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웅의 여행톡] 소주에 다낭에… '두 번' 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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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어난 경관 속에 아픈 이야기가 저며든 곳
챙길 게 많은 베트남 중부 다낭여행


다낭에서 후에로 향하는 하이반로드에서 만난 이국적인 랑꼬해변. /사진=박정웅 기자

눈치가 없는 까닭일까. 남북 길이는 1650㎞, 해안선은 무려 3444㎞. 여리고 가는 긴긴 허리에 칭칭 둘렀을 법한 증오는 모르겠다. 북위 17도, 전쟁 전 남북을 갈랐던 격전장 하이반 고개에서 베트남 남중국해는 눈부셨다. 호이안 페리는 한국 소주와 트로트에 잔뜩 취했다. 원혼은커녕 후에의 밤은 휘영청 밝았다. 아오자이 차림의 라이따이한의 미소는 곱다.

사진 명소로 꼽히는 다낭 대성당. 일명 핑크성당으로 불린다. /사진=박정웅 기자

베트남 중부 다낭은 한국인의 해외여행 명소다. 다낭을 중심으로 남쪽 호이안과 북쪽 후에를 잇는 삼각벨트를 한국인 여행객이 감싼다. 전체 여행객의 7~8할을 차지할 정도로 세 도시를 한국인이 먹여 살린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한국인이 즐겨 찾는 이곳 식당이나 호텔 앞 풍광이 엇비슷하다. 1000원짜리 지폐 10장을 1만원짜리로 바꾸려는 아낙들로 장사진이다. 밀림 속 베트콩처럼 그들의 느닷없는 등장과 퇴장은 신출귀몰하다. 또 연필통을 비롯한 기념품 판매에 열을 올리는 이와 씨클로 투어 호객꾼도 만만치 않다.

호이안 야경. /사진=박정웅 기자

화무십일홍이라 했나. 이런 풍광이 기억 저편으로 넘어갈지 모른다. 최근 몇년간 전성기를 구가한 한국인의 다낭여행이 ‘끝물’이라는 소식이 도처에서 들린다. 단물 다 빨아먹고 내뱉은 사탕수수마냥 다낭은 헤질 대로 헤졌다는 얘기다. 한국의 항공·여행업계가 합작한 다낭여행은 방송을 비롯한 각종 매체의 지원으로 붐이 조성됐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다낭을 버리고 냐짱(나트랑)이나 푸꾸옥을 민다는 전언이다.

여행지 곳곳에 중국인 단체관광객이 눈에 띈다. 일본인, 한국인, 그리고 중국인 순. 해외여행 명소를 찾는 동북아시아 세 나라 여행객의 흐름이다. 이 흐름이 다낭에 맞아떨어질지 지켜볼 일이다. 그럼에도 다낭은 챙길 게 많다. 빼어난 자연경관과 아픈 이야기는 한국에서 다낭을 밀기 전에도 엄연했기 때문이다. 술에 취한 트로트를 뒤로하면 다낭여행의 진면목이 드러난다.

◆이야기 산 너머 그림 같은 랑꼬

남중국해를 품은 다낭 미케해변. 바구니배를 뒤로 멀리 보트피플 희생자를 기리는 해수관음상이 보인다. /사진=박정웅 기자

다낭 북쪽에는 꽤 높은 산이 있다. 여러 산으로 구성된 바익마국립공원이다. 우리로 치면 1번국도(QL1A)가 국립공원의 남북을 잇는다. 다낭에서 후에로 향하는 고속도로(하이반로드)다. 지금은 산 아래 터널이 뚫려 후에 접근성이 좋아졌다. 터널 대신 구불구불한 옛길을 따라 빼어난 남중국해 풍광이 이어진다. 어느 해외매체가 극찬한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곳’이다.

이 하이반 옛길은 우리의 1번국도처럼 프랑스의 베트남 침략과 수탈사를 담았다. 하이반 고갯마루에는 침략자들이 세운 석문이 각종 전쟁의 탄흔에도 건재하다. 베트남 남북의 허리 한가운데 해당하는 북위 17도 지점이다. 우리의 38도선과 같다. 하이반로드는 가파르면서 비좁다. 진부령이나 미시령 옛길은 저리 가라다. 헤어핀이 도드라져 짜릿한 레이싱을 떠올려도 좋다.

