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웅의 여행톡] 세월의 더께에 '젊은 색' 덧칠

 
 
기사공유
종로3가 뒷골목의 세월기행
익선동 한옥길에 담긴 '럭키 서울'의 늦여름


지난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익선동 한옥마을 전경. 한옥길 맞은편에 '3대요정'의 하나인 오진암의 자리에 대형호텔이 들어섰다. /사진=박정웅 기자

종로서적, 금강제화, 피카디리극장, 단성사…. 휴대폰이 대중화되지 않았던 시절, 이른바 ‘종로통’의 친숙한 약속 장소다. 세월이 지나 더러 간판을 고쳐 달거나 명을 다한 곳도 있다. 하지만 이곳에서 만나 종로 뒷골목을 배회한 추억은 또렷하다.

이름만 떠올려도 그때의 추억이 저절로 소환되는 곳. 스마트폰이 일상을 지배하는 요즘도 이곳을 스쳐지나 뒷골목을 찾는 젊은 인파는 여전하다. 달라진 게 있다면 이들의 목적지가 분산된 것. 피맛골이나 인사동에서 멈추던 발걸음은 이제 탑골공원 뒷골목까지 촘촘히 파고든다.

탑골공원에서 낙원상가쪽 서북광장(후문광장). 말이 광장이지 상가와 탑골공원이 남겨놓은 자투리 공터다. 상대적으로 가격이 싼 평양식냉면으로 유명세를 치른 작은 음식점 앞 대기 행렬이 전보다 길어졌다. 오랜 단골인 어르신들에다 최근 젊은이들까지 가세해서다.

지난 17일 찾은 탑골공원 후문광장(서북광장). 북문은 공원 관리를 이유로 오래전 폐쇄됐다. /사진=박정웅 기자

맞은편 탑골공원 북문은 오래전 폐쇄됐다. 하지만 서두를 것 없는 듯 어르신들의 정담이 담벼락을 따라 늘어진다. 마찬가지로 폐쇄된 동문 담벼락 끝에 서면 또 다른 추억이 흑백필름처럼 감긴다. 요절시인 기형도를 비롯해 대중음악이나 성적소수자 집결지 얘기와 맞닿은 옛 파고다극장이 고개를 내민다.

종로 뒷골목 여행은 섬으로 떠나는 여행과 같다. 낙원동, 익선동, 돈의동 등 올망졸망한 법정동으로 엮인 공간은 빌딩 속 섬이다. 또 개발의 속도를 비켜간 탓에 추억의 흔적도 역력하다. 여기다 옛것과 새것이 섞인, 다소 부자연스럽고 어수선한 조합도 챙겨볼 만하다. 주머니 가벼워도 푸짐한 탑골공원 국밥에, 밥값 생각하면 배보다 배꼽이 훨씬 큰 한옥길 디저트와 커피가 한길 건너 가득하다.

◆익선동 한옥마을과 한옥길

감각적인 카페나 레스토랑이 들어선 익선동 한옥마을. /사진=박정웅 기자

서북광장에서 어르신문화거리인 ‘락희거리’를 지나면 젊은이들의 공간인 익선동 한옥길이다. 락희(樂喜)는 ‘럭키’(lucky)를 음차했다. 탑골공원의 주요 방문객인 어르신들의 여가문화와 편의 개선 차원에서 서울시가 2016년 탑골공원 북문부터 낙원상가 일대를 락희거리로 조성했다.

락희거리에서 낙원상가쪽 아구찜거리를 건너면 오른쪽 뒷편이 익선동 한옥마을이다. /사진=박정웅 기자

락희거리와 익선동 한옥길은 지척이다. 아구찜거리 방향으로 길만 건너면 된다. 숙박업소와 음식점 뒤로 땅 꺼진 듯 낮은 기와지붕이 어깨를 맞댄 데가 익선동 한옥마을이다.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한옥마을로 북촌보다 앞선다. 독립유공자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부동산 개발업자인 정세권이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 개발한 도시형 한옥 주거단지다. 현재 100여채가 남았는데 전통적인 한옥의 특성을 살리면서 생활공간을 편리하게 재구성한 일종의 개량한옥이다.

지난 18일 저녁 주말을 맞아 익선동 갈매기살 골목을 메운 시민들. /사진=박정웅 기자

익선동 한옥마을은 ‘핫’하다. ‘연트럴’ 또는 ‘샤로수길’의 감각적인 맛집들이 ‘북촌’ 또는 ‘서촌’의 한옥 캔버스에 포진한 형상이다. 특히 주말이면 어깨를 접어야 할 정도로 비좁은 한옥길이 인파로 미어터진다. ‘셀피’는 한옥길과 맛집 안팎을 가리지 않는다. 게다가 중국어, 일본어, 영어 등 갖은 외국어까지 왁자지껄 골목을 메운다.

