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상사의 비수 “나는 만삭 때도 남들 만큼 일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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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세대가 우리 사회의 약자라면 대한민국 모든 여성은 최약자다. 여성의 경제·사회활동이 남성과 대등해졌음에도 사회 곳곳의 차별과 폭력은 여전히 존재한다. 결혼한 여성의 삶은 또 어떤가.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부모나 동료, 심지어 국가까지 나서 “출산하라”고 강요하지만 막상 아이를 갖고 나면 ‘집에서 애나 키우는’ 무능력한 사람으로 평가절하된다. 허울뿐인 성평등시대를 사는 여성청년, 그리고 경력단절여성…. 2030세대 여성은 공정한 대한민국을 언제쯤 볼 수 있을까.


[혼돈의 2030, 길을 찾아라-여성이라는 이유] ③ 선택지 없는 '경력단절맘'

“지난 4년 내내 단 하루의 자유도 없었어요. 첫째아이를 임신한 10개월, 출산과 1년여의 육아, 또 임신, 다시 출산과 육아…. 어느 순간 나의 인생에서 주인공이 사라졌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어떻게 내 삶을 되찾을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운동도 취미생활도 해봤지만 엄마로서가 아닌 장미애의 인생을 다시 찾는 방법은 직업을 갖는 것뿐이었죠.”

장미애씨(36)는 3살과 2살배기 아이를 키우는 전업주부다. 그의 하루 일과는 집안을 벗어나지 못한다. 아침 일찍 일어나 큰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낸 후 이유식 만들기, 설거지, 빨래, 청소 등을 하고 나면 어린이집 하원시간. 다시 아이들 먹이기, 씻기기, 놀아주기, 재우기 등을 끝내면 자정이 돼야 몸을 눕힐 수 있다. 평일은 거의 매일 야근하는 남편을 대신해 육아와 집안일을 혼자서 해내는 그에게도 한때는 엄마나 주부가 아닌 다른 직업이 있었다.

그는 2002년부터 만삭이던 2015년 겨울까지 13년 동안 국내 패션·의류업계에서 일했다. 지오다노·탑텐 등 유명기업과 가수 조성모 코디네이터실에 근무하면서 판매사원부터 매니저, 점장, 본사 대리까지 승승장구하며 커리어를 쌓았다. 잦은 야근과 지방출장, 실적압박으로 일이 고됐지만 매출 등 성과를 인정받아 인센티브를 받고 승진할 때마다 보람을 느꼈다. 그런 그가 일을 그만둔 건 스스로 원해서가 아니었다. 업계 특성상 출산·육아를 하고도 일을 계속하는 선례가 없었다는 회사 측의 권고로 육아휴직 2개월 후 반강제로 퇴사했다.
연년생 형제를 키우며 다시 직업을 갖기 위해 노력 중인 전업주부 장미애씨. /사진=머니S DB

◆"조직에 피해주는 사람으로 낙인"

- 사회생활하며 가장 좋았던 순간은?

▶일하면서 보람있던 순간은 매출을 크게 올려 성과를 인정받을 때였어요. 본사 슈퍼바이저로 발탁돼 서울과 지방의 여러 매장을 맡는 관리자가 됐어요. 매출과 직원 관리, 신상품 제안 등 프로모션 기획업무를 했어요. 경쟁기업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 이직도 했고 당시 나이로는 적지 않은 연봉을 받았어요. 퇴사 직전 연봉은 4300만원 정도예요. 휴가 때면 유럽·일본·필리핀·태국 등 해외여행을 다닌 것도 즐거웠어요.

- 좋아하던 회사와 일을 그만둔 이유는?

▶첫째아이를 출산하기 전 만삭까지 일했어요. 출산휴가 3개월과 육아휴직 2개월을 신청했는데 인사담당자로부터 육아휴직 선례가 없다는 답변을 들었죠. 인력 대체가 어렵다는 말과 함께요. 그래도 퇴사는 안한 상태였는데 복직시점이 되고 보니 새로운 매니저가 들어와 일하는 중이었고 회사에서 담당자가 집으로 찾아와 권고사직으로 처리해 정부 실업급여를 받게 해줄 테니 육아에 전념하라는, 사실상 해고통보를 받았어요. 고용노동부에 문의했지만 재직 중이어야 소송이 가능하다는 말을 들었고요. 출산과 육아로 지친 상태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했어요. 인생의 3분의1을 넘게 몸담았던 내 ‘일’이 끝난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하염없이 흐르더라고요.

