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나 키우라고? 남성의 나라에 사는 '여자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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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세대가 우리 사회의 약자라면 대한민국 모든 여성은 최약자다. 여성의 경제·사회활동이 남성과 대등해졌음에도 사회 곳곳의 차별과 폭력은 여전히 존재한다. 결혼한 여성의 삶은 또 어떤가.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부모나 동료, 심지어 국가까지 나서 “출산하라”고 강요하지만 막상 아이를 갖고 나면 ‘집에서 애나 키우는’ 무능력한 사람으로 평가절하된다. 허울뿐인 성평등시대를 사는 여성청년, 그리고 경력단절여성…. 2030세대 여성은 공정한 대한민국을 언제쯤 볼 수 있을까.


[혼돈의 2030, 길을 찾아라-여성이라는 이유] ② 아직도 여성은 ‘열등한 존재’

“선배처럼 안 살아.” 수십년 동안 ‘딸’들이 되뇌었던 말, “엄마처럼 안 살아”가 요즘 직장에서는 이렇게 쓰인다. 남부럽지 않은 스펙은 기본. 스타킹 올이 나간 줄도 모른 채 10㎝ 하이힐을 신고도 달릴 수 있는 몸과 마음가짐으로 살아가지만 그들이 마주한 사회는 그리 녹록지 않다. 아직도 사회 곳곳에서 그들은 ‘김양’ 혹은 ‘미스김’이거나 성적 농담의 대상이 된다. 세상이 아무리 바뀌었다고 해도 우리 시대 일하는 여성은 여전히 그렇다. 여기 세명의 '여자 사람'이 있다.

◆ 밥 차려주는 미스김, 여자 그리고 엄마

방송 PD라는 꿈을 안고 한 외주제작사에 들어간 김미영씨(28·가명)는 모든 게 낯설고 불편하다. “아직도 방송계에는 남성우월주의와 보수문화가 많이 남아있는 듯하다. 여권이 많이 신장됐다고 해도 일부일 뿐”이라고 했다. 그는 “그 몸으로 밤샐 수 있겠어?”, “운전 잘해?”, “음식 좀 만들 줄 알아?”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남자들에겐 하지 않을 질문들이죠. 회식은 꼭 참석해야 한다거나 술 빼면 안되는 자리에선 여전히 억지로 술을 먹기도 해요. 심지어 협력업체 사장과 함께한 술자리에선 ‘김양이 따라줘야 술맛이 나지’라는 소리까지 들었어요. 그럴 때마다 이 일에 회의감이 들어요.”

오아름씨(31·가명)는 대기업 5년차 직장인이다. 오씨는 일상 곳곳에서 성차별을 느낀다. 스펙, 경력 뭐 하나 빠질 게 없는 오씨지만 중요한 일에선 배제되는 느낌이다.

“같은 팀에 있는 남자 후배가 더 인정받는 느낌이에요. 업무 배정에서도 그 친구가 더 중요한 부분을 담당하고요. 경력이나 뭐나 당연히 제가 해야 할 일이 맞는데도 말이죠. 퇴사율은 남자들이 더 높고 일에 대한 적응력이나 성과에서 여자들이 더 좋은 평가를 받아도 상사는 ‘여자들은 다루기 힘들다’느니, ‘어차피 결혼하고 애 낳으면 끝이다’느니 얘기해요.”

직간접적인 성희롱도 흔한 일이라고 했다. 국가가 법으로 기업이 연 1회 60분 이상 성희롱 예방교육을 하도록 강제했지만 사람들 대부분은 인식 개선보다는 자리채우기 식의 강의만 들을 뿐이다.

“그냥 시간때우기용이죠. 교육 자료도 인식을 바꿔야 한다는 데 초점이 있는 게 아니라 ‘여자가 몸가짐을 바르게 해라. 빈틈을 주지 말라’는 식의 어처구니없는 내용들이에요. 한번은 남자 상사가 제 옷차림과 몸매를 두고 성적인 농담을 해서 너무 불쾌했는데 선배 여직원에게 고민을 털어 놓았더니 그 선배 반응이 더 놀라웠어요. ‘우리 때는 더한 것도 참아냈다’면서 마치 영웅담인양 본인 일화를 털어놓는 거예요. 그러면서 저보고 예민하게 굴면 모두가 피곤하단 식으로 말하는데 진짜 '여자의 적은 여자다' 싶었어요. 저는 선배들이 살아온 것처럼 살고 싶지 않아요. 그게 당연해지는 순간 희생이란 이름으로 후배에게 되물림될 게 뻔하니까요.”