하이반 고갯마루의 석문. 프랑스가 세운 것으로 전쟁의 상흔에도 건재하다. /사진=박정웅 기자

협궤열차가 남중국해를 끼고 산 둘레를 굽이굽이 돈다. 느릿한 디젤기관차는 속도를 내거나 서두를 이유가 없는 모양이다. 구불구불한 선형 탓이다. 이 협궤 역시 한때 인도차이나를 점령한 일본이 건설했다. 하이반 고개를 넘어 협궤를 만나는 지점이 랑꼬다. 휴게소 앞에는 그림 같은 석호다. 랑꼬는 복주머니 형태의 특이한 지형이다. 바이막국립공원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석호는 한장의 그림엽서다.

랑꼬는 베트남 전통방법으로 굴을 양식하는 곳이다. 다만 베트남여행에서 굴과 같은 해산물은 완전히 익혀 먹는 것이 좋다. /사진=박정웅 기자

그런 까닭에 한적한 여행을 즐기는 유럽인들이 많다. 값싸면서 질 좋은 맥주나 커피 한잔을 놓고선 몇시간째 수다를 떨거나 멍 때리는 군상이 눈에 띈다. 문득 십여년 전 봤던 독일 다큐멘터리가 떠오른다. 당시 100만원가량의 돈으로, 요즘말로 치면 인도차이나 ‘1년살기’ 장기여행객을 조명한 것이다. 동양인보다는 서양인, 특히 유럽인이 랑꼬에 죽치는 이유를 알 만하다. 자전거, 모터바이크, 캠핑카. 타고 온 ‘바퀴’도 제각각이다. 물론 ‘두 다리’도 빠지지 않는다. 하이반 고개를 넘어 이곳까지 한나절 걷기여행 코스로도 좋겠다.

◆‘후회’ 없을 후에

후에의 명명왕릉(민망왕릉). /사진=박정웅 기자

후에는 경주처럼 고도다. 베트남 최후의 왕조인 응우옌왕조의 본거지로 유적이 많다. 이 중 인접한 두개의 왕릉을 들를 만하다. 왕조의 최전성기를 구가한 2대 임금 성조 명명왕과 왕조의 명줄을 결정적으로 끊은 카이딘왕릉이 그곳이다.

명명왕은 베트남의 오늘날 영토를 있게 한 주인공이다. 전제군주국가의 기틀을 다잡은 성왕으로 국민의 칭송이 자자하다. 인기가 높아 부인도 150여명을 거느렸다 한다. 민망한 탓인지 그의 현지식 이름은 민망왕이란다. 왕릉은 사후 지어졌는데 어디에 묻혔는지 알 수 없다. 도굴을 막으려고 왕릉 축조에 참가한 이들을 모조리 죽였다는 얘기다.

카이딘왕릉. /사진=박정웅 기자

반면 카이딘왕은 베트남 국민들로부터 버림을 받았다. 친 프랑스 정책으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공적비 뒷면은 갖은 욕설로 도배됐다. 프랑스의 꼭두각시 지탄치고는 왕릉이 매우 화려하다. 생전에 일본서 들여온 시멘트와 질 좋은 대리석을 섞어 유럽 고딕양식으로 치장한 덕분이다. 국내 인기 걸그룹이 소개했지만 석상 중 프랑스인을 골라내는 재미도 있다.

후에성 전경. /사진=박정웅 기자

응우옌왕조가 기거한 후에성은 거대하다. 18세기에 축조됐는데 정문 망루의 포대부터 위용을 뽐낸다. 외성 한변의 길이만 10㎞에 달하고 해자와 내성이 겹겹이 에워싼다. 중국 유교사상을 축조에 반영한 것인데 우리의 경복궁(14세기 축조)과 중국의 자금성(16세기) 구조와 흡사하다. 다만 종묘에는 16명의 왕 중 5명만 기리는 것은 우리와 다르다. 존경할 만한 왕만 모신다는 이유다.

