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칼럼] 독립영화는 왜 '독립' 못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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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미지투데이


올해는 자주적인 정부수립에 의한 ‘독립국가’ 역사가 시작된 지 70년, 한국독립영화협회가 창립된 지 20년이 된 해다. 1945년 8월15일(광복절) 일본제국으로부터 해방된 후 3년간 미군정 아래 있다가 1948년 5월10일 제헌국회를 구성할 국회의원을 선출하기 위한 최초의 민주적 선거를 실시했다. 독립운동가들의 노력으로 수립된 정부는 1948년 8월15일 세계만방을 향해 독립을 선포했다.

한편 순수함과 열정을 자산으로 주머닛돈을 털어 영화를 만들던 독립영화인들은 부산영화제(1997년)에서 검열 철폐와 표현의 자유 보장 등을 외치며 거리시위를 벌였으며 1998년 9월18일 한국독립영화협회를 설립했다. 창립선언문에서는 “화려하고 기름진 화면보다 치열하고 정직한 장면으로 새로운 영상언어를 만들기 위해 상투적 영화공식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다”고 밝혔다.

독립영화는 상업영화의 체계와 제작·배급·홍보를 통제하는 제작사의 관행에서 벗어난 영화라는 의미에서 '인디영화'(Independent Film)로 불리기도 한다. 자본의 논리에서 벗어날 때는 다양한 예술적 시도와 작가주의 정신, 창의성도 가능해진다. 지난달 18일에는 영화단체와 전국 독립영화인들이 한국 최초의 독립영화 전용상영관인 ‘인디스페이스’에 모여 20주년 행사를 치렀다.

◆추석연휴 독립영화 개봉작

이번 추석연휴에 볼 수 있었던 저예산 독립영화로는 <죄 많은 소녀>, <살아남은 아이>, <어른도감>, <봄이 가도> 등이 있다. <죄 많은 소녀>는 부산영화제에서 뉴 커런츠상(김독 김의석)과 올해의 배우상(전여빈)을 수상했으며 세계 3대 판타스틱영화제인 시체스국제판타스틱영화제(51회)의 경쟁부문 뉴비전에 공식 초청됐다.

이 영화는 갑자기 실종된 경민(전소니)과 마지막까지 함께 있었던 영희(전여빈)가 가해자로 지목돼 학교를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면서 시작된다. 아들이 사라진 이유를 알아내려는 엄마(서영화)가 영희를 압박하던 중 실종된 경민이 강에서 유서 없이 시신으로 발견된다. 중후반에는 '반전의 소재'를 던지며 흥미를 더한다. 다음달에는 프랑스에서도 개봉될 예정이며 해외 15개국 수출이 확정됐다.

<살아남은 아이>는 ‘하나뿐인 아들이 물에 빠진 친구를 구하고 숨진 뒤 부모는 살아남은 친구를 어떻게 대할 수 있을까’라는 문제를 제시한다. 죽은 아들의 친구 기현(성유빈)에게 집 고치는 법을 가르치며 마음을 열어가던 성철(최무성)과 미숙(김여진) 부부는 어느 날 아들의 죽음에 얽힌 충격적인 진실을 알게 된다. 긴장감이 흐르면서 복잡한 감정변화가 세밀하게 표현된다. 올 초 독일 베를린영화제, 지난해 부산영화제에 초청돼 부부의 심리를 잘 묘사한 수작으로 호평을 받았다.

<어른도감>에는 ‘어른 같은 아이’와 ‘아이 같은 어른’이 등장한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관객과 평단의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다. 엄마는 오래전 집을 나갔고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면서 경언(이재인)은 혼자가 됐다. 어릴 적 가족과 크게 싸우고 집을 나갔던 생면부지의 삼촌 재민(엄태구)이 장례식장에 느닷없이 나타난다. 경언 앞에 남겨진 사망보험금을 모두 잃은 재민은 경언과 함께 약사를 상대로 발칙한 사기극을 벌인다. 유쾌한 코미디가 전개되면서 각자의 마음속 상처와 외로움이 드러난다. “누군가에게 시간을 들인다는 건, 다신 돌려받지 못할 삶의 일부를 주는 거야”라는 명대사가 나온다.

<봄이 가도>에는 상실이 주제인 3편의 에피소드가 들어있다. 사고로 세상을 떠난 딸의 죽음을 믿지 못하는 엄마, 운이 좋아 살아남았지만 더 많은 사람을 살리지 못했다는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트럭운전사,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행복했던 기억을 간직한 채 힘겹게 살아가는 남자가 나온다.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내고 삶의 의미를 잃은 세 사람이 사소한 기적을 경험한 뒤 일상성을 조금씩 회복해가는 과정이 차분하게 진행된다. 인간 내면을 성찰하는 의식이 예리하다는 평을 받는다.