교육 수준이 높아지고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면서 성차별·불평등 문제를 개선하려는 노력은 과거보다 많아졌다. 하지만 의식과 무의식에, 문화와 제도 전반에 박힌 성차별적 사고는 여전히 여성을 소수자, 비주류로 내몬다. 특히 경력단절 여성, 워킹맘의 경우는 더하다.

둘째아이 출산과 함께 퇴사해 2년간의 경력 단절 후 재취업에 성공한 박유경씨(39·가명)는 1년 365일 성차별에 노출된 채 일한다. 박씨가 다시 직장에 나가 직속 상사에게 들었던 첫 사적인 대화가 “남편과 애들 밥은 누가 해주냐”였다고 했다.

“상사만 그랬냐구요? 퇴근이 늦은 날에는 동료, 후배, 심지어 택시기사 아저씨까지 저희 식구들 밥걱정을 하더라구요. 아, 아직도 ‘엄마=밥 차리는 여자’라는 공식이 남아있는 사회구나 싶었죠. 아이 키우는 엄마라고 일을 소홀히 하기 싫어 더 열심히 뛰었어요. 아이들이 웬만큼 아프지 않고는 일이 더 중요했던 매정한 엄마였는데 지난해 승진인사에서 물을 먹고 나니 뒤통수를 한대 퍽 맞은 기분이더라구요.”

박씨는 상사로부터 “아무래도 두 아이를 둔 엄마라 어쩔 수 없었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 그는 재취업 연봉협상 시 임금차별로 후배보다도 더 낮은 연봉을 받으며 일하고 있었다는 사실도 뒤늦게 알게 됐다.

“대한민국에서 엄마로 산다는 것, 그것도 일과 가정의 양립이 제가 생각한 것만큼 만만한 게 아니더라구요. 저만 열심히 살면 다 된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일도 가정도 뭐 하나 제대로 못 지키는 무능한 엄마였어요. ‘하나를 포기하지 않고, 위태롭게 둘을 끌고 갈 가치가 있나?’라는 질문을 계속 되뇌었던 것 같아요. 그럴 때마다 선배들은 위로랍시고 ‘그냥 집에서 맘 편히 애나 봐. 애는 엄마가 키워야지’ 하더라구요. 일은 하고 싶은데 사회가 요구하는 엄마, 여성상이 저를 자꾸 회사 밖으로 밀어내는 것 같아요.”

◆ 직장내 성차별, 그 불편함에 대해


전문가들은 직장 내 성차별을 뿌리뽑기 위해 남녀고용평등법에서 규제하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은밀한 차별’이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금융권 여성 비율이 높아지자 합격자 비율을 정해놓고 점수를 조작한 채용 성차별이 뒤늦게 드러난 게 하나의 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2017년 일·가정 양립 근로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직장 내 성차별 경험률이 남성(24.8%)보다 여성(57.4%)이 2배 이상 높았다. 승진 시 성차별 경험률은 여성 50.0%, 남성 26.5%였고 취업 과정 성차별 경험도 여성(46.4%)이 남성(22.0%)보다 2배 이상 많았다. 보상이나 임금에 대한 성차별도 남성(24.8%)보다 여성(57.4%)이 두배 이상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영옥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결국 기업문화가 바뀌어야 하는 문제”라며 “기업의 인사팀이 법과 절차를 따져 남녀 모두에게 투명한 정보를 제공해야 공정성 시비를 줄일 수 있다”고 했다. 여성가족부 한 관계자는 “무심코 행해지는 성차별의 심각성과 문제점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커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과연 대한민국에서 남과 여는 같은 ‘국민’인가. 강남순 미국 텍사스크리스천대 브라이트신학대학원 교수의 글이다.

“여성이 공적 영역에서 어떠한 일을 하든 ‘어쨌든 생물학적 여자’라는 시선은 이미 여성혐오사상에 근거한 성차별주의적 의식이다. 여성은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이며 남성을 유혹하는 ‘위험한 존재’라는 인식에서 출발하는 여성혐오사상은 여성차별로 이어진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55호(2018년 8월29일~9월4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김설아 sasa7088@mt.co.kr

머니S 산업1팀 유통 담당 기자. 식음료, 주류, 패션, 뷰티, 가구 등을 아우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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