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한 '세상의 반', 그녀들은 왜 거리로 나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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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세대가 우리 사회의 약자라면 대한민국 모든 여성은 최약자다. 여성의 경제·사회활동이 남성과 대등해졌음에도 사회 곳곳의 차별과 폭력은 여전히 존재한다. 결혼한 여성의 삶은 또 어떤가.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부모나 동료, 심지어 국가까지 나서 “출산하라”고 강요하지만 막상 아이를 갖고 나면 ‘집에서 애나 키우는’ 무능력한 사람으로 평가절하된다. 허울뿐인 성평등시대를 사는 여성청년, 그리고 경력단절여성…. 2030세대 여성은 공정한 대한민국을 언제쯤 볼 수 있을까.

[혼돈의 2030, 길을 찾아라-여성이라는 이유] ① 여성에게 ‘국가’란 무엇인가

/사진=박흥순 기자

올 초 세계적으로 확산된 ‘미투 운동’을 거치면서 국내 페미니즘 운동의 규모와 응집력은 과거와 비할 수 없을 만큼 커졌다. 2030세대 여성을 중심으로 확산된 페미니즘 집회는 지난 8월18일 오후 5시 서울 종로구 사직동 서울역사박물관 앞 도로에서 절정에 달했다.

◆평화·분노 공존한 5차 집회

‘미투 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이 주최한 ‘제5차 성차별·성폭력 끝장집회’는 경찰에 참가인원 1000명으로 집회신고를 했지만 예상보다 많은 2만여명(주최 측 추산)의 인파가 몰렸다.

이날 집회는 자유발언 등으로 이뤄진 1부와 거리 행진, 횃불 퍼포먼스 등이 이어진 2부 순으로 진행됐다. 경찰은 안전사고 방지를 위해 서울역사박물관 앞 2개 차선으로 집회장소를 넓혀줬다. 이날 5차집회는 당초 25일로 예정됐지만 지난 8월14일 법원이 수행비서 김지은씨를 간음·추행한 혐의로 기소된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 무죄 판결을 내리면서 일주일 앞당겨 진행됐다.

집회에 참여한 이들은 “안 전 지사의 무죄판결은 미투운동 이후 성평등 사회로의 전환을 기대한 시민들에게 큰 상처를 안겼다”며 “국가권력이 여성을 배제하는 사회에서는 살지 못하겠다”고 외쳤다. “가해자는 처벌받고 피해자는 일상으로”, “진짜미투 가짜미투 네가뭔데 판단하냐”는 구호도 이어졌다.

집회 현장에는 수많은 취재진이 몰려 여성운동에 쏠리는 사회적 관심을 드러냈다. 이날 집회는 기존의 ‘혜화역 집회’와는 다른 분위기로 진행됐다. 집회 참여자에 대한 언론사 인터뷰를 허용하는가 하면 ‘생물학적 여성’이 아니어도 집회에 참가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유연성을 보였다. 덕분에 5차 집회에는 다양한 연령층의 여성은 물론 남성과 유모차를 끌고 온 가족, 외국인도 참가했다.

유지훈씨는 “안 전 지사에 대한 법원의 판결이 완전히 잘못됐다는 생각에 힘을 실어주고 싶었다”며 “이번 판결은 누구든 타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해도 된다는 뜻이라고 생각한다”고 집회에 참여한 이유를 밝혔다. 유씨는 이어 “주최 측이 남성의 참여를 허락하는 한 앞으로 열릴 집회에도 계속 나올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집회는 큰 충돌 없이 평화롭게 이어졌다. 인근을 지나가던 자전거 동호회원들이 집회에 참여한 이들을 응원하는가 하면 도로 위의 여성운전자가 박수를 보내는 모습도 목격됐다. 경찰도 여성경찰과 대화경찰을 배치해 자칫 발생할 수 있는 물리적인 충돌을 최소화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사진=박흥순 기자

하지만 모든 것이 평화롭지만은 않았다. 집회 도중 일부 진행요원과 언론사 취재진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주최 측 진행요원은 특정 언론사에 "취재하지 말라"며 언성을 높였고 언론사 측은 취재를 방해하는 이유를 따지며 날선 반응을 보였다.

집회 참여자와 진행요원 간의 온도차도 감지됐다. 집회장에 나온 시민들은 연신 웃으며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집회를 즐기는 모습이었지만 진행요원들은 인터뷰와 사진촬영을 거부했으며 표정에서부터 경직된 모습이 역력했다.