자칫 오버투어리즘과 젠트리피케이션이 염려될 정도. 또한 단골만 안다는 한옥마을 끄트머리, 칼국수집과 갈매기살 골목에도 정 대신 셀피를 담으려는 인파가 쏟아진다. 감각 일색의 코드가 문화의 자리를 꿰찬 익선동 한옥길은 그래서 날로 더 뜨겁다.

◆오진암과 화류계 전성시대

지난 17일 익선동 한옥길 모습. 평일 오후 시간대에도 이곳을 찾는 시민들이 많다. /사진=박정웅 기자

익선동의 맛집들은 독특한 디자인을 뽐낸다. 기와를 인 서까래가 뼈대를 앙상히 드러내거나 트인 벽면에 홀로 남은 기둥이 위태롭다. 마당에 펼쳐진 차양은 서양식 연회장을 방불케 한다. 공통점은 기와지붕을 보존한 것인데 개량한옥의 내림마루 곡선은 전통한옥에 비할 수 없을 만큼 무디다. 하지만 그리다 만 듯한 유선에서 맵시 고운 버선과 잇댄 얘기를 빼놓을 수 없다.

익선동을 비롯해 낙원동, 돈의동 일대는 생활 터전에서 유흥공간으로 변한 곳이다. ‘요정’과 ‘텍사스촌’, ‘종삼’(종로삼가)이 한국 근현대사를 관통했다. 특히 한옥마을을 낀 익선동은 한복집, 점집, 악기집이 많았다. 이유는 오진암을 비롯한 3대요정(삼청각·대원각)과 기생집이 주변에 널려서다. 지금은 몇 안 남은 한복집이나 점집, 그리고 요정에서 이름을 바꾼 고급 한정식집에서 옛 자취를 더듬을 뿐이다.

익선동 오진암의 자리에 들어선 대형호텔이 오진암의 역사를 기록해뒀다. /사진=박정웅 기자

오진암은 1970∼80년대 요정정치의 중심으로 7·4 남북공동성명을 논의하는 장이기도 했다. 1972년 이후락 중앙정보부장과 북한의 박성철 제2부수상이 만난 곳으로 유명하다. 요정정치는 한국 정치사의 어두운 단면이다. 은밀한 대화와 거금이 오가는 속성상 요정은 정치인이나 사업가, 정치깡패의 뒷방이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또한 오진암은 외래관광객을 위한 기생관광의 오명까지 뒤집어썼다. 결국 2010년 부암동 무계원으로 통합 이전하면서 서울시 등록 음식점 1호인 오진암의 익선동 영욕은 끝을 맺었다. 그 자리에 들어선 대형호텔은 오진암의 뒤안길을 글과 사진으로 남겨놨다.

영화 <해어화>가 떠오르는 곳, ‘익선별곡’(益善別曲)은 예나 지금이나 감각적이다. 익선별곡의 누이는 시인 백석의 연인 ‘자야’나 이상의 ‘금홍’에 가깝다. 인파를 뒤로 하고 고개를 돌리면 숙박업소와 유흥주점이 불야성을 이룬다.

탑골공원 독립선언문 기념 조형물. 3·1운동 100주년을 맞은 내년 이 탑골공원과 삼일대로 일대가 시민공간으로 변모한다. /사진=박정웅 기자

한편 3·1운동 100주년을 맞은 내년 종로 뒷골목 여행이 새 전기를 맞을 전망이다. 익선동과 낙원동을 낀 삼일대로 일대가 탈바꿈하기 때문이다. 3·1운동 연관 장소의 역사성을 복원하고 시민 쉼터를 조성하는 서울시의 ‘3·1 시민공간’이 그것이다. 주요 거점은 독립선언배부터, 천도교 중앙대교당, 서북학회터, 태화관터, 탑골공원 후문광장, 낙원상가 5층 옥상 등이다.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공간이 조성되면 세대를 아우르는 종로여행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55호(2018년 8월29일~9월4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박정웅 parkjo@mt.co.kr

공공 및 민간정책, 여행, 레저스포츠 등을 소개합니다.

이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
  • 0%
  • 0%


  • 코스피 : 2308.98상승 5.97 09/18
  • 코스닥 : 831.85상승 2.97 09/18
  • 원달러 : 1123.20하락 3.4 09/18
  • 두바이유 : 78.05하락 0.04 09/18
  • 금 : 76.43상승 0.12 09/18
  • image
  • image
  • image
  • image
  • image

커버스토리

정기구독신청 독자의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