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익만점 청년, 칠레 거리서 믹스커피 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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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김석규씨

많은 이가 청년의 꿈은 사라진 시대라고 말한다. 청년실업, 창업실패, 결혼·출산 비용부담, 재테크환경 악화 등으로 청년은 희망을 잃은지 오래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특별한 도전에 나선 청년들이 있다. 화려한 스펙이 아니어도 성공을 향한 열망 하나를 빈 손에 움켜쥐고 창업에 뛰어든 청년, 해외로 발길을 돌려 취업에 성공한 청년, 화려한 스펙을 버리고 무작정 떠난 이방의 땅에서 삶의 진정한 행복을 찾은 청년.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그리고 꿈을 찾아주는 청년의 이야기, 청년창업을 돕는 멘토가 제시하는 해결방안을 들어본다.<편집자주>

[혼돈의 2030, 길을 찾아라-꿈을 찾는 청년들] ③ 무작정 남미로 떠나다

“남미요? 그냥 무작정 갔어요. 하지만 목적은 뚜렷했습니다. 더 많은 것을 보고 배우면 제 꿈인 해외영업에 한걸음 다가설 수 있다고 판단했거든요.”

국내 A제약사 해외영업을 담당하는 김석규씨(31)는 화려한 스펙을 자랑한다. 국내 유수의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그는 해외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덕분에 영어를 원어민 수준으로 구사한다. 토익 등 영어 관련 시험은 치르는 족족 ‘만점’이다. 대학생활에서도 동아리 회장을 맡는 등 교내외활동에서도 부족함이 없었다. 이만한 스펙이면 '골라서' 취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김씨는 졸업을 앞둔 2012년 초 단출한 짐을 꾸려 남미로 향했다. 남미에는 어떤 연고도 없었다. 물론 현지 공용어인 스페인어도 몰랐다.

그는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더 경쟁력 있는 사람이 돼야겠다고 생각했다”며 “가만히 앉아서 사회에 대해 불만을 늘어놓는 것보다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남미행 티켓을 구입했다”고 말했다.

◆혈혈단신 남미로 가다

대학시절 김씨는 뛰어난 영어실력으로 관심을 받았다. 성적도 우수해 바늘구멍 같은 취업시장을 무난히 통과할 인물로 주변의 부러움을 샀다. 하지만 그는 갈수록 좁아지는 취업환경에 불안감을 느꼈다.

그는 선배들이 한명씩 학교를 떠나고 졸업이 다가오면서 압박을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너는 걱정없잖아’라는 주변의 시선도 부담으로 작용했다. 문득 자신을 돌아보니 부족한 점 투성이였다. 영어 성적표만 바라볼 수는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김씨는 “일단 남들과 다른 나만의 무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밑천 마련을 위해서 영어과외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고 전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해외를 많이 돌아다녀서 해외영업에 관심이 많았다. 해외영업을 하려면 일단 언어가 돼야 하는데 스페인어가 제일 유용하다고 생각했다. 6개월간 과외로 번 돈을 들고 칠레로 향했는데 도착하자마자 식사와 주거가 해결되는 스페인어 기숙학원에 등록했다.

왜 하필 남미였을까. 중국어나 영어권으로 취업을 노릴 수 있지 않았을까. 김씨는 “잘 몰랐는데 남미에서 사용되는 스페인어가 세계 각국에서 많이 사용되더라”며 “남미에서도 브라질을 제외한 모든 국가가 스페인어를 사용하고 미국에서도 히스패닉(스페인어를 사용하는 중남미계 미국 이주민)은 여전히 스페인어를 사용한다”고 밝혔다.

/사진=김석규씨

그런 언어의 틈새에 집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어는 한문을 몰라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라는 판단을 내리고 일찌감치 생각을 접었다.