◆소신공양과 비비큐 파티

틱꽝득 스님이 1963년 당시 남베트남 미국대사관 앞에서 소신공양한 사진과 몰고간 블루카가 천무사에 전시돼 있다. /사진=박정웅 기자

침략과 전쟁의 고난사는 향강(香江) 천무사(티엔무사원)도 머금고 있다. 이 강변 사찰은 소신공양으로 독재정권에 항거한 틱꽝득 스님을 모셨다. 이 절의 주지였던 스님은 1963년 당시 사이공(현 호찌민) 미국대사관 앞에서 가부좌를 튼 채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다. 친로마 가톨릭 응오딘지엠 독재정권의 정치탄압과 종교탄압에 항거했다.

틱꽝득 스님의 일화는 유명하다. 소신공양 전 자신의 주장이 옳다면 상체가 뒤로 넘어갈 것이라 공언했다. 몸에 불이 들어가면 앞으로 거꾸러지기 마련. 어쩌면 극한의 상황 속에 무의식일지라도 의지의 끈을 놓지 않겠다는 다짐의 발현 아닌가 싶다. 문제는 이후였다. 응오딘지엠정권의 퍼스트레이디가 스님의 항거를 ‘중의 비비큐 파티’로 힐난해 공분에 불을 붙인 것.

스승 틱꽝득 스님의 심장을 수습하는 틱낫한 스님의 사진. /사진=박정웅 기자

결국 틱꽝득 스님의 소신공양은 정권붕괴, 이어진 베트남전 발발과 승전의 도화선과 원천이 됐다는 평이다. 천무사 본당 뒷쪽에는 그의 소신공양 사진과 직접 몰고간 블루카(파란색 자동차)가 잘 보존돼 있다. 다른 사진에는 불타지 않았던 그의 심장이 기록됐다. 그의 제자인 틱낫한 스님이 심장을 수습을 하는 사진이다. 독재정권은 소신공양 후 그의 심장에 불을 다시 붙였다. 또 황산 테러까지 가했지만 심장은 푸르게 살았다.

이른바 ‘구정대공습’을 비롯한 격전의 한 현장이었던 후에는 많은 이야기를 걸쳤다. 물론 다낭과 호이안도 마찬가지다.

기네스에 등재된 세계 최장 케이블카로 바나힐스(바나산)에 오르면 프랑스풍 마을과 테마파크가 펼쳐진다. /사진=박정웅 기자
프랑스풍의 바나힐스 거리. /사진=박정웅 기자

미군과 한국군 주둔지와 휴양지로 쓰인 다낭의 미케해변은 드넓다. 건너편 선짜반도는 미군이 원숭이를 표적삼아 사격연습을 했다는 곳이다. 또 보트피플을 기리는 해수관음상이 이들이 수장된 남중국해를 내려다본다. 화, 수, 목, 금, 토 이름을 딴 오행산도 다낭 도심과 가깝다. 온 산이 대리석으로 이뤄진 수산은 미군의 폭격으로 구멍이 숭숭 뚫렸다. 바나힐스(바나산)는 해외로 도피한 보트피플의 후손이 산정의 버려진 프랑스인 주거지를 개발한 종합 테마파크다.

투본강 페리에서 바라본 호이안. /사진=박정웅 기자
화려한 호이안의 연등거리. /사진=박정웅 기자

다낭 남쪽에는 유네스코 문화유산 호이안이다. 도예거리, 연등거리, 강안거리, 야시장, 일본과 중국인 거류지 등 볼 게 많다. 또 씨클로와 투본강 페리 투어도 즐길 만하다. 특히 호이안은 밤이 화려하다. 일몰 즈음 일제히 불을 밝힌 연등과 조명이 황홀경으로 이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68호(2018년 11월28일~12월4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다낭(베트남)=박정웅 parkjo@mt.co.kr

여행, 레저스포츠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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