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브랜드 히스토리] ④ 끊임없는 도전으로 혁신 이룬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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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토요타 AA형 승용차 /사진=토요타
일본 자동차회사는 유럽이나 미국에 비해 출발이 한걸음 늦은 편이다. 그럼에도 세계시장을 장악한 배경은 끊임없는 도전과 혁신정신이 뒷받침된 덕분이다. 멋과 감성보다는 철저히 본연의 기능성에 충실한 제품을 대량으로 만들며 생산단가를 낮춘 것도 성공 요인으로 꼽힌다.

하지만 지금은 유럽이나 미국의 자동차회사와 별반 다를 바 없다. 글로벌시장에서 통할 만한, 일정부분 표준화된 제품을 바탕으로 현지화를 통해 개성을 드러낼 뿐이다.

◆토요타

토요타자동차주식회사는 1937년 설립됐다. 창업자인 토요타 기이치로는 자동차시대가 올 것을 확신했다. 그가 35세 때인 1929년 '일본의 발명왕'이자 그의 아버지인 토요다 사키치가 발명한 자동직기 특허권을 영국 회사인 플랫 브라더스에 매각했고 이렇게 마련된 자금으로 자동차사업을 준비했다.

1936년 일본인의 손으로 만든 토요타의 첫 차 'AA형'이 나왔고 다음해인 1937년 자동직기의 자동차 사업부를 분리, 토요타자동차가 설립됐다. 1944년 토요타자동차는 군수공장으로 지정돼 트럭을 생산했고 패전 뒤 심각한 디플레이션으로 회사가 어려움을 겪었음에도 인원 감축을 하지 않은 것은 유명한 일화다.

그러다가 1950년 토요타는 파업을 맞는다. 당시 노사는 이를 계기로 상호 신뢰와 존중의 원칙을 세웠고 이후 토요타의 생산 표준화인 ‘토요타 프로덕션 시스템’으로 정착돼 세계적으로 큰 관심을 끌었다.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 만든다는 적기생산시스템(JIT)이 그것.

토요타는 설립 이래 자동차를 통해 우리 사회가 더 번영할 수 있는 방향을 추구해왔고 올해로 81주년을 맞았다.
1세대 1990년형 LS 400 /사진=렉서스

◆렉서스

렉서스는 유럽이나 미국의 프리미엄브랜드와 출발이 약간 다르다. 그동안의 통념은 전통과 유산 없이 프리미엄브랜드가 만들어질 수 없다는 것이었지만 렉서스는 미국 고급차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두며 이런 인식을 바꾼 사례로 꼽힌다. 토요타의 고급브랜드 렉서스가 혼다의 어큐라, 닛산의 인피니티와 함께 미국에 새로운 프리미엄카시장을 만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57년 토요펫 크라운으로 미국시장에 첫 진출했던 토요타는 1975년 폭스바겐을 제치고 미국 수입차 시장 1위 자리를 거머쥐었다. 그 후 10년이 지나면서도 성장이 지속됐지만 베트남전쟁 후 시장이 바뀌는 것을 간파, 베이비붐 세대가 점차 나이가 들고 부유해지는 점에 주목했다.

이에 미국인이 타는 고급차를 개발하기 위해 미국의 독특한 ‘럭셔리’ 문화를 이해하려고 1985년 토요타의 디자이너와 엔지니어 대표단 20명이 중요한 임무를 맡아 미국으로 향했다. 그들의 역할은 단지 ‘미국 문화에 흠뻑 빠지는 일’이었고 ‘미국 럭셔리 소비자의 취향은 근본적으로는 유러피안이면서 그보다는 더 따뜻하고 밝다’는 결론을 냈다.

