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광장] 아인슈타인과 내비게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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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수도 직장인이다. 해마다 평가를 받는다. 필자의 소속 대학교에서는 해마다 업적 평가점수가 얼마인지, 소속 학과에서 몇등을 했는지도 알려준다. 대학교수는 연구자와 교육자로서의 정체성을 가진다. 당연하다. 또 대학교 안에는 다양한 위원회가 있고 누군가는 위원회에서 활동하거나 보직을 맡아 대학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 연구와 교육, 봉사 항목으로 교수를 평가하는 큰 틀에 반대할 사람은 없으리라.

과거 필자의 평가결과를 살펴봤다. 평가점수가 높았던 어느 해 교육부문 점수는 125점인데 연구부문 점수는 3084점으로 훨씬 높았다. 당시 필자는 교육부문에서 상위 20%였는데도 연구부문 점수는 무려 25배 정도 더 높다.

이유가 있다. 논문 중에는 딱 한편의 점수가 320점인 것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방식의 평가가 암시하는 것은 분명하다. “교육 열심히 할 필요 없어요. 그럴 시간 있으면 논문 한편 더 쓰세요.” 교육 열심히 하라는 이야기는 논문으로 어림하면, 반푼어치도 없다.

1년마다 정기적으로 진행하는 평가보다 더 중요한 것이 100점 만점의 ‘인사평가’다. 얼마 전 대학에서 메일을 받았다. 앞으로 예를 들어 조교수에서 부교수로 승진하거나 정년보장 심사를 할 때 기존의 연구, 교육, 봉사에 더해 ‘산학협력’에 대한 성과가 새로 포함된다는 내용이었다.

전공을 불문하고 대학교 전체 교수의 평가에 산학협력에 대한 성과를 반영한다는 메일에서는 이번의 변화를 ‘개선’이라 불렀다. 이번의 소위 ‘개선’은 평가항목의 단순한 변경을 넘어 커다란 철학의 차이가 담겼다. 바로 우리 대학교에서 교수가 가진 정체성의 변화를 구성원에게 선언한 셈이다. 이제 교수는 연구자면서 교육자일 뿐 아니라 전공을 불문하고 산업발전의 역군이 됐다.

필자가 소속돼 활동하는 단체인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에서는 우리나라 헌법의 과학관련 항목을 바꾸려는 노력을 활발히 진행했다. 바로 과학의 발전을 국가 경제발전에 종속시키는 헌법 127조 1항에 대한 개정 노력이다.

물리학과 같은 자연과학이든 역사학 등의 인문학이든 여러 기초학문의 진정한 존재 의의는 자연과 인간, 사회에 대한 인류의 ‘이해’를 넓히는 일이다. 이런 이해가 모여 국가의 경제적 수준을 높이고 기업체의 이익을 늘리는 데 기여할 수 있다.

하지만 이해가 아닌 ‘산업발전’을 목적으로 하면 ‘이해’도 어려워진다. 우리가 매일 이용하는 자동차 내비게이터의 작동은 아인슈타인의 상대론에 기반한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에게 내비게이터 개발에 전념하라고 했다면 시공간에 대한 아름다운 이론은 만들어질 수 없었으리라. 이번 인사 평가항목 변경은 개선이 아니라 개악이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67호(2018년 11월21~27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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