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동묘’ 앞에만 가면 열광하는 패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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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은 돌고 돈다’는 말처럼 잊을 만하면 한번쯤 등장하는 복고 열풍. 장르와 분야를 막론하고 복고는 레트로, 빈티지라는 이름으로 시대를 대변했다. 그런데 최근 복고에서 나타나는 현상은 어쩐지 다르다. 이전에 접하지 못한 레트로 흐름이다. 1020 젊은층도 복고를 즐기는가 하면 추억 속 제품과 디자인은 같지만 기능은 최첨단이다.유통업계와 문화계 등 사회 전반에 퍼지고 있는 뉴트로 열풍. <머니S>가 친숙한 듯 새로운 뉴트로의 이유 있는 흥행과 그 현상을 들여다봤다.-편집자주-

[뉴트로가 뜬다] ③ 뉴트로의 성지 '동묘 구제시장'

사진=김정훈 기자 @머니S MNB, 식품 외식 유통 · 프랜차이즈 가맹 & 유망 창업 아이템의 모든 것

"이거 짝퉁 아니냐고? 나도 몰러."

일반적인 옷가게 풍경은 아니었다. 무언가에 홀린듯이 경쟁적으로 옷을 뒤지는 분위기. 진품인지 가품인지의 여부는 이곳을 찾는 고객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아 보였다. 그들은 조금이라도 핫하고 힙(Hip)한 옷을 찾기 위해 주렁주렁 걸린 옷을 수시로 집었다 놓는다.

복고풍에 새로움이 더해진 뉴트로 열풍이 불면서 '패피'(패션피플)의 성지 동묘 구제시장이 각광받는다. 몇년 전 한 인기 예능프로에 소개된 후 젊은층의 발길이 부쩍 늘어난 동묘 구제시장은 중·노년층만이 찾는 '만물거리'에서 젊은층의 핫플레이스로 급부상했다. 그들은 왜 동묘 구제시장에 열광하는 것일까.

◆동묘, '패피' 명소된 이유

지난 11월20일 오후, 동묘 구제시장을 찾았다. 평일 낮임에도 인파가 적지 않다. 거리는 70~80년대 골목시장을 떠올리게 할 만큼 낡고 촌스럽다. 거리상인들도 대부분 노년층이다. 이 거리를 화려한 패션으로 무장한 젊은이들이 활보한다. 서로간의 이질감도 없어 보였다. 젊은층 위주인 번화가 풍경이 익숙한 기자에게 동묘의 풍경은 독특했다.

이곳에서 20년째 옷장사를 하고 있는 한 상인은 "몇년 전에 정형돈이 왔다간 뒤로 애들(젊은층)이 많이 와. 주말이면 여기 미어터져 아주 그냥. 우리도 좋지 뭐. 젊은 기운도 받고"라며 웃었다.

골목 안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대학생쯤으로 보이는 여자 일행이 많았다. 심지어 휴가 나온 군인들도 보였다. 이들을 따라가 한 빈티지(vintage)숍에 들어갔다. 안에는 '구제틱'한 청바지부터 면바지, 자켓, 니트, 점퍼, 모자, 신발 등 없는 게 없다. 대부분 우리가 알 만한 브랜드 제품들이다. 죠다쉬 같은 추억의 브랜드도 발견할 수 있었다.

"요즘 핫한 상품이 뭐냐"고 묻자 아저씨들이나 입을 법한 오버사이즈 자켓을 들이민다. 최근 배우 정려원이 입고 한 예능프로에 출연해 유명해진, 가수 혁오밴드의 리드보컬 오혁이 입는 '오혁 자켓'이란다. 속으로 '이 옷을 어떻게 입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멋지네요"라는 한마디를 던지고 가게를 나왔다.

동묘 구제시장을 관통하는 패션키워드는 '빈티지'다. 최근 힙합의 인기가 높아지며 통이 큰 '올드스쿨 패션'이 각광받아서다. 복고풍 패션이 젊은층 눈에 세련되게 비춰지며 새로운 패션트렌드가 만들어졌다. 이들에게 낡고 허름한 동묘 구제숍의 옷들은 보물이다. 남과 다른 패션에 집착하는 개성 강한 세대가 보다 이색적이고 독특한 아이템을 찾으려 하는 것도 동묘의 인기요인이다.