토요타는 별도의 사업부문이 필요하다고 느껴 토요타와의 연관성을 두지 않는 새로운 고급브랜드로서 자리하도록 만든 브랜드가 ‘렉서스’다. 또 당시 프리미엄브랜드의 약점인 ‘내구품질’과 ‘서비스’에 집중하며 큰 성공을 거뒀다.
닛산 엠블럼 /사진=닛산

◆닛산자동차

닛산자동차는 1933년에 설립돼 80년 역사를 지닌 글로벌 자동차 메이커다. 전세계시장에서 60여종 이상의 모델이 돌아다니는 중이고 디자인과 설계에서부터 제조 및 판매, 유통과 마케팅은 물론 소비자와 기업을 대상으로 한 자동차 금융 사업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을 이어가는 회사다.

닛산의 비전은 ‘사회 구성원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다. 이를 바탕으로 다양성을 존중하는 문화를 확산시키고 있다. 1999년 닛산은 ‘르노-닛산 얼라이언스’를 통해 다국적기업으로 다시 태어났다. 43.4%의 지분을 보유한 대주주 르노와 3.1%의 지분을 보유한 다임러의 협력관계를 토대로 문화와 기술공유를 통해 글로벌한 기업정신과 지속가능한 성장을 추구한다.

나아가 2016년 10월에는 르노-닛산 얼라이언스가 미쓰비시자동차 주식의 34%를 인수하며 최대주주로 등극했다. 이를 통해 ‘르노-닛산-미쓰비시’는 연간 판매량이 1000만대에 이르는 세계에서 가장 큰 자동차 합작회사로 거듭났다.

현재 전세계 임원 중 50%가 다국적 인재들로 구성되어 있을 정도로 다양성을 바탕으로 한 기업문화가 정착됐다.
인피니티 Q50 /사진=인피니티

◆인피니티

인피니티는 1987년 7월 탄생했다. ‘Infinity’(무한대)의 Y를 I로 바꿔 철자를 차용한 것이다. 이는 ‘고객이 원하는 최고의 안락함과 안정성, 고급스러움을 만족시킬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인피니티는 고객들이 ‘임파워 더 드라이브’를 직접 느끼고 경험하도록 성능, 안전성, 디자인 등 모든 부분에서 최고의 가치를 선사하고 있다. 이를 통해 인간중심적이며(Human-centric), 대담하고(Daring), 진취적인(Forward) 브랜드로 성장하려는 목표를 세웠다.

인피니티는 1985년 닛산 내부의 비밀부서에서 시작됐다. 새로운 럭셔리브랜드를 위한 이 부서는 제품 외에도 구매와 오너십 프로세스까지를 아우르는 브랜드라는 비전을 가지고 있었다. 이를 통해 자동차를 단순한 제품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넘어 구매부터 서비스, 소유에 이르는 전 과정을 아우르는 보다 넓은 관점에서 접근한 것이 ‘운전자의 가치 있는 경험’을 강조한 새로운 고성능 럭셔리카 브랜드 인피니티다.
혼다 NSX /사진=혼다

◆혼다

혼다는 ‘모빌리티’ 전문기업이다. 소형 동력 엔진부터 자동차, 모터사이클은 물론 스포츠카와 범용엔진, 제트기엔진, 직립보행 휴머노이드 로봇에 이르기까지 끊임없는 기술개발을 통해 다양한 시장을 겨냥한 제품을 생산 중이다.

혼다 모빌리티의 역사는 194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첫 양산형 모터사이클 ‘드림 타입D’의 생산을 시작했고 1963년 벨기에에서 첫 해외생산을 시작했다. 이후 ‘수요가 있는 곳에서 생산한다’라는 기본 이념 아래 세계 각지에서 현지생산을 이어왔다. 그 결과 모터사이클 생산을 시작한 이래 65년 만인 2014년 11월 모터사이클 세계 생산 누적 3억대를 달성했다.

1963년부터는 자동차시장에 진입했다. 이후 경차부터 세단, 왜건, 미니밴, SUV 등 다양한 라인업을 구축하며 ‘기술의 혼다’라는 별명이 생겼다. 2015년에는 슈퍼카 NSX와 시빅 타입R에 이어 혼다 젯(Honda JET)이라는 비행기도 공개했다.

 

박찬규 star@mt.co.kr

산업2팀 박찬규 기자입니다. 자동차와 항공, 해운, 조선, 물류, 철강 등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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