/사진제공=각 사

◆악조건에서도 높아진 수준

추석 이전에 개봉한 이들 작품은 일부 극장에서 추석연휴까지 상영됐다. 예술영화관은 연간 50일 이상 독립영화를 의무상영해야 하는 스크린쿼터제가 있는데 극장가 대목인 7~8월과 추석연휴 사이에 개봉이 몰리는 편이다. 이 시기를 영화계에서는 ‘스크린쿼터 시즌’이라고 부른다.

이에 사회 각계각층 인사 160여명은 지난해 7월19일 멀티플렉스 영화관에서도 독립영화를 일정 일수 이상 의무상영하는 ‘독립영화 스크린쿼터제’ 실시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국민은 가까운 상영관에서 우리나라 독립영화를 자유롭게 볼 권리가 있다. 하지만 거대자본 논리로 감동적이고 대중적인 독립영화를 볼 기회가 희박하다. 정부 지원을 받는 독립예술영화관이 있지만 매달 20편 이상 나오는 독립영화 상영에는 턱없이 부족해 관람을 원하는 국민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성명서에서 주장했다.

녹록지 않은 환경 속에서도 독립영화 수준은 꾸준히 높아졌고 2009년 1월에는 <똥파리>가 로테르담국제영화제 최고상인 타이거상을 수상했다. 영화제에서 받은 상은 총 38개에 달한다. 가족에게 상처를 받으며 성장한 남자가 여고생을 만나면서 아픔을 받아들이고 가족에 화해를 청하는 이야기를 현실적으로 다뤄 우수한 평가를 받았다. 양익준 감독은 1700만원짜리 전셋집에 살다가 <똥파리>(관객 12만3046명)의 성공으로 1억5000만원짜리 전셋집에 살게 됐다고 TV방송에서 밝혔다. 제작비는 아버지에게 3500만원을 빌려 조달했으며 수익금으로 바로 아버지께 돈을 갚았다고 한다.

2011년에는 탈북자들의 암울한 현실을 탈출구 없는 일상으로 써내려간 <무산일기>가 로테르담국제영화제 타이거상, 페사로영화제와 제칼로국제영화제의 대상을 수상했다. 2014년에는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친구를 잃고 쫓기듯 전학을 간 소녀가 아픔을 이겨내고 세상 밖으로 나가려는 이야기를 다룬 <한공주>가 로테르담국제영화제 타이거상, 노브스 비전스 극영화부문 최우수상, 마라케시국제영화제 경쟁부문 대상인 금별상 등 많은 수상 기록을 세웠다.

흥행 면에서 2003년 <동승>이 당시 독립영화 제작자본을 띤 영화 중 가장 많은 관객인 34만2586명을 모았다. 아기스님, 젊은스님, 노스님 등 세명의 스님을 통해 세대별로 느껴지는 수행과정의 아픔을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2009년 <워낭소리>는 무려 296만2897명의 관객을 동원해 국내 독립영화 사상 유례 없는 흥행 기록을 세웠다. 1억원의 제작비로 192억원 매출액을 달성했다. 산골 할아버지와 나이 든 소의 마지막 몇년 생활을 담은 다큐멘터리로 소에게 먹이로 주는 농작물에는 농약도 치지 않는 할아버지와 그의 곁에서 40년이나 묵묵히 살아온 소의 짙은 우정이 관객에게 전해진다.

이후 2014년 11월에 개봉한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워낭소리> 기록을 넘어선 전국 480만 관객을 돌파해 역대 독립영화 흥행 1위 역사를 새롭게 썼다. KBS 인간극장에 출연했던 고 조병만 할아버지와 강계열 할머니 부부의 노년의 사랑을 그린 다큐영화로 잔잔한 감동을 준다. 순제작비 1억2000만원에 마케팅비와 배급비를 포함한 총 제작비가 3억7000만원인데 매출액은 373억5445만원에 달했다.

독립영화는 재미없고 지루하고 어렵다는 선입견을 가진 사람들이 있지만 스토리와 예술성이 뛰어나고 감동을 주는 독립영화도 꾸준히 제작되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자금 부족 때문에 홍보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상영관과 상영일수가 적다보니 아예 관심을 갖지 않는 경우도 많다. ‘멀티플렉스관 독립영화 스크린쿼터제’와 같은 제도적 뒷받침이 마련되면 좀 더 많은 사람이 관람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테고 한국 독립영화가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높여가는데 큰 힘이 될 것이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61호(2018년 10월10~16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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