이런 이유 때문일까. 동묘를 찾는 젊은 고객의 특징은 뭔가에 쫓기듯 바쁘다. 그저 낡아빠진 옷도 그들 눈에는 핫한 아이템으로 보인다. 남들보다 좀 더 핫한 아이템을 선점하려는 경쟁이 치열하다. 대학생 박소영씨(여·23)는 "이곳에선 느긋하게 쇼핑하다가는 좋은 아이템을 구하기 힘들다"며 진열된 옷을 빠르게 스캔했다.

한 구제숍 점원은 "주 고객층은 중·고등학생, 대학생 아니면 패션관련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라며 "아무래도 이곳 옷들은 레트로 패션을 즐길 줄 아는 패피들이 주로 구입한다. 일반 직장인 눈에는 이해가 안갈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래도 와이셔츠나 니트 등에는 눈길이 갔다. 일부 브랜드는 초고가 명품이다. 가격표는 랜덤이다. 달린 것과 안달린 것이 뒤섞였다. 평소 20만원에 육박하는 L브랜드 니트를 집어 가격을 물으니 4만원이다. 상태도 좋아 보였다. 

점원에게 새 옷이냐 묻자 그렇단다. 물론 믿지 않았다. 새 옷치고는 보풀이 좀 보였다. 그래도 이 가격이면 거의 '득템'이다. 진품일까라는 생각도 잠시, 패피들이 보물 찾 듯 이곳에서 상품을 구매하는 맛을 잠시나마 공감했다.

모든 계산은 현금결제다. 기자도 미리 10만원을 인출했다. '거기서 제값에 사면 바보'라는 지인 얘기가 머리를 스쳐갔다. "사장님…"하고 말끝을 흐리자 무슨 말인지 안다는 듯 5000원을 빼줬다.

동묘 구제시장에서 롱코트를 구입한 정일률씨 모습./사진=김정훈 기자
같은 가게에서 검정색 코트를 구입한 직장인이 눈에 들어왔다. 12만원짜리 명품코트를 무려 4만원을 깎아 8만원에 샀단다. 5000원을 깎고 뿌듯해 한 기자가 무색해졌다. 구입한 코트를 바로 착용하고 가게를 나선 정일률씨(남·28)는 "분기마다 찾아 아우터 위주로 구매하는 편"이라며 "동묘에서 샀다고 하면 다들 '득템했네'라며 반응이 좋다"고 흐믓해했다. 

동묘 구제시장이 옷만 파는 곳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곳에는 전자기기, 시계, 서적, LP레코드 등 시중에서 보기 힘든 희귀한 아이템을 구할 수 있다. 대부분의 젊은층 발길은 옷가게로 이어졌지만 간혹 중고서점, 이색적인 모양의 인테리어 용품숍 등을 방문하는 젊은 고객도 눈에 띄었다. 적어도 이들에게 동묘 구제시장은 세계 3대 벼룩시장인 파리 못지 않다. 

◆한벌에 1000원, 탕진잼 '제대로'

동묘 구제시장 옷무덤 주위 풍경./사진=김정훈 기자
옷무덤에서 옷을 고르는 사람./사진=김정훈 기자

동묘 구제시장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옷 무덤' 인근으로 향했다. 옷 무덤은 옷이 무덤처럼 쌓여있어 붙은 별칭이다. 그런데 밀려드는 인파 틈바구니에서 옷을 집어보는 것도 쉽지 않다. 대부분 옷 위로 무릎을 꿇고 신들린 듯 옷을 뒤진다. 일부 고객은 신발을 신은 채로 옷 위를 걸어다닌다. 사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아 돌아서려는 순간 가격에 시선이 고정된다. 한벌에 1000~3000원이다. 방금 산 니트가격이면 옷 무덤서 최대 30벌 정도는 건질 수 있다.

옷 고르기에 열심이던 한 대학생은 아예 짐바구니를 끌고 다녔다. "오늘 여기서 옷 10벌을 샀다"는 그는 아직 3만원도 안썼다며 흡족해했다. 

