠안게 했는데 상환을 위해 다시 외채를 끌어들이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정권 말기 빈곤율은 40%, 실질실업률은 18%로 치솟았다.

후임 대통령 레오폴도 갈티에리는 1982년에 영국령 포클랜드제도의 영유권을 주장하면서 전쟁을 일으켰다. 전비를 충당하기 위해 돈을 찍어내면서 통화증발이 일어나 페소화가치가 급격하게 추락했다.

1983년에는 민주화운동을 주도한 라울 알폰신이 대통령이 됐다. 국민은 민주적인 정부에 큰 기대를 걸었지만 경제개혁에서는 성과를 내지 못했다. 외채가 지속적으로 증가했고 연간 물가상승률이 5000%에 달했다. 1989년에는 실질 국민소득이 1964년 수준으로 뒷걸음쳤다. 알폰신은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임기 종료 6개월 남긴 채 사임했다.

신자유주의자 카를로스 메넴(1989~1999년 대통령)은 미국 달러가치에 아르헨티나 페소를 연동하는 태환법을 도입했다. 그 결과 페소화가치가 보장돼 물가상승률이 빠르게 내려갔고 1994년에는 3.9%로 떨어졌다. 이로써 수입품을 싼 가격에 살 수 있게 됐지만 수출부문 가격경쟁력은 하락했다. 수출경쟁국인 브라질의 헤알화가치 하락까지 겹쳐 수출이 급격하게 줄었고 실업자가 크게 증가했다.

◆분개한 국민, 시위 속출

이후 급진시민연합의 페르난도 데 라 루아(1999~2001년 대통령)는 재정적자 감축을 위해 긴축정책을 추진했으나 서민층의 반발이 심했다. 결과는 3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으로 이어졌다. 이로 인해 외채 규모가 불어나자 2000년 12월 IMF(국제통화기금)로부터 3년간 총 397억달러의 구제금융을 받았다.

각종 비상경제대책을 강구했지만 지속되는 금융 불안으로 자금이 빠져나갔고 뱅크런이 일어나 1년간 모든 은행계좌를 동결하는 조치를 취했다. 이에 분노한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냄비와 프라이팬을 두드리며 시위를 하자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무력진압으로 사태는 더욱 악화됐고 급기야 폭력시위대가 대통령궁으로 밀고 들어와 대통령직을 사임했다. 임시 대통령이 된 아돌포 로드리게스 사아는 1400억달러에 달하는 대외부채 상환을 일시 중단하는 디폴트 선언을 했다.

2002년 1월 의회는 좌익 페론주의자 에두아르도 알베르토 두알데를 대통령으로 임명했다. 같은 해 2월에는 변동환율제 도입으로 페소화가치가 무려 75%나 폭락했고 사상 최악의 경제성장률(마이너스 10.9%)을 기록했다. 재발한 경제위기에 실업률은 25%로 불었고 빈민수는 총인구의 40%를 넘어섰다. 이에 경제난을 극복하고 사회질서를 안정시키려는 목적으로 ‘환율체계의 개혁 및 국가비상사태 법안’을 발표했다.

2003년 대선에서 당선된 네스토르 키르치네르는 ▲일자리창출을 위한 건설경기 진작 ▲수입대체 공업 활성화 ▲수출을 위한 고환율정책 ▲공공요금 인상 억제 ▲세금을 내리면서 투자를 유도하는 경기부양책을 시행했다. 그 결과 경제위기로부터 벗어나 2003년부터 2008년까지 매년 8~9%의 고성장을 기록했다. 2003년 14.3%였던 실업률은 2008년 7.3%로 내려갔다. 대두 국제가격이 올라가는 등 국제환경도 우호적이라 수출액이 크게 늘었고 2006년 1월3일에 IMF차관 95억달러 전액을 조기상환했다.

2007년에는 부인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가 출마해 세계 최초로 부부가 연속으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크리스티나는 2011년 재선에 성공한 후 ‘페론주의’를 계승하는 ‘키르치네르주의’라는 신개념 정치철학을 내세웠다. 그러나 이에 따른 각종 규제정책은 국가 경쟁력과 경제 순위를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경제자유도는 2012년 세계 144개국 중 127위(미국 싱크탱크 카토 연구소), 2012~2013년엔 94위(세계경제포럼)로 최하위권에 놓였다. 물가는 상승하고 성장이 둔화되면서 지지율도 급속히 떨어졌다. 젊은 층의 인기가 높은 크리스티나정부는 투표 연령을 16세로 낮추는 법안을 의회에서 통과시켰다. 대통령 3선 도전을 위한 사전작업이라는 분석이 나왔고 주요도시에서 3선 개헌 반대시위가 벌어졌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지금도 계속되는 금융위기


현재의 대통령 마우리시오 마크리는 중도우파로 2015년 대선에서 페론주의와 단절을 선언했다. 그는 국가사회주의 정치이데올로기와 거리를 두고 경제를 살리기 위한 개혁을 추진했다. 관세율을 낮추고 외환규제를 풀었다. 재정적자 축소를 위해 전기와 에너지산업에 대한 국가보조금을 삭감하고 공공요금을 올리면서 가계부담이 늘어났다. 국가로부터 받던 혜택이 줄어들자 국민 지지율은 하락했고 지난해 12월 연금제도 축소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가 발생했다.

결국 긴축정책의 개혁 속도를 늦췄고 외국인들은 실망했다. 재정적자를 메우고 경제를 부흥시키기 위한 채권 발행을 늘려 대외부채가 크게 늘었다. 세수확보를 위해 외국인투자자에 대한 소득세 신설을 추진하고 미국 금리인상 여파로 투자자금의 해외이탈이 가속화됐다. 페소화가치 하락에 대응해 지난 5월4일 기준금리를 40%까지 올렸고 개별은행이 자산 대비 보유할 수 있는 달러 한도를 30%에서 10%로 내렸지만 결국 IMF(국제통화기금)에 지원을 요청했다.

이처럼 아르헨티나는 독립 이후 지금까지 수차례 금융위기를 겪었다. 그러나 아르헨티나는 세계에서 일곱번째로 넓지은 총 농지 면적의 4분의1 정도만 사용하고 있어 농업개발 잠재력이 크다. 세계 3대 대두 및 옥수수 수출국이며 자원 매장량의 세계 순위는 셰일오일 4위, 셰일가스 3위, 붕소 7위다. 4차 산업혁명 최대 수혜 자원으로 ‘하얀 석유’라 불리는 리튬의 매장량은 세계 4위다.

신재생에너지 여건도 우수하다. 수력발전 잠재력 중 20%만 개발된 상태이며 태양광 발전이 대부분 지역에서 가능하다. 국토의 50% 이상이 풍력 발전에 적합하며 국토의 약 90%에서 고온성 지열발전이 가능하다. 세계 1위 대두유 수출국으로서 각종 바이오 에너지 작물 경작에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

투자하기에 따라 세계 최대 바이오연료 생산국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한국은 뛰어난 두뇌와 최신 기술, 자본을 갖고 있어 자원의 75%가 미개발인 자원 부국 아르헨티나와 적극적으로 교류하면서 협력을 이끌어내면 상호 시너지가 매우 클 것이다. 어려운 시기를 오히려 장기적 관점에서 투자를 모색할 좋은 기회로 여기는 안목이 필요하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50호(2018년 7월25~31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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