“지금 생각하면 아찔한 상황도 있었습니다. 칠레에 도착한 지 6개월 만에 돈을 다 썼습니다. 흥청망청 쓴 것도 아닌데 말이에요. 집에 손을 벌릴 수는 없었습니다. 마지막에는 ‘엠빠나다’라는 스페인식 만두 하나로 하루 끼니를 해결했어요.”

‘창피하지만 길거리 장사를 해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지에서 알게 된 한국 이민자의 도움으로 노란 믹스커피를 팔았다. 현지 돈으로 60페소 하는 아메리카노를 보고 믹스커피 가격을 50페소로 정했다. 하지만 부끄러움 많은 동양인의 커피를 사먹는 사람은 없었다.

“점점 통장 잔고가 바닥을 드러내자 살기 위해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사람들이 몰리더라고요. 그때 자신감을 크게 얻었습니다. 아, 제가 탄 믹스커피가 맛있던 것도 한몫했죠. 커피 하나는 정말 잘 타거든요.”

◆“뭐든 할 수 있는 때가 있어요”

고비를 넘긴 김씨는 기숙학원 과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갈 것인지, 남미에서 일을 할 것인지 고민했다. 결정은 쉬웠다. 이대로 돌아가기엔 제대로 해본 것이 없다고 생각한 그는 현지 코트라(KOTRA)의 도움으로 한국기업의 해외법인에 이력서와 메일을 보냈다. 다행히 기업 관계자들이 그의 용기를 높게 샀고 여러 군데서 채용하겠다며 연락이 왔다.

지금 생각하면 무작정 이력서를 보낸다는 것부터 무모했다. 하지만 그런 무모함이 계속되니 용기, 오기가 생겼다. 결국 가장 많은 일을 배우게 해준다는 B기업의 볼리비아 사업장에서 일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 일을 하면서 남미권의 비즈니스매너, 업무프로세스, 현지 문화 등 많은 것을 배웠다.

그는 “시간이 날 때면 남미 각국을 최대한 많이 여행했다”며 “여행지에서 만난 현지인, 여행객들과 교류하면서 견문을 넓힐 수 있었는데 그 경험이 지금 저의 가장 큰 무기가 됐다”고 말했다.

좋은 시절은 오래 가지 않았다. 현지 생활에 완전히 적응한 김씨에게 대학 학적 만료 통지서가 날아들었다. 통지서의 내용은 ‘더 이상의 휴학은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으니 다음 학기에 복학하라’는 것이었다.

여기서 김씨는 한번 더 변화를 선택했다. “사실 한국으로 돌아오는 것을 두고 많이 갈등했어요. 현지에 적응을 완료했고 최대 고민인 취업도 해결해 안정적인 생활을 누리는데 또 변화를 선택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애초에 남미로 간 목적을 달성했다는 생각이 들어 귀국을 결심하고 2014년 돌아왔습니다.”

김석규씨. /사진=박흥순 기자 @머니S MNB, 식품 외식 유통 · 프랜차이즈 가맹 & 유망 창업 아이템의 모든 것

이역만리 낯선 대륙에서 산전수전을 겪은 김씨는 좁은 국내 취업문을 한번에 통과했다. 해외영업이라는 꿈을 좇아 남미로 떠난 청년은 현재 세계 곳곳을 누비며 자신의 역량을 뽐낸다. 지난 10월 중순에는 스페인으로 6박7일간 출장도 다녀왔다고 귀띔했다.

김씨에게 후배들을 위한 조언을 부탁했다. 그는 “저는 이제 못할 것 같습니다만 여러분은 뭐든지 하세요. 무모한 도전도 때를 놓치면 할 수 없습니다. 젊을 때 고생은 사서 한다는 말이 있잖아요. 저도 싫어하는 말 중 하나였는데 직접 겪고 나니 꿈을 위해서라면 살면서 한번쯤은 고생할 만합니다. 꿈이 힘을 줄 겁니다. 뭐든 도전하세요”라고 강조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63호(2018년 10월24~30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박흥순 soonn@mt.co.kr

<머니S> 산업1팀 IT담당 박흥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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