집회 현장 한쪽에서는 “남성연대 박살내자”는 등의 구호도 들렸다. 주말을 맞아 가족과 함께 서울역사박물관을 찾았다는 A씨는 “아이에게 집회의 자유를 보여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예상보다 과격한 구호가 들려 걱정된다”며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자유지만 최근 남성과 여성의 대결구도로 확장된 것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2030 여성 관심 끄는 페미니즘

최근 한국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이 높다. 페미니즘이 한국사회에 뿌리내린 ‘조신한’ 여성상과 완전히 상반된 만큼 이를 바라보는 시각도 다양하다. 지난 수백년간 한국의 여성은 수동성이 미덕이었다. 이런 경향은 조선시대부터 이 땅에 뿌리내렸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 양대전란을 겪으면서 성리학이 이데올로기로 자리잡았고 남존여비의 성적 차별화가 강고해졌다. 이런 세태의 잔재를 다 털어내지 못한 지금, 그들이 거리로 나왔다. 남성 중심의 억압적인 사회에서 벗어나자는 구호를 부르짖으며 40도에 육박하는 길 위에 뭉쳤다.

페미니즘 운동은 여성주의를 기반으로 여성이 주체가 돼 성평등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벌이는 조직적인 활동을 말한다. 그간 소규모로 진행되던 국내 페미니즘 운동은 2016년 20대 여성이 살해당한 ‘강남역 화장실 살인사건’을 도화선으로 확장성을 갖게 됐다.

당시 피의자는 경찰에서 “여성들이 자신을 무시해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이 사건은 역설적으로 페미니즘의 저변을 폭발적으로 넓히는 계기가 됐다. 2030세대 여성을 중심으로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이들이 급증했고 이는 적극적인 행동으로 이어졌다.

/자료=예스24

페미니즘 관련 서적도 불티나게 팔렸다. 사건이 발생한 직후인 2016년 5월부터 지난해 4월까지 페미니즘 관련 도서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3.2배 늘었다. 20대 여성(23.8%), 40대 여성(18.3%), 30대 여성(14.5%)이 가장 많이 구입했으며 30대 남성의 구매비율도 14.3%로 4위를 차지했다.

최근 국내 페미니즘 운동은 남녀간 성대결로 번지는 양상이다. 극단적인 페미니즘 사이트 워마드는 성체 훼손 논란, 낙태인증 등 일탈행동을 보여 물의를 빚었다.

◆급진 페미니즘 바라보는 시각 분분

워마드는 2015년 디시인사이드 메르스 갤러리에서 만들어진 ‘메갈리아’가 원류다. 이후 2016년 1월 모든 남성을 적으로 여기는 이들이 메갈리아를 탈퇴해 워마드를 만들었다.

워마드의 취지는 한국사회에 만연한 여성혐오를 '미러링'으로 돌려주는 것을 표방한다. 일베 등 여성혐오 사이트에서 주로 나타나는 양태를 그대로 따라하며 남성 중심의 차별적인 사회분위기를 고발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이 같은 행동이 과격해지면서 순수한 페미니즘 운동을 원하는 2030세대 여성의 외면을 받기 시작했다.

집회에서 만난 페미니스트 B씨는 워마드에서 벌이는 일은 순수한 페미니즘 운동과 다르다고 강조했다. 그는 “워마드에는 여성권리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것과 별개로 같은 여성을 공격하는 용어도 자주 등장한다”며 “이것이 진정 페미니즘 운동인지 의구심이 들어 거리를 두게 됐다”고 말했다.

B씨의 말대로 워마드에서는 여성기혼자를 ‘망혼자’(결혼을 해서 인생을 망쳤다는 뜻)로 지칭하고 남성중심으로 생각하는 여성을 ‘흉자’(흉내XX)라고 비난한다.
/사진=박흥순 기자

일부 2030세대 여성 중심의 급진적인 페미니즘을 두고 전문가들의 시각은 갈린다.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언론 인터뷰에서 “워마드의 성체 훼손, 성당 방화 예고, 버스안 칼부림 등의 행동은 정당화될 수 없다”면서 “하지만 이들을 일방적으로 비난하기보다 왜 이런 일탈이 일어나는지에 대한 원인을 이해하는 일 역시 중요하다”고 말했다. 윤김 교수는 이어 “워마드는 자신들을 페미니즘이라고 인정하지 않지만 페미니즘에서 가장 강경한 노선에 서있는 집단이라고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반면 현택수 한국사회문제연구원장은 “특정 집단이 과격하게 자신의 신념을 주장하면 사회에서 고립될 수 있다”며 “이런 방식으로는 자신들이 주장하는 신념을 상대편이 받아들이도록 설득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 원장은 “감정적으로 치달을 것이 아니라 이성적인 토론을 통해 문제를 공유하고 서로 다른 점을 인정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55호(2018년 8월29일~9월4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박흥순 soonn@mt.co.kr

<머니S> 산업1팀 IT담당 박흥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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