젊은 고객에게 이곳이 각광받는 또 다른 이유는 저렴함이다. 대부분 중고품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너무 싸다. 경제적으로 풍요롭지 않은 젊은층에게 이곳은 핫한 아이템이 넘치는 곳일 뿐만 아니라 연중 바겐세일을 진행하는 대형백화점이다. 인근 음식점, 커피숍도 서울 도심과 비교하면 가격파괴 수준이다. 짜장면은 3000원, 커피는 1000원에 먹을 수 있다.

문득 궁금증이 생겼다. 이곳 상인들은 어디서 이 많은 옷을 구해오는 걸까. 우리가 버린 옷이 흘러흘러 이곳에 유입된다는 것은 알지만 구체적인 유통구조는 알기 힘들다. 한 구제숍 점원에게 물어보았으나 묘한 미소를 지으면 영업비밀이란다. 다른 가게들도 마찬가지다. 일부 점원은 사장님이 자기에게도 알려주지 않는단다. 

한 상인은 "구제옷 수급 경로는 가게 경쟁력이라 알려주기 힘들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해외수입업자를 통해 들여오기도 하고 의류수거함 관리자와 계약해 가져올 수도 있다. 더 이상은 비밀이다"고 귀띔했다.

동묘 구제시장 빈티지샵 내부 모습./사진=김정훈 기자
◆"젊은애들 안왔으면" 불만 호소


이곳 상인들은 뉴트로 열풍을 어떻게 생각할까. 젊은층이 많이 찾는 구제숍 사장들은 대부분 젊었고 고객 유입이 많아지는 뉴트로 열풍이 즐겁다. 반면 수십년 전부터 이곳에서 터를 잡고 살아온 중·노년 상인들은 뉴트로 열풍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아 보였다. 

전자제품을 판매하는 가판대 사장은 "뉴트로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젊은애들 대부분 옷가게를 갈 것 아니냐"며 "중·노년층 고객 덕분에 먹고 살지 젊은애들은 매출에 도움이 안된다"고 툴툴댔다.

차가운 반응은 사진을 찍을 때도 감지됐다. 기자가 가판대에 깔린 시계를 촬영하자 중년 여사장이 "찍지마라"며 호통을 쳤다. 남편인 듯 보이는 사람이 다가와 사진을 지워달라고 요구했다. 그는 "젊은애들이 와서 사진을 잔뜩 찍고 자기들 온라인쇼핑몰에 도용한 일이 있었다"며 "대체로 사진찍는 애들은 제품을 사지도 않는다. 찍지 말아달라"고 토로했다.

한 상인은 다른 얘기를 들려줬다. 그는 "여기 상인들 대부분 수십년간 이곳에서 장사한 사람들"이라며 "젊은층 방문이 많아지면서 괜히 핫플인지 뭐시기가 돼서 상가임대료 오르고 있던 상인들 쫒겨나고 이런 거 아닌지 걱정도 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동묘역 인근은 최근 젊은층을 대상으로 핫한 맥주집, 맛집 등이 생겨나는 추세다. 아직은 메인거리보다 외곽 위주로 점포가 생기지만 앞으로 어떻게 바뀔지는 알 수 없다. 

불만을 토로하는 건 고객도 마찬가지다. 동묘를 십수년째 방문하고 있다는 박준현씨(66)는 "동묘가 너무 유명해져서 제품 가격만 뛰었다"며 "이곳은 중·노년층의 놀이터나 마찬가지다. 젊은사람들이 찾아오는 건 좋은데 상권 분위기가 그들에게 맞춰져 너무 장삿속만 밝히는 곳으로 바뀔까 걱정이다"고 말했다. 

오랜기간 동묘에 터를 잡은 상인과 고객들은 갑자기 불어닥친 뉴트로 열풍이 조금은 불편하다. 앞으로 '뉴트로 성지' 동묘 구제시장이 어떤식으로 변화할지 궁금해진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68호(2018년 11월28일~12월4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김정훈 kjhnpce1@mt.co.kr

안녕하세요. <머니S> 김정훈입니다. 많은 제보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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