- 일하면서 임신을 이유로 받은 불이익과 차별은 없었나.

▶“젊은 층이 입는 브랜드인데 배가 나와서 맞는 옷도 없겠다”, “회장님도 오시는 매장인데 이미지에 안 좋다”는 말을 들었어요. 한 여자상사는 “나는 만삭 때도 남들 하는 만큼 일했어”라는 말로 상처를 줬죠. 임신부라고 배려하고 도와준 동료도 많아요. 하지만 오히려 그들이 베푼 나름의 배려가 저를 불편하게 했어요. “임신해서 일하는 데 힘들지 않느냐”는 말이 ‘너는 동료들에게 피해주고 있어’라는 말로 들려 그런 배려도 받기 싫었어요. 조직에 피해를 주는 사람이 되기 싫어서 내 몫의 일을 악착같이 다했지만 결국은 피해만 주는 존재로 낙인찍힌 기분이었어요.
/사진=머니S DB

◆"다시 일하고 싶지만 선택지 없어"

- 다시 일하고 싶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다면.

▶아이 둘을 키우며 다시 일하고 싶었던 적이 많아요. 결혼 안한 친구들이 일하는 모습을 볼 때와 육아 때문에 힘들어서 도망치고 싶을 때요. 망설였던 이유는 자신감이 없어서였어요. 업계 트렌드는 시시각각 변하는데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사회에 다시 나가기가 두려웠어요. 또 만약 지금 재취업해서 아이들을 베이비시터에게 맡기고 온종일 일터에 있다 보면 남는 돈도 없는 데다 나도 아이들도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다시 일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첫째아이를 낳고서는 재취업의 희망을 버리지 않았어요. 그래서 돌도 되기 전에 어린이집을 보내며 준비했는데 둘째아이를 가진 것을 안 순간 ‘아, 취직은 물 건너갔구나’ 싶었죠. 이제는 두 아이를 유치원에는 보내야 다시 일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이것저것 알아보다가 생각해낸 것이 SNS마켓이에요. 자영업이 회사원보다 훨씬 힘든 것을 알지만 아이 둘을 보며 일할 수 있는 자리가 많지 않으니까요. 둘째를 임신한 지난해부터 사업자등록을 하고 동대문시장 거래처를 알아보며 준비했어요. 이 일 역시 아이 둘을 돌보며 제대로 하기는 어렵지만요. 구청에 전자상거래 신청도 하고 은행과 세무서도 가야 하는데 연년생 아들 둘을 데리고 하는 것은 불가능해요.

- 우리 사회가 경력단절 여성을 위해 바뀌었으면 하는 점은.

▶맞벌이부모에게 돈보다 더 필요한 것은 시간이에요. 정부지원금도 도움이 되지만 유연근무제를 보편화하는 게 실질적으로 맞벌이육아를 가능하게 한다고 생각해요. 자녀 등하교에 맞춰 출퇴근시간을 조정해주면 굳이 육아휴직을 내지 않아도, 베이비시터나 조부모의 도움 없이도 많은 부모가 맞벌이를 할 수 있을 거예요. 또 보조양육을 위한 정부지원금을 소득수준으로 등급화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최소한 소득기준이 지금보다는 높아져야 해요. 아이돌봄서비스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소득기준이 임금인상이나 물가상승률에 비하면 너무 낮아 현실성이 없어요. 정말 극빈층만 지원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의미가 없어요.

☞ 본 기사는 <머니S> 제555호(2018년 8월29일~9월4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김노향 merry@mt.co.kr  |  facebook

안녕하세요. 머니S 산업2팀 김노향 기자입니다. 부동산·건설과 관련해 많